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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라 메이 May 17. 2021

바기오에 뭐가 있다? 캠프 존 헤이가 있다.

방구석 바기오 여행

-에피소드 인트로- 
바다 광경이 좋은 더운 나라 필리핀!
그곳에 야자수가 아닌 소나무로 둘러싸인 시원한 도시, 바기오가 존재하고 있다.



나는 필리핀 사람이지만 필리핀 지리에 약하다. 어쩔 수 없다. 24년 동안 한국에 살고, 한국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필리핀 지리보다 내가 사는 서울의 지리를 더 안다. 고향을 방문하면 나는 옆에 있는 외국인 관광객과 다를 바 없다. 2년에 한 번 고향에 가기 때문에 필리핀에 대해 완전히 모르는 것이 아닌 장기적으로 필리핀 여행 가는 외국인 관광객에 가깝다. 


고향의 지리도 몰라, 운전도 못해, 필리핀 말도 못해. 혼자 돌아다니면 미아가 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가야 안전하다. 내가 만약 필리핀 지리를 잘 알고, 필리핀에서 운전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 되면 동네 공원 가듯이 시간 날 때마다 방문하고 싶은 곳이 있다. 바로 캠프 존 헤이.

Camp John Hay(캠프 존 헤이), 줄여서 존 헤이라고 한다. 원래 미군을 위해 지어진 장소로 당시 미국의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국무장관인 John Milton Hay(존 밀튼 헤이)의 이름에서 나왔다. 캠프 존 헤이는 요양과 회복의 목적으로 지어졌으며 현재 바기오의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가 되었다. 


나에게 존 헤이는 서울의 뚝섬유원지 같은 존재다. 뚝섬유원지에 가면 흔하게 보는 세 가지의 풍경이 있다. 첫 번째는 돗자리 깔고 맛있는 음식 먹는 사람들, 두 번째는 넓은 들판에 연을 날리고 다른 곳에 배드민턴 치는 사람들, 세 번째는 배불러서 주변에 산책하는 사람들이다. 방금 언급한 세 가지의 풍경을 모두 존 헤이에 볼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로 세 가지의 풍경을 경험했다. 


2014년 1월, 오랜만에 가족 모임을 했는데 장소는 존 헤이였다. 존 헤이에 도착했을 때 먼저 도착한 가족들이 돗자리를 깔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난 넓은 돗자리에 누워서 존 헤이의 자연을 만끽했다. 시원한 바람을 계속 맞다가 몸이 추워지면 일어나서 들판 위에 뛰어놀고 있는 사촌들에게 달려갔다. 점심을 먹을 때가 되면 가족들이 준비한 도시락을 가지고 배를 채웠다.


배가 부르면 두 가지의 활동을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다시 돗자리의 곁으로 가서 눕기, 두 번째는 간단한 산책이다. 난 첫 번째는 선택했다. 식곤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돗자리에 앉았다가 5분 후에 누웠다. 뚝섬유원지에 갈 때 했던 소풍 패턴을 그대로 존 헤이에서 했다. 

뚝섬유원지는 강이 있지만 존 헤이는 강이 없다. 대신 소나무가 많은 산과 안개가 있다. 시원하게 흐르는 강 대신 웅장한 산의 모습과 양옆에 서 있는 소나무들을 볼 수 있다. 


존 헤이의 낮과 밤은 다르다. 내 눈에 다르게 보인다. 존 헤이에서 밤 드라이브하면 안개가 은근슬쩍 스며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달빛이 뜨는 밤에 일어나는 일이면 몽환적인 밤이 되는 것이고, 흐린 밤이면 나도 모르게 기도하게 된다. 다른 말로 살짝 무섭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면 살짝이 아닌 '그냥 무서운' 기분이 들 수 있다. 어두운 밤에 안개가 웅장한 소나무 숲 속을 덮치는 장면을 보면 3초 후에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 같다. 

햇빛이 쨍쨍한 존 헤이의 모습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모습이다. 난 밝은 곳에서 오래 머물면 긍정적인 기분이 들어서 온 세상이 밝은 낮의 존 헤이를 더 좋아한다. 맑은 하늘의 보며 시원한 바람 소리와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를 들으면 온몸이 긍정 기운을 먹고 정신적인 체력이 충전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간대에 돗자리 깔고 앉으면 저절로 눈이 감긴다.

존 헤이에 가면 볼거리가 많다. 그중에 부정의 공동묘지(Cemetery of Negativism)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특이한 무덤 비석들을 발견할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을 묻고 더 나은 삶을 향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지어진 공동묘지로 죽은 사람들이 잠든 곳이 아니다. 무덤 비석들을 살피면 부정적인 감정에 관한 문구를 보게 된다. 어떤 감정이 묻었는지 명확하게 나오지 않아서 비석을 보면서 추측했다. 예를 들어 한 비석에 이런 문구가 적혔다.


'난 죽고 싶다.'

우울한 날에 태어났다.

그런 상태로 유지했다.


방금 언급한 비석 내용의 경우, 우울함을 묻고 세운 비석임을 짐작했다. 그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부정적 무덤이 만들어진 이유를 잘 몰라서 당황했다. 성격이 특이한 예술가가 만든 포토존인가 생각했다. 나중에 부정의 공동묘지가 만들어진 의미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부정적인 생각을 묻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감정을 하나씩 묻겠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흥미로웠다. 


여기까지가 바로 내가 기억하는 존 헤이의 매력이다. 그 이후로 떠오르는 존 헤이의 기억이 흐릿해서 '존 헤이 에피소드'를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존 헤이에 가면 시각적으로 힐링되는 자연 풍경과 볼거리가 있다. 자연 속에 걷기만 해도 저절로 힐링되는 사람이 있다면 존 헤이를 추천한다. 



바기오는 어떤 곳인가?

세부와 마닐라로 유명한 더운 나라 필리핀. 사람들이 필리핀을 떠오르면 머릿속에 야자나무와 바닷가의 그림이 펼쳐질 것이다. 바기오는 그런 그림과 정반대의 작은 도시다. 바기오는 야자나무 대신 소나무, 바닷가 대신 파도치는 안개를 볼 수 있는 시원하고 때로는 추운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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