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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희 Nov 14. 2019

햄버거에 관한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이야기



 쌍둥이가 뱃속에 있던 2016년 여름, 기상캐스터는 연일 당부했다.


 "기상관측 이래 최고 기온입니다. 임산부와 노약자는 특히 일사병에 유의하세요!"


 서울시 일일 최고 기온, 35도! 36도! 37도! 최강의 폭염은 연일 숫자를 갈아치우며 위세를 떨쳤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서도 습식 사우나 문을 열었을 때처럼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병원 검진과 장보기 등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외출을 제외하고는 집안에 머물며 '자발적 감금'을 실천했다.  


 무덥던 여름의 한가운데 나는 임신 28주를 지나고 있었다. 단태아와는 달리 쌍둥이 만삭 출산은 37주를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기준일뿐 예기치 않은 복병으로 조기 출산을 하는 일도 빈번하다. 아이도 겨우 가진 데다, 임신 초기부터 여러 이슈들이 있어 태교여행은커녕 제주 친정 방문도 미룰 정도로 조심했다.


 그날도 오른쪽, 왼쪽에서 경쟁하듯 발차기를 해오는 아이들을 살살 쓰다듬으며 니시 가나코의 <사라바>를 읽고 있었다. 기행을 일삼는 괴짜 누나를 대신해 모두에게 사랑받으려 노력했던 한 남자아이의 성장사를 다룬 이야기. 이집트 카이로에서 유년을 보낸 소년의 이야기에는 고향 음식에 대한 향수와 생경한 카이로 음식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했다. 그러다 이 문단에 이르러 나는 엉뚱한 생각의 나래를 펴게 되었다.


매일매일 이 퍼석퍼석한 빵을 계속 먹는 일.
뜨거운 홍차를 흘려 넣는 일.
때때로 입안을 데고 벗겨진 점막을 혀로 핥는 일.
일곱 살인 나에게 산다는 것은 그런 일이었다.   


 문장에는 색도 향도 맛도 없다. 빵이 퍼석퍼석하다니 입맛을 돋우는 표현도 아니다. 그런데도 뇌의 연상작용은 희한하게 가지를 뻗더니 생뚱맞은 종착지에 이르렀다. 조금 퍼석퍼석하지만 도톰한 번에 패티가 두 개 깔려있고, 마요네즈와 양상추가 듬뿍 든 '햄버거'.


 일단 먹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자 나의 온몸이, 뱃속의 두 아이까지 햄버거를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날은 너무나 덥고 몸은 물에 젖은 솜처럼 축 쳐져있으니 이를 어쩌랴.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갑자기 햄버거가 너무 당기는데 어떡하지?
좀만 참아봐. 퇴근하고 사갈게.
아냐ㅠㅠ 지금 당장 먹고 싶어.
그럼 배달앱으로 불러봐.
오다가 식잖아. 콜라는 김 빠지고.ㅠㅠ 집에서 가까운 주차 가능한 햄버거집 없을까?
잠깐만, 기다려봐.


 곧 남편에게 메시지가 왔다.


버거킹 동국대점이 있네.


 동국대라면 집에서 차로 5분여 거리다. 책을 덮고 목적지를 향해 차를 몰았다.


 외부인용 주차공간에 차를 대고 어기적어기적 차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한낮의 공기는 에어컨 실외기 앞에 서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뜨거웠다. 빛이 새하얗게 반사되는 아스팔트 위를 자그마한 숨을 토해내며 걷기 시작했다.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는데 다섯 번은 쉬어야 했다. 익숙한 빨간 간판이 눈에 들어왔을 땐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스가 따로 없었다.

 방학이라 매장 안은 한산 했다. 그 공간의 유일한 소음이었던 스피커의 악소리를 가르며 뒤뚱뒤뚱 카운터로 다가갔다. 직원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자신 있게 외쳤다.


 "와퍼세트. 패티 한 장 추가요."

 밖이 내다보이는 자리에 착석한 후 있는 힘껏 입을 벌려 햄버거를 베어 물었다.


 '음~역시 패티를 더블로 시키길 잘했어.'


 고생 끝에 맛본 햄버거여서였을까. 맛있었다. 아니, 단순히 맛있는 게 아니라 아주 맛있었다. 이런 맛이라면 기꺼이 출동할 수 있겠어. 마지막 한 조각의 프렌치프라이로 케첩과 마요네즈 한 방울까지 발우 공양하고 정문에서 주차료를 지불하고 나왔던 흐뭇했던 기억. 나의 햄버거, 나의 '사라바'였다.




