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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멈춤

by 혜온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보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

상대를 파악하는 기준은 참 다양하다. 그럼에도 그 사람의 진가를 알아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오늘 당신은 여기에 유능한 지표 하나를 더하게 된다.

브리야 사바랭이 던진 아포리즘에서 “먹는지”를 “질문하는지”로 바꾸면 간단하다. 상대는 어디에도 숨을 수 없다.

이에 대해 가스통 드 르비도 동의한다.

“누군가가 어떤 답을 하느냐보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가 그 사람을 더 잘 보여준다.”

평소 무엇을 묻는지 관찰하라. 인간의 욕망, 생각, 꿈, 모든 것이 이 질문 하나에 녹아 있다.


"이제 뭘 더 어떻게 해야 하죠?"

내가 만난 공시생 지은님은 원하던 공무원 시험에 두 번째 떨어지고 크게 낙담하던 중이었다.

하루에 10시간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지만 소용없었다며 하소연했다.

오로지 공무원이라는 목표 하나로 2년째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청년이었다. 그의 절망에 페어링 되어 내 가슴도 순간 먹먹해졌다.

"어떻게 하면 합격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비슷한 질문을 이어갔다. “공무원 시험 합격”과 “어떻게”, 이것이 현재의 그녀였다.


사실 나만 잘하면 합격할 수 있는 시험 만능의 시대는 일찍이 끝났음을 안다.

커트라인 90점대, 모두가 다 열심히 하는 마당에 남보다 앞설 뾰족한 방법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녀는 남들과 다른 일 하나를 훌륭히 해낸 뒤였다.

그동안의 패턴을 더 반복하거나, 좌절하며 그대로 나락에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은님은 그 흐름을 멈췄다. 질문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인과율이라는 거대한 물살에 휩쓸려 가는 것과 같다.

배가 고프면 먹이를 찾고 아프면 눕는다. 약자 위에 군림하고 강자에 굴복한다. 실패하면 좌절하고 성공하면 우쭐댄다. 힘든 건 피하고 편한 것을 추구한다.

이렇게만 산다면 인간이 동물과 다를 것은 별로 없다.

환경오염이나 유발하는 위험한 존재, 종말을 앞둔 위태로운 존재로 평가된다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인간은 질문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은 인과율의 물살을 거스를 운명이 주어진 것을 의미한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물론 흐름에 순응하며 편하게 가고 싶었다면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질문력이 얼마나 기적 같은 초능력인지 그리고 진짜 성장이 뭔지 알게 된다면 분명 생각이 바뀔 것이다.


질문력은 관성에서 벗어나는 일종의 비행술이다. 우리가 비록 날개는 없지만 인지적으로는 워프 드라이브, 타임머신을 능가하는 능력자다.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는 개인차가 있지만 말이다.

그 비행술 1장은 우선 ‘멈춤’이다.

거센 인과율의 기류를 버텨내는 일이다.

실패 앞에서 좌절하고 합격에 대한 갈망만 더욱 커져갈 때, 이 무심한 흐름에서 일단은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넌 잘하고 있어”

“힘내, 다시 시작해 보는 거야”

이 경우 보통은 이런 위로가 건네질 확률이 크다.

그런데 따뜻한 응원의 말도 가끔은 쎄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시선의 핀트가 맞지 않는 경우다.

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그게 아니야'

'난 변화가 필요해'


물살에 속수무책으로 떠밀리는 그 순간 정말 필요한 것은 응원이 아니라 질문이다. 어떤 질문이건 상관없다. 그 질문만이 나를 죽음의 강에서 건져 올릴 것이다.

인간은 질문력을 발휘할 때 비로소 두뇌 활동이 극대화한다.

‘내가 지금까지 왜 이걸 생각 못 했지?’

흐름을 멈추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달라지고 싶다면 질문하라. 당신의 특권이자 의무이다.


공시생 지은님은 바로 이 일을 해낸 것이다.

‘내가 하던 방식이 맞나?’, ‘어떻게 변화해야 하나?’

하루 10시간씩 하던 자신의 공부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그녀는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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