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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의 역설

by 혜온

"우리 애는 집중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조금만 책상 앞에 앉아있어도 지루해하고 딴짓을 해요."

요즘 집중력이나 몰입이 안 된다는 걱정이 늘고 있다. 고차사고력을 집중이나 몰입으로 오해한 결과이다.

그들은 우리의 집중력을 빼앗아가는 범인으로 무한 스크롤을 유발하는 기술과 미디어 시스템을 지목한다. 그리고 해법으로는 개인 차원의 디지털 디톡스가 권장된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이렇게 집중력 도둑에 모두의 이목이 쏠릴 때, 정작 집중력의 가치에 대해서는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 디톡스의 효과는 차치하고, 애써 찾아야 할 만큼 그 분실물이 가치 있는 것인지는 한번 따져 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집중해서 책을 읽는 아이를 보면 칭찬한다. 남의 아이라면 그저 부럽기만 하다.

그렇다면 세렝게티 평원에서 한 곳을 응시하며 집중하고 있는 암사자는 어떤가.

포식자들은 생존과 직결된 행동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집중력을 발휘한다.

집중은 사실 동물들이 더 잘한다. 반면, 산만함은 인간을 따라올 동물이 없다.

교육은 늘 그렇다. 잘하는 것을 못하게 하고 못하는 걸 강요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딴생각을 할 때 우리의 정신은 서로 다른 것들을 연결하기 시작하며, 종종 이 과정에서 문제의 해결책이 떠오른다”

“나는 딴생각이 주의 집중의 정반대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이유로 딴생각을 하면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실제로 딴생각은 다른 형태이자 반드시 필요한 형태의 집중이다.”

이 말은 다름 아닌 집중력 전도사 요한 하리의 고백이다.

산만함이 연결을 촉진하고, 학습의 실마리를 제공하며, 완벽한 집중보다는 적절히 분산된 주의가 고차사고를 도와준다는 사실을 니콜라스 카, 존 듀이,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등 관련 연구자들은 이미 누누이 밝힌 바 있다.


자녀의 학습부진으로 내담 한 성우님은 이런 고민을 털어놨다.

“아들 녀석이 통 공부에 집중을 못해요. 그런데 게임을 할 때는 집중력이 대단하거든요. 그런 거 보면 집중력이 없는 녀석은 아닌데 어떡하면 공부하게 할 수 있을까요?”

집중력 때문에 게임 중독이 되는 것을 보고도 그는 집중력이 학습력을 높여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무조건 집중이 좋다며, 딴생각을 터부시 하는 것은 인간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인간의 생각회로를 움직이는 것은 집중이 아니라 산만함이다.

만일 인간에게 집중하라고 강요한다면 그건 생각을 멈추라는 말과 다름없다.

실제로 요한 하리는 집중력 회복을 위하여 일부러 딴생각을 한다고 말한다.

“생각이 배회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집중력의 한 형태임을 깨달았다. ”

“생각이 자유롭게 떠다니며 예상치 못한 연결 고리를 찾아내도록 내버려 둔다”

그의 집중력의 원천이 “딴생각”이었다는 것은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한다.


집중력은 인간의 고차사고와 연결하여 설명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림자처럼, 집중력은 그 혼자만으로는 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고차사고는 질문력으로 연다.

문제를 찾는 것을 시작으로 메타사이클이 순환하며 더 좋은 문제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이 느린 사고를 끌어가는 질문력에게는 에너지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산만함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서치 라이트와도 같은 산만함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딘가에 숨은 진짜 문제를 찾아낼 수 없다.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진 파편을 알아보고 다시 이어 맥락화하지도 못한다.

인간의 위대함이 이 산만함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어쩌면 산만하기에 질문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한순간에도 끝없는 생각의 나래가 펼쳐지는 마법, 한 번에 전체를 보는 통찰.

문제를 찾고 맥락을 연결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인간의 기술이 바로 산만함에서 비롯된다.

어두운 밤 먼 길을 갈 때, 집중력이 발 밑을 비추어 준다면, 산만함은 주변을 훤히 비추어 방향을 안내한다.

산만함이 이끌고 집중력이 그림자처럼 뒤따르며 우리는 그렇게 생각의 강을 건넌다.


따라서, 집중력만 중시하고 산만함을 멀리하는 교육은 인간의 성장을 막는 반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질문력을 퇴화시키면서 기대와는 다른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은 멈추고, 그저 하루하루 애먼 휴대폰과의 전쟁만 계속하게 될 것이다.


‘잘 놀고 있구나’

만일 아이가 산만하게 뛰어놀고 있다면 진심을 다해 칭찬해 주자.

건강한 집중은 충분한 산만함 뒤에 찾아온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자면, 특히나 어린 시절에는 마음껏 산만할 수 있어야 한다.

집중과 산만함의 콜라보.

산만함 없이는 집중력도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혹시 여전히 아이가 책상 앞에 앉아 주어진 지식에만 집중하길 바라는가.

의지할 데 없는 집중력이 정착하는 곳, 그것이 학부모 성우님의 아들이 빠진 게임이다.

우리는 디지털 몰입 현상을 통해서 집중이 얼마나 쉽고 위험한 지를 목격하고 있다.

부족한 건 집중이 아니었다. 오히려 집중력 과잉을 걱정해야 한다.

집중할수록 질문력이 사라지는 원리를 아는 것.

이 무의미한 전쟁을 끝내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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