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인트로-
바다 광경이 좋은 더운 나라 필리핀!
그곳에 야자수가 아닌 소나무로 둘러싸인 시원한 도시, 바기오가 존재하고 있다.
지프니(Jeepney)는 바기오뿐만 아니라 필리핀 모든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지프니, 필리핀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들으면 생소할 수 있는 단어다. 사진 한 장으로 지프니의 생김새를 설명하겠다.
이미지 출처: Unsplash(Yannes Kiefer) 2차 세계대전 후, 필리핀 사람들은 남겨진 미군용 지프를 개조해서 지금의 교통수단인, 지프니를 완성했다. 나는 지프니를 보면 버스와 지하철이 떠오른다. 버스를 타면 손잡이 잡고 휘청거리는 경험을 한 번쯤을 했을 것이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 그 휘청거리는 경험을 많이 겪을 수 있다. 지하철에 타면 양 끝의 긴 좌석을 발견하게 된다. 지하철이 가진 긴 좌석과 버스에서 느낄 수 있는 휘청거림을 모두 지프니에서 경험할 수 있다. 지프니는 지하철의 내부를 갖춘 버스 같다.
한국에서 지프니를 볼 기회가 없어서 고향에 갈 때마다 신나는 마음으로 지프니를 탔다. 필리핀 현지인들에게는 매일 보는 교통수단이라 감흥이 없겠지만 나에게는 신기한 교통수단이다. 바기오에서 지프니를 타는 것이 모험에 가깝다. 도시가 고산지대에 위치하기 때문에 지프니가 오르락내리락, 지그재그 하는 순간이 자주 생긴다. 도시 자체가 오르막길 아니면 내리막길이기 때문에 작은 움직임에 예민한 사람에게는 놀이기구 같은 경험을 안겨줄 수 있다.
한국 버스에서 벨을 눌러야 내릴 수 있다.
지프니는 'Para Po(파라 포)!'를 외쳐야 내릴 수 있다.
한국은 교통카드 한 장으로 손쉽게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 지프니는 다르다. 지프니에서 카드는 무용지물이다. 입장할 때 현금을 내야 하고 내릴 때 목소리를 사용해서 내려야 한다. 지프니 이용 방법은 이렇다. 좌석에 앉으면 운전자에게 돈을 내야 한다. 운전석 뒤에 앉으면 문제없지만, 운전석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앉으면 자기가 직접 운전석까지 가서 내야 한다. 지프니가 움직이고 있다면 일어서서 현금 내는 것은 위험하다. 그럴 때는 현금을 옆 사람에게 전달하면 된다. 영어로 '저, 요금이요!'라고 말한 후 옆 사람에게 전달하면 받은 사람이 자기 요금까지 포함해서 그 옆 사람에게 전달한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운전자에게 전달된다.
학창 시절 쪽지를 전달한 적 있는가. 맨 뒤에 앉은 사람이 맨 앞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쪽지를 전달하려면 중간에 앉은 사람들이 함께 전달해야 한다. 그것과 똑같은 방법이다. 물론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정직한 사람만이 사는 세계가 아니라서 운전자가 요금을 받을 때까지 지켜보는 것이 좋다. 요금 내는 단계를 마치면 좌석에서 편안하게 쉬면 된다. 덥다고 생각하면 뒤에 창문을 열면 된다.
내가 생각하는 지프니의 명당자리는 운전자의 옆자리다. 운이 좋다면 뒷좌석이 아닌 운전자 옆자리에 앉을 수 있다. 운전자의 옆자리는 택시처럼 손님 좌석이다. 운전자 옆자리는 영상 찍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뒷좌석은 알다시피 지하철과 비슷한 구조이기 때문에 창밖의 풍경을 찍기 힘들다. 지프니 타면서 좋은 풍경을 찍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운전석 옆자리를 한 번 사용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면 지프니에 내릴 준비를 해야 한다. 벨을 누르고 버스에서 내리는 것은 한국 버스의 규칙이다. 지프니는 목소리를 내야 목적지에 내릴 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고 도착했다고 판단하면 이 단어를 내뱉으면 된다.
"Para Po!'
(파라 포!)
'내리겠습니다!'라는 뜻이다. Po(포)는 필리핀의 높임법이라고 보면 된다. '-요', '-습니다'와 같은 존재다. 공손하게 말하고 싶다면 '파라 포!'라고 하면 된다. '파라 포' 때문에 생긴 일화가 있다. 고모와 사촌 남동생과 함께 필리핀 대학 탐방하러 갔는데 고모가 내게 말했다.
"알지? 내리는 방법."
내가 영어 하는 사람이라서 제일 약한 언어인 모국어를 쓰면 괜히 민망해지고 부끄러워진다. 가족들은 그런 내 성격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끔 모국어를 시킬 때가 있다. 사촌 남동생이 '누나 못하겠지?'라는 눈빛을 보냈기 때문에 내가 당당하게 큰 소리로 '파라!'라고 말해버렸다. 정말 큰 소리로 말했는지 옆에 앉았던 고모와 사촌 남동생이 고개를 돌렸다. 난 웃지 않으려고 그 자리에서 입술을 꾹 닫았다. 지프니에서 내릴 때 고모가 말끝에 'Po(포)'를 추가하면 더 좋다는 설명을 했고 사촌 남동생은 웃으면서 '누나 모르는 사람 취급할 뻔'이라는 말을 남겼다.
지프니는 버스나 지하철처럼 안내방송이 없고 위치를 알려주는 전자 안내판도 없어서 눈을 뜨고 자기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난 그동안 부모님과 함께 지프니를 탔기 때문에 길을 잃거나 목적지에 내리지 못한 일을 겪어보지 않았다. 아마 혼자 타게 되면 길을 잃게 될 수 있다. 친구와 함께 바기오를 놀러 갔다면 지프니를 한 번 타는 것을 추천한다.
바기오는 어떤 곳인가?
세부와 마닐라로 유명한 더운 나라 필리핀. 사람들이 필리핀을 떠오르면 머릿속에 야자나무와 바닷가의 그림이 펼쳐질 것이다. 바기오는 그런 그림과 정반대의 작은 도시다. 바기오는 야자나무 대신 소나무, 바닷가 대신 파도치는 안개를 볼 수 있는 시원하고 때로는 추운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