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시절, 아버지는 늘 일로 바쁘셨다. 새벽같이 집을 나서서 우리가 잠들 무렵에야 돌아오시곤 했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늦은 시각 귀가하신 아버지는 동생과 내가 잠든 방으로 들어오셨다. 아직 잠들기 전이었던 나는 기척을 느꼈지만 잠든 척 눈을 꼭 감았다. 아버지는 침대 머리맡에 서서 한참을 내려다보시다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고 조용히 나가셨다.
바쁜 아버지와는 함께 밥을 먹는 일도 드물었다. 어쩌다 식탁에서 마주하면 대화거리가 없어 겉도는 이야기만 겨우 오갔다. 아버지가 말을 걸면 언제나처럼 최소한의 말밖에 하지 않았다.
"날이 많이 더워졌네."
"... 네 조금."
"친구는 많이 생겼니?"
"네."
평소대로 고요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밥상 위의 침묵을 깬 건 아버지였다.
"갈치가 뱃살이 통통한 게 아주 싱싱해 보이는구나."
아버지는 큼지막한 무가 말캉하게 들어간 짭조름한 갈치 무조림을 좋아하셨다. 아버지의 식성을 잘 아는 엄마는 당일바리 은갈치로 갈치조림을 만들어 냄비 가득 상에 내셨다. 그렇게 좋아하는 갈치조림이 상에 올랐음에도 아버지는 갈치를 먼저 입에 넣지 않으셨다.
갈치의 뱃살을 젓가락으로 뭉툭하게 잘라 "큰 딸 먹어라." 하며 숟가락에 올려주셨다. 가운데 하얀 갈치 속살은 젓가락으로 능숙하게 도려내 동생들 밥 위에 올려주셨다. 통통한 갈치의 알은 "당신 먹어." 하며 엄마에게 주셨다. 정작 당신은 간장에 조려진 무를 드시면서.
결혼하고 엄마가 되어서도 아버지는 내게 가깝고도 멀기만 한 존재였다. 정이 많고 마음이 따뜻한 분인데 무뚝뚝하셨고 가끔 욱할 때가 있으셨다. 너무나 고마운 존재인데 아버지를 원망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원망스럽던 마음은 이내 이렇게 정리가 됐다.
그때 내 아버지의 나이는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고작 서른대여섯이었다. 올망졸망한 아이들 셋이 아버지만 바라보던 시절. 공부시켜야지, 잘 먹여야지, 남들만큼 입혀야지. 그 모든 것은 결국 ‘돈’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라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으셨을까. 가족들과 잘 살고 싶어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밖에서 밥을 사 드시면서 일을 하신 거였다.
그 시절 아버지들의 삶이 다 그랬다. 곤죽이 되도록 일하느라 자식들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더 벌어 더 해주고 싶으셨음에도 성과가 더딜 땐 많이 초조하셨을 것이다.
부모님은 아니라고 하시지만, 나와 내 동생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거의 다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은 모두 ‘돈’과 연관된 것이었고, 아버지의 노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혼한 이듬해였을 것이다. 남편과 부모님을 뵈러 제주도에 갔다. 아버지가 일 때문에 타지에 나갔다가 페리로 돌아오고 계신다 하여 부두에 마중 나갔었다. 아버지의 손에는 겉보기에도 둔중해 보이는 스티로폼 박스가 들려있었다.
"아빠 나 왔어요. 근데 이거 뭐에요? 너무 무거워 보이는데."
"딸이랑 사위 먹이려고 자연산 전복이랑 소라 사 왔다. 배고프겠구나, 어서 집에 가자."
스티로폼을 지탱하는 노끈을 바꿔 드는 아버지의 손바닥에 빨간 선이 선명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저 무거운 것을 들고 오신 걸까. 무심코 바라본 아버지의 손 마디마디가 울툭불툭 튀어나와 있었다. 거칠고 뭉툭한 아버지의 손을 살며시 꼭 잡아봤다.
"아빠 고마워요."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평소보다 더 빨리 걸음을 재촉하셨다. 나답지 않게 괜히 간지러운 행동을 했나 싶었다. 그러다 힐끔 아버지의 얼굴을 봤는데, 그 눈을 봤는데, 눈물이 그렁해 울고 계셨다. 눈물이 날 만큼 좋으셨던 것이다.
그제 제주에서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아빠가 쌍둥이 먹이라고 갈치를 사 보내셨다. 내가 아기를 갖지 못해 힘들어할 때 아버지는 그렇게도 애가 닳아하셨다고 한다. 이제 부쩍 큰 쌍둥이가 “하부지~~”하고 부르기만 해도 아버지의 눈엔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그 쌍둥이 먹이라고 하루가 멀다 하고 제주에서 택배가 도착한다.
"아빠 비싼 갈치를 이렇게나 많이 보내셨어요?"
"둥이 아빠랑 둥이랑 무 넣고 조림도 해서 먹고 호박 넣어 국도 끓여 먹어라."
환갑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자식들 먹일 생각뿐인 나의 아버지. 지금도 아버지는 별다른 표현을 안 하신다.
만나도 여전히 대화는 별로 없다. 그래도 이제 나는 안다. 아버지의 사랑을, 아버지의 노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