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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라 메이 Jan 24. 2021

필리핀 바기오에 뭐가 있다? 잠 없는 새해맞이가 있다!

한국 생활 24년 차 외국인이 알려주는 고향의 매력

-에피소드 인트로-
바다 광경이 좋은 더운 나라 필리핀!
그곳에 야자수가 아닌 소나무로 둘러싸인 시원한 도시, 바기오가 존재하고 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축제 분위기와 불꽃놀이를 상상해보라. 그것이 바로 필리핀의 새해맞이 풍경이다.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에서 신나게 놀았던 열정과 친구들과 함께 맛집을 탐방할 때 느끼는 설렘을 아는가. 그것이 바로 필리핀의 새해맞이 분위기다. 그러한 분위기가 필리핀 모든 지역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당연히 내 고향인 바기오 도시에서도 축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바기오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12월 31일 저녁부터 1월 1일 저녁까지 깨어있다. 그럼 깨어있는 동안 무엇을 하는가. 파티를 연다. 파티라고 하면 호텔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모임 혹은 미국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하이틴 파티를 쉽게 떠오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파티는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축제에 가깝다. 축제 분위기는 당연히 새해 전날부터 1월 1일 저녁까지 이어진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고향에서 새해를 보냈다. 나는 새해 전날과 새벽을 외가에서 보냈고 낮과 저녁을 친가에서 보냈다. 친가와 외가에서 새해를 보내는 방식이 똑같다. 먹고 논다. 더 화려하게 표현하자면 맛나게 먹고 신나게 놀았다. 제일 기억에 남았던 새해 장면도 먹고 놀았던 장면이다. 그 장면을 더 세밀하게 표현하자면 불꽃놀이와 진수성찬이다.



필리핀의 새해는 불꽃놀이로 시작된다.

1월 1일이 되는 순간 온 동네가 폭죽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폭죽이 '쓩!' 소리를 내면 사람들이 다양한 도구를 가지고 드럼 치듯이 그 도구를 두드린다. 대표적인 예시는 숟가락을 들고 프라이팬을 두드리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쓩!' 소리 뒤에 '두두두 탕탕탕!' 소리가 울린다. 이어서 사람들은 새해 인사인 '해피 뉴 이어!'를 외쳤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 중에 분명 마음속에 질문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불꽃놀이는 이해하겠는데, 프라이팬은 왜?'


새해를 맞이해서 악한 기운을 쫓아내는 행위다. 필리핀 사람들은 악한 기운 없이 새해를 좋게 맞이하고 싶어서 프라이팬, 책, 의자 등 손에 잡히는 물건을 가지고 드럼 치듯이 두드린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놀랐다. 내 고향이지만 신세계에 온 것 같았다. 불꽃놀이, 무언가 두드리는 행위, 새해 인사. 한꺼번에 다양한 일이 벌어져서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눈은 혼란스럽지만, 마음은 즐거웠다. 연속적으로 터지는 폭죽을 보면서 속으로 말했다.


'이것이 바로 내 고향의 새해구나.'


그동안 한국에서 새해를 맞이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새로웠다. 불꽃놀이 아래에 일어나는 축제 분위기 속에 모든 것을 신기하게 쳐다본 내 모습을 떠오르니까 웃음이 나왔다. 필리핀 사람인데 필리핀의 새해를 보고 '와, 나 이런 거 처음 겪어봐.'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멀리서 본 필리핀 현지인들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꽃놀이도 보았고 프라이팬을 두드렸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놀 때가 되었다. 단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노래방 기계를 준비해서 방구석 콘서트를 연 사람들도 있다. 우리 집은 토크쇼를 열었다. 부모님은 가족들에게 한국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어떤 상황인지 비유하자면 천일야화를 들려주는 왕비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듣는 왕의 모습과 비슷하다. 나는 중간에 재미 요소를 첨가하는 역할을 했다.