 시간은 흘러 2018년 12월. 2년여 전 양수를 잔디밭 삼아 발을 뻥뻥 차며 축구를 하던 쌍둥이가 어느덧 만 두 살이 되었다. 뱃속에서도 그렇게 먹성이 좋더니 세상에 나와서도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잘도 받아먹는 꼬맹이들. 잘 먹는 아기들을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시장에 갔다.  

 

 하루는 집에서 멀지 않은 이마트 성수점에 갔다. 나에겐 쇼핑 불문율이 있다. 허기진 상태에선 웬만하면 장을 보지 않는 것. 배가 고프면 조금만 걸어도 피곤해져 주의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집중력이 흔들리면 필요 없는 건 카트에 넣고 정작 사 와야 할 건 빼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여 쇼핑에 앞서 항상 나만의 '의식'을 치른다. 이 날의 의식은 맥도날드에서 거행하기로 했다.

 맥도날드는 이마트 성수점 최고 맛집이다. 평일, 주말 거 없이 햄버거를 찾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 날은 점심시간까지 맞물려 줄이 상당히 길었다. 그 줄의 맨 끝에 나도 당당히 자리했다.


 당연히 빅맥을 먹으려고 했다. 맥도날드 하면 빅맥, 빅맥하면 맥도날드가 아닌가.  그런데 카운터 앞에 크게 붙은 광고 문구가 나를 강하게 붙들었다. <사진 참고>


 2018 베스트셀러냐, 통산 스테디셀러냐.


 책이라면 볼 것도 없이 스테디셀러일 텐데 이건 햄버거다. 번지수가 다르다. 어떻게 해야 하지? 베스트든 스테디든 분명 맛은 있을 것이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30분 전으로 고 싶다. 30분 전의 과거로 돌아가 친구 정승현 씨를 데리고 와서 베스트와 스테디시킨 다음 컷팅해 절반씩 먹는다면 완벽한 점심이었을 텐데. 생각이 짧았던 나를 반성하며 다시 고민을 이어갔다.


 줄은 점점 줄어들어 앞에는 이제 두명만 남아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저 두 명이 계산을 마칠 때까지 더 고민하고 결정해야지,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계산대 한 군데가 더 열렸다.


 "저 뒤 여자분부터 이쪽으로 오세요~~" 


 생각지 못한 직원의 부름에 나의 가슴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냐, 아직 아니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직 준비가 안됐다고.ㅜㅜㅜㅜㅜㅜㅜㅜㅜ'


 "손님 주문하시겠어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우물대다가 궁상맞은 질문을 해버리고 말았다.


 "뭐... 뭐가 맛있어요?!!"


 아, 이리도 바보 같을 수가. 말해놓고도 헛웃음이 나왔다. 주문받으랴, 계산하랴, 서빙하랴 정신없는 직원에게 이 무슨 바보 같은 질문이냐. 더구나 내가 스테디와 베스트를 놓고 고민하고 있을지, 아니면 제3의 대안을 두고 고민하고 있을지 직원이 알게 가.


 그런데 이 똘똘하고 눈치 빠른 여직원은 내 질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모양이었다. 입가에 미소를 띠고 분명하고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베이컨 토마토가 훨.씬. 맛있어요!"


 아... 한방에 해결된 나의 고민. 그리고 나의 외침!


 "네!!!!!!!!!!! 감사함돠!!!!!! 베이컨 토마토 세트로 주세욥!!!!!!!!!!!!!"


 이쯤에서 고백한다. 나는 식탐이 정말 많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인생을 이루는 수많은 것들  '맛있는 음식'이 가진 힘은 그 무엇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 잠들기 전 내일 아침 먹을 된장국과 생선구이가 냉장고에 있으산뜻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고, 쌍둥이를 재우고 남편과 맥주 한잔에 곁들일 삶은 문어 2마리가 기다리고 있다행복한 식탐녀다. 매 끼니를 맛있게 먹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나의 소중한 한 끼가 맛없게 허물어진다면 하루가 우울한 그런 여자다.   


 인생에서 맛있는 햄버거는 매우 소중하다. 햄버거는 맛도 중요하지만 온도도 중요하다. 아무리 맛있는 수제 버거라도 차갑게 식은 후라면 맛이 급격히 떨어진다. 내가 매장 햄버거를 고집하는 이유다. 2016년에는 폭염과 쌍둥이 임신을 뚫고, 2018년에는 똘똘한 직원의 한마디로 맛있는 햄버거로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격년 단위이니 다음 인생 햄버거는 2020년에 나타나려나.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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