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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희 Oct 23. 2019

명품 조연 공심채 볶음



 중국에 처음 간 것은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부모님을 따라 처음 접한 중국은 엄청나게 넓었고, 거리는 복잡했고, 귀가 따갑게 시끄러웠고, 지저분했다. 이쯤 되면 중국이 싫어질 만한데 3박 4일의 여행을 마칠 즈음에는 떠나기 싫어 발을 구를 정도였다. 음식 때문이었다.


 호텔에서든 대형 식당에서든 노상의 가게에서든 음식은 푸짐했고, 맛있었고, 가격은 미안할 정도로 저렴했다. 대식가인 데다 비위가 세고 새로운 음식에 대한 경계심이 던 나는 그릇이 넘치도록 나오는 푸짐하고 맛있는 중국의 음식들이 퍽 마음에 들었다. 딤섬은 매 끼니 물리도록 먹었고, 베이징 덕도 수차례, 꿔바로우, 마파두부, 양꼬치 등 갖은 요리를 섭렵했지만 그 가운데 소소해 보이나 내 식욕을 강하게 잡아끄는 음식이 있었다.


 메인 요리 옆에 소박하게 자리 잡은 간단한 채소반찬. ‘한국의 나물 같은 건가?’하는 마음으로 한입 베어봤다. 아삭하게 씹히는 채소 줄기에 짭조름한 간이 배어있어 입에 쩍쩍 달라붙었다. '우와 이거 뭐지? 정말 맛있는데!' 다른 메인 요리들을 제쳐두고 나물 한 접시를 혼자 다 비웠다. 그 나물이 제주의 유채와 비슷한 '공심채'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공심채는 미나리과 식물로 ‘줄기 속이 비어 있는 야채’라고 해서 공심(空心) 채(菜)라 불린다. 동남아에서도 대중화된 채소로 나라마다 꽁신 차이, 깡꽁, 팍붕, 모닝글로리, 워터 스피나치 등 불리는 이름도 제각각. 평범해 보이는 외양이 특색이 없어 보이나 그 '무색무취'가 오히려 맛의 빈틈을 제대로 공략한다. 나물의 아삭한 식감에 짭짤, 쿰쿰하게 따라오는 어장(醬)의 맛이 입맛을 확 돌게 한다.  


 중국이나 동남아에 가야 먹을 수 있던 공심채를 이제는 가정에서도 쉽게 조리해 먹을 수 있게 됐다. 국내 대형마트에서도 공심채나 초이삼(노란 꽃까지 먹는 채심)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보통 허브들이 위치한 특이 채소 칸에 자리하는데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서 마트에 갔다가 보이면 한두 단은 반드시 카트에 넣는다.


 공심채는 줄기의 아삭함을 살려 조리하는 게 핵심이다. 너무 볶아서 채소의 식감이 사라지면 아쉽다. 뜨거운 기름에 마늘과 월남 고추로 향을 내고 공심채의 대를 먼저 잎 부분을 나중에 넣고 불맛을 내며 재빨리 볶아내는 게 공심채 요리를 살리는 포인트. 마지막에 굴소스와 피시소스를 적당히 뿌려 마무리하면 되는데 맥주에 곁들이면 근사한 술안주가 된다.


 어느 날은 마트에서 공심채를 30%나 할인판매를 하고 있길래 덜컥 네 봉지나 사 오게 됐다. 오래전 중국에서 맛봤던 ‘최초의 한입’을 떠올리며 쌍둥이에게 공심채로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잘게 썬 한우 우둔살에 맛간장과 참기름, 후추를 살짝 뿌려뒀다. 마늘 기름에 밑간해 둔 쇠고기를 넣어 익히고 마지막에 공심채를 넣어 휘릭 불맛을 주었다.


 접시에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을 넓적하게 펴고 쇠고기 공심채 볶음을 듬뿍 얹었다. 쌍둥이에게 접시를 건네니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포크를 들었다. 쌍둥이의 포크는 공심채의 이파리로 직행하더니, 그 이파리는 이내 작은 입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하는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리더니 괜찮았는지 접시에 고개를 밀고 먹기 시작했다.


 아이가 없을 때 공심채는 추억을 레시피로 만든 좋은 '술안주'였다. 아이를 위해 밥을 짓기 시작하고부터는 그 공심채에 아이디어를 얹어 '밥반찬'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먹는 밥은 우리 가족을 지탱해주는 끈이다. 가족을 하나로 이어주는 끈. 이왕이면 그 끈에 맛있는 추억을 입혀주리라.  







recipe                                                                 

                              공심채 볶음



재료(1~2인분)

공심채 한단(약 220g), 마늘 10톨, 월남 고추 5개, 올리브 오일 4큰술, 피시소스 1큰술, 굴소스 1/2큰술


만드는 법

1. 공심채는 대와 잎 부분을 분리해 한입 크기로 큼지막하게 썬다.

2. 마늘은 굵게 편 썰고, 월남 고추는 반으로 쪼갠다.

3. 큼직한 웍을 달궈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마늘과 월남 고추를 넣어 향을 낸다.

4. 공심채의 대 먼저, 잎을 나중에 넣고 센 불에서 재빨리 볶는다.

5. 피시소스와 굴소스를 넣어 간 맞추면 완성! 그릇에 담아 차가운 맥주와 함께 즐긴다.



*공심채는 초이삼으로 대체해도 되며 대형마트에서 한 봉지 2천원대에 구매 가능해요. 밑간을 한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더해 공심채와 같이 볶으면 근사한 메인 요리가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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