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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희 Oct 31. 2019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돈가스



 꼬맹이들에 돈가스를 만들어주려고 돼지고기 등심을 사 왔다. 도마에 고기를 올려놓고 조리용 망치로 두들기며 얇게 펴기 시작했다. 전분, 달걀, 빵가루 순으로 옷을 갈아입은 고기가 철제 바트 위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오후의 햇살이 주방으로 드리워지고 살랑이는 바람이 내 뺨을 살짝 스치는 듯했다. FM 라디오에서 묵직한 선율로 바흐의 평균율이 시작되고 있었다. 평화로운 풍경과 느낌은 행복했던 시간의 빛나는 결정처럼 나를 어떤 장면 속으로 이끌었다.


 나는 유년 시절을 제주에서 보냈다. 지금은 기세가 많이 꺾였지만 80~90년대만 해도 제주의 칠성로는 제주 상권의 전통적인 강호(强豪)였다. 이 곳의 상점가는 주로 오래된 소규모 가게들인데, 제주에서는 점포 수와 길이로 꽤 유명했다. 지상에서 지하의 상가까지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걷다 보면 생활 전반에 필요한 것을 거의 다 살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칠성로의 번화가를 좀 벗어난 상점가 어귀에 '목동'이라는 경양식집이 있었다. 나지막한 벽돌 건물 1층에 위치한 이 자그만 가게는 조용하고 아늑했다. 입구 마룻바닥에 깔린 페르시아 양탄자 같은 모양의 매트는 연식이 느껴졌지만 정갈했고, 테이블과 의자에서는 세월을 입은 원목 냄새가 풍겼다. 살짝 보이는 주방에는 오랜 시간 길들여진 부엌용품들이 반짝이는 모습으로 늘 반듯하게 걸려있었다.


 좁은 가게에는 오래된 턴테이블이 있었다. 턴테이블에 걸린 LP에선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올드팝이나 클래식이 흘러나오곤 했다. 어느 작곡가의 어떤 곡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듣기에 좋은 소리였다. 가끔 중저음의 첼로가 가게 안을 가득 채울 때면 첼로의 그윽함이 이 곳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생일, 어린이날, 성탄절, 입학식, 졸업식. 삶의 굵직굵직한 순간마다 우리는 그곳을 찾았다.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를 잡으면 주인인 노신사가 김이 오르는 뜨거운 보리차를 잔에 따라주었다. 두 손으로 찻잔을 감아쥐고 호호 불어가며 차를 마실 때면 왠지 내가 어른이 된 거 같은 으쓱한 기분이 들었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그곳의 유일한 메뉴인 돈가스를 시켜주셨다. 돈가스가 튀겨지는 사이, 하얀 볼에 담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 수프가 서빙되었다. 테이블에 있던 후추를 톡톡 뿌려 숟가락으로 젓고 식을 새라 얼른 한 입. 옥수수의 구수한 단맛이 살아있는, 정감 가는 맛이 느껴졌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프가 바닥을 드러낼 즈음 그 날의 주인공인 돈가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넙적한 접시에 소스가 듬뿍 뿌려진 두툼한 돈가스. 갓 튀겨진 돈가스의 고소한 기름 냄새에 먹기 전부터 입 안 가득 침이 고였다. 따뜻한 소스가 넉넉하게 올려져 돈가스가 촉촉하게 적셔졌음에도 나이프로 잘라 입안으로 가져가면 '바삭'하는 소리가 났다.


 "오늘도 정말 맛있네! 이런 돈가스라면 매일이라도 먹을 수 있겠어!"


 딱히 누구를 향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감탄사를 나는 연신 쏟아냈다. 동생들은 나이프를 열심히 놀려 고기 조각을 입으로 가져갔다. 엄마의 흐뭇한 시선이 우리를 뒤따랐다.


 여름이면 십수 년은 된듯한 한일선풍기가 달달 돌아가고, 겨울이면 그 선풍기보다 더 나이를 먹은듯한 철제 난로가 안을 덥히는 곳. 바늘이 소릿골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며 LP의 소리를 재생하고, 가끔 지지직거리는 잡음마저 오히려 여백처럼 편안했던 곳. 돈가스도 좋았지만 그런 아날로그의 편안함과 여유로움이 정겨워서 나는 그곳을 애정 했는지도 모르겠다.


 돈가스와 행복한 추억을 쌓으며 우리 삼 남매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겨갔다. 소중한 기억이 깃든 그 가게가 언제까지고 우리 곁에 있어줄 거라 생각했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돌연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도 행복한 기억은 아직까지도 가슴에 남아있다.


 아이들을 위해 돈가스를 만들다 떠올려본 유년 시절의 추억. 아스라한 기억의 조각은 돌고 돌아 나의 두 딸에게 회귀한다.


 꼬맹이들도 커가며 '추억의 장소'들이 켜켜이 쌓여나갈 것이다. 이 아이들이 자라나는 시대는 내가 자라던 시절과는 완전히 다르겠지만 그래도 세대를 초월해 소중하게 느끼는 '공통의 감정'이 있을 것이다.


 쌍둥이가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고, '추억'을 각별하게 여길 줄 아는 섬세한 아이들로 자라나 줬으면 좋겠다. 상대의 정성을 헤아릴 줄 알고, 작은 것도 감사히 대할 줄 아는 따뜻한 '어른'으로 커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기 위해 나부터 오늘 하루의 식탁을 좀 더 소중히 여기고, 타인을 배려하는 어른의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그것이 쌍둥이의 인생을 비추는 작은 빛이 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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