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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단화 Sep 02. 2024

열여덟 유럽일기 010

일장일단

2016.09.16

Hannover, Deutschland


 짧은 독방 생활을 마치고 다음 도시로 길을 나섰다. 아침 9시에 부지런히 체크아웃도 하고 오전에는 몇 회 없는 미니미 열차를 타고 나왔다. 

 한국에서부터 준비해 온 '저먼패스'를 개시했다. 일정 기간 동안 본인이 원하는 날에 독일 열차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티켓으로 앞으로 며칠간 환승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 줄 친구였다.

 

 며칠 만에 다시 쾰른에 도착했다. 잠시 구경을 나가 미술관이라도 둘러볼까 싶었지만 역시나 짐은 무겁고 가야 할 길도 멀어 깔끔하게 포기했다.

 하노버로 향하는 열차에 앉아 또다시 몇 번이고 목적지를 확인했다. 저먼패스 덕에 다른 열차를 타도 벌금을 내지는 않지만 내가 모르는 곳으로 강제로 가게 되는 것은 꽤 끔찍한 기억이었기에 열차에 오르기 전에 다섯 번쯤은 도착지를 읽고 탔다. 


 열차는 내가 앉고 나서 5분도 되지 않아 출발했다. 갑자기 꺼진 불에 당황할 새도 없이 서서히 변하는 차창밖을 구경했다. 미뤄둔 가이드북도 읽고 근처 승객들도 구경했다.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주인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다. 한국이라면 클레임이 5개쯤 걸릴 것 같았지만 독일에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커다란 개도 표를 끊고 앉았다 생각하니 조금 웃기기도 했다. 당연히 주인이 끊고 주인이 돈을 냈겠지만 저 정도 크기면 스스로가 발바닥으로 기계를 눌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주인 앞에서 표를 끊는 개들을 생각하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옆자리 할아버지는 신문을 읽고 앞자리 사람은 샌드위치를 먹었다. 조금 지루하다 싶은 풍경이지만 기차여행이 원래 이런 것이겠거니 싶다.

창가자리의 묘미는 풍경구경이다

 

 3분의 1쯤 왔을까? 중간 역에서 문제가 생긴듯했다. 한참이나 움직이지 않아서 DB(독일철도청) 어플을 켜봤더니 차편 옆으로 +30 min 이 떠있다. '연착이구나..!'와 동시에 환승을 안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시간 내에 도착해야만 하는 환승 편이 있었다면 아찔했겠지만 다행히 나는 모든 환승을 끝내고 마지막 차편에 앉아있었다. 

 시간에 쫓기는 건 없었지만 갑자기 추가된 30분은 지루했다. 열차가 달릴 때는 풍경구경하느라 그나마 나았는데 역에 갇혀 움직이지 않으니 지루함이 솟구쳤다. 설상가상 불편한 의자덕에 허리와 엉덩이가 통증을 호소했다.

 날이 추워졌는지 열차내부에 있음에도 쌀쌀하게 느껴졌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풍경이 변할 때까지 멍 때렸다. 40분이 넘어갈 때쯤 무거운 쇳덩어리가 몸을 움직였다. 야호! 기쁨도 잠시 이 상태로 2시간이나 더 가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또다시 멍이나 때리기로 결정했다.


 오후에 도착한 하노버는 프랑크푸르트나 쾰른과는 또 다른 느낌의 도시였다. 캐리어를 끌고 숙소를 찾아갔다. 다행히 이번 숙소는 호스텔이라 그런지 립셉션에 사람이 상주하고 있었다. 체크인을 하고 방 열쇠를 받자 예상치 못한 원형 계단이 나를 기다렸다. 

 5층을 캐리어를 들고 올라갈 생각에 약간 아득해졌다. 더군다나 넓은 계단도 아니고 첨탑을 오르듯 뱅글뱅글도는 계단덕에 멀미까지 날 것만 같았다.

 겨우겨우 방 앞으로 도착해 문을 열었다. 6인실의 도미토리는 두 개의 배드에 짐이 올려져 있었고 사람은 없었다. 생각보다 넓은 방도 좋았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건 신청사와 교회가 보이는 창문이다. 2층침대로 올라가 짐을 풀었다.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보이는 창문에서 시원한 바람이 팡팡 들어왔다. 계단을 올라오느라 달궈진 몸이 천천히 식혀졌다. 


 직전의 숙소는 독방이지만 막혀있었고 매트리스도 불편했다. 새로운 숙소는 계단이 너무 힘들고 다인실이었지만 풍경이 좋고 환기가 잘됐다.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기에 우리는 종종 선택에서 차등을 두어야 한다. 나의 우선순위에 따라 가잘 '덜' 중요한 것부터 지워나가는 것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나는 숙소를 선택할 때 내 우선순위를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순간이 소중해졌다. 내가 포기를 함으로써 무엇이 내게 더 중요한지를 알게 되고, 다음에 그 정보를 이용하여 내가 가장 '적합하다' 생각되는 선택을 할 때 기분이 좋아졌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란 내가 버릴 수 있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 같다.


*열여덟 유럽일기는 필자의 사정으로 잠시 쉬었다가 8일 이후 다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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