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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Oct 08. 2020

나를 쓰게 하는 힘

찬 바람이 불면 신춘문예의 시즌이 다가온다


  

  찬 바람이 코끝을 기웃거리던 어느 10월. 두 번째 퇴사를 했다. 2년이면 잘 버텼지 뭐. 오랜만에 햇빛을 보고 하늘도 보고 발가락 끝에 신경을 집중해 보았다. 이제 아무 소속도 없다는 게 허전하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면 불편했다. 서울도서관에 가입을 하려고 갔는데 알아보니 서울에 거주하거나 서울 쪽 직장에 다니면 할 수 있단다.

  ‘에잇 그전에 가입해 둘걸’ 

  자유로움 반 불편함 반으로 가득했던 기분을 매끄럽게 해 줄 윤활유가 내게 필요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뭐라도 써보자고. 집중할 수 있도록. 

  내 지인들은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 대형 출판사 소설이 당선이 돼 꾸준히 활동하는 동생도 있고, 카피라이터 친구도 있다. 브런치로 꾸준히 연재를 해 책을 낸 친구들도 있었다. 난 그게 늘 부러웠었다. 글 쓰는 게 좋으면서도 이거밖에 내가 할 줄 아는 게 없어. 이걸로 먹고살 수 있을까 라고 물을 때마다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난 늘 방황했었고, 현실과 타협해 적당한 회사를 적당히 다녔던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신을 차렸을 때 서른은 다가왔고, 회사 면접을 볼 때도 미혼인지 기혼인지를 조심스레 물어봤었다. 세상에 나가고 보니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나이라는 장벽을 무시하지 못했었다. 퇴사한 후 백수가 된 10월의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했다. 

  “너를 집중시킬 수 있는 게 뭐니? 그런 게 있다면 해보지 않을래?”

  사실 두려웠다. 그래서 필요했다. 친구들은 ‘그러게 딴 데 알아보지 그랬어’ ‘회사는 공백기 있는 거 안 좋아해’ ‘우리 같은 나이는 이제 결혼할 때야 결혼하고 글 써’ 라며 주변인들 대부분은 내 선택에 대해 안타까워하거나 나이에 맞는 것들을 하는 게 좋다며 빨리 취업할며 나를 닦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

  그럼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내 나이가 어때서 라는 노래도 있다.  사 년 전 서점에서 동화책 한 권을 넘겨보며 아 나도 글 쓰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동화책을 절대 만만히 본건 아니다. 동화책에도 울림이 있구나. 그냥 단순한 게 아니구나를 느꼈기 때문에 해보고 싶었다. 그때 든 생각은 나도 한번 해볼까? 였다. 그냥 막연한 생각. 그래 거기서 끝났었다. 그러나 2019년 겨울은 내 생각의 회로가 해볼까 가 아니라 해보자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내가 당선이 될 경우 안됐을 때 경우를 생각해보니 기분이 찝찝하고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최대한 후회 없이 동화를 써보자고. 

"이십 편을 쓰자"



  동화의 동짜도 모르던 내가 아동문학 서적들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기본 틀을 알아야 동화란 걸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나온 책들도 있었지만 이론 위주의 옛날 서적들은 어려운 것들도 많았다. 동화 작법도 제각각이듯이 분명 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다 다를 것이 분명했다. 창작을 하며 세상에 쉬운 건 하나 없다는 걸 느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줄곧 시를 썼었다. 하지만 계획적이지 않고 충동적으로 소위 그분이 오시면, 필 받는 대로 썼던 적이 더 많았다. 마음을 다 잡아야 했다. 이건 동화야. 그래서 나에게 필요한 건 기승전결을 잘 만드는 법이었다. 기승전결을 잘 맞추기 위해서 그날부터 꼼꼼히 수상된 작품들을 봤다. 동화의 경우 인풋은 아주 많이 중요하다. 신문사 별로 어떤 동화 수상작들이 뽑혔는지를 훑어보며 밑줄을 치기 시작했다. 


“이십 전 이십 기 도전 정신”

  매일 동화를 읽고 주제를 정한 뒤 기승전결 쓰는 틀을 만들었다. 시를 쓰던 사람에게 계획적으로 짜임새 있는 글을 쓰기란 힘들다. 그래서 결심했다. 두 달 동안 동화 단편 20개 쓰기, 이십 편 정도 쓰면 뭐라도 되겠지는 무모한 도전 동전의 양면 같은 일이었다. 일단 내 눈에 띄는 11월 혹은 12월 신춘문예, 신인상 일정을 모두 긁어모았다. 그리고 하나씩 추리며 ‘까짓 거 스무 군데 내자’라고. 내 심장에게 말했다. 



  집중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공간이 필요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스터디 카페를 장소로 정했다.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있는 곳인데 시험공부를 하는 대학생들이나 공무원,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이들이 많이 찾았다. 그렇게 두 달 동안 글쓰기 삽질을 시작했다.

“안 된다는 일에 오기를 내는 답정너 정신”

“안 보이네요 더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사주 타로카드 집에 다섯 번째 갔을 때 깨달았다. 사실된다고 말하는 타로카드 집이 나올 때까지 집에 안 가려고 했다. 그런데 동네에 다섯 개가 다였다. 후회하지 않는 글을 쓰기 위해 두 달 동안 매일 동화를 꾸준히 썼다. 어느 정도로 열심히 했느냐 하면 유튜브로 동화 쓰는 법을 알려주시는 선생님의 강의를 다 받아 쓸 정도였으니. 사실 벽보고 글만 썼지. 좀 더 수월하게 쓸 수 있었던 건 그 선생님의 강의와 내가 읽은 책, 그리고 기승전결 만들기와 뚝심 있는 엉덩이 힘이었다. 

  매일 새로운 일이 있다면 글감과 아이디어 소재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글의 자양분이 되겠지만 없어도 된다. 아주 사소한 물건으로부터 기억으로부터 스쳐온 모습들 사이에 결이 묻어 있다. 그 결들을 자세히 보면 소재가 되고 씨앗이 됐다. 내게 글 쓰는 일은 내 마음의 결을 잘 다듬는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깨뜨리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을 좋아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새롭게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알을 깨고 나오듯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로운 나를 직면하기 위해 쓰고 또 썼다.



“2019년 당선 축하드려요”

“최라라 님 당선 축하드려요” 한 일간지에서 온 연락이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던 내게 동화라는 새로운 장르에서 당선 연락이 오다니. 혹시 이거 잘 못 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며 꽤 무덤덤했다. 사실은 스무 군데 다 탈락하면 내년을 노릴 생각이었다. 아 벽보고 20개 쓰니 한 군데 정도에서 내 글에 공감을 해 주는구나. 나도 쓸모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 너 그거 계속해 네 글은 집중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어. 친구들의 칭찬에도 나라는 존재는 항상 작아졌었다. 그랬던 내게 20작의 도전정신. 쓴다는 것은 큰 기폭제가 되어 돌아왔다. 

  나는 생각이 많다. 그래서 쓴다. 뒤끝도 심하고 누가 속상한 소리를 하면 울기도 한다. 마음의 상처는 얼마나 또 잘 받는지. 그래서 쓴다. 무언가를 위해서 쓰기보다는 나를 설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신춘문예의 시즌이 돌아왔다. 글을 쓰는 사람도 나였고 글을 쓰게 하는 힘도 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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