거실에서 일어나는 토크쇼를 듣다가 지치면 은근슬쩍 빠져나가서 안방에 있는 베란다로 탈출했다. 나는 밤이 되면 정신이 더 멀쩡한 야행성 인간이라서 아직 끝나지 않은 불꽃놀이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볼수록 신기했다. 원래 새벽 4시 지나면 슬슬 피곤해지는데 난 여전히 멀쩡한 눈으로 불꽃놀이를 구경했다. 몸이 피곤한데 마음이 여전히 깨어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가 1월 1일 저녁까지 이어졌다.




거부할 수 없는 새해 문화, 새해맞이하고 맛있게 먹는 문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진수성찬. 필리핀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과 집안 전통에 따르는 음식을 준비한 후 모두 모여서 맛을 음미한다. 만약 새벽까지 배고픔을 참고 있었다면 음미고 뭐고 10분 안에 접시를 비우게 된다. 나는 새벽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생각에 저녁부터 굶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음식 나오자마자 접시를 빠르게 비웠고 그 후로 볼록해진 배를 진정시키느라 살짝 고생했다. 새벽에 많이 먹어서 나중에 친가에 가면 조금만 먹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다짐하고 새벽을 지나 낮이 되었을 때 친가로 향했다. 그곳에 있는 맛있는 디저트를 본 순간 새벽에 했던 다짐을 잊어버렸다.

모임이 생길 때마다 가족들이 맛있는 디저트를 준비했다. 테이블 위에 있는 케이크와 쿠키가 늘 인기 메뉴였다. 그래서 나중에 먹겠다고 다짐하면 위험하다. 나중에 먹겠다는 것은 안 먹겠다는 것과 똑같다. 여유롭게 쉬고 있는 사이에 가족들이 디저트 접시를 비우기 때문이다.

외가에서 토크쇼가 진행되었다면 친가는 예능이 펼쳤다. 가족들이 모여서 스무고개를 하거나 '몸으로 말해요' 게임을 한다. 승자에게 작은 보상이 주어진다. 큰 금액의 보상금을 받는 것도 아닌데 마치 규모가 큰 퀴즈쇼에 참여하듯이 모두 열심히 했다. 왜 그런 상황 있지 않은가. 처음에 열심히 안 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나도 모르게 목숨 걸고 참여하게 되는 그런 상황이 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이게 뭐라고 내가 열심히 하고 있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친가에서 벌어진 단체 게임도 그랬다. 나는 단체 게임 자체가 귀찮아서 처음에 열심히 안 했다. 그랬던 사람이 30분 이후 큰 소리를 외치면서 열심히 놀았다. 게임을 하다가 상대 팀이 이기면 절규하면서 주저앉기도 했다.

단체 게임에 과몰입했던 나 자신을 떠오르면서 감탄했다. 저 상태라면 이미 새벽에 많은 에너지를 쏟은 상태인데 큰소리를 외칠 힘이 있었다. 분명 잠이 부족한 상태인데도 마음속은 여전히 불꽃놀이하고 있는 중이었다. 낮과 저녁에도 축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어서 피로보다는 '실컷 놀자!'와 같은 마음이 컸다. 1월 1일 저녁까지 새해를 맞이한 후 아빠가 내게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물었다.


"처음으로 고향에서 새해를 맞이했는데 어때?"

"정말, 사람들이 잠을 안 자네요."


모두 한 마음이 되어 밤을 새우는 기분이 뭔지 처음 느꼈다. 정말 화려하고 신났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새해맞이다. 고향의 새해에 대해서 막상 소개하니까 추억 때문에 비행기 타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지금은 고향 혹은 해외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현재 추억을 회상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모든 사람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시기가 오면 당연히 바기오에 가서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고향에서 보낸 첫 새해처럼 숟가락을 들고 프라이팬을 두드리고 싶다.  





바기오는 어떤 곳인가?

세부와 마닐라로 유명한 더운 나라 필리핀. 사람들이 필리핀을 떠오르면 머릿속에 야자나무와 바닷가의 그림이 펼쳐질 것이다. 바기오는 그런 그림과 정반대의 작은 도시다. 바기오는 야자나무 대신 소나무, 바닷가 대신 파도치는 안개를 볼 수 있는 시원하고 때로는 추운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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