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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는 시기

사랑을 접는 연습

by 신수현

포기하는 순간이 반복되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결국 그 관계는 끝을 맞이하게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부모는 자녀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가족은 가장 가까운 존재이지만, 동시에 가장 큰 상처를 주고받는 복잡한 관계다.


문제는 바로 그 ‘가까움’에 있다.

서로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상처를 주고받고, 회피보다는 충돌을 선택하며 갈등은 쌓여만 간다.

그러다 문득, 가족 외부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내 가족의 문제를 깨닫게 된다.

부모는 남의 자녀와, 자녀는 남의 부모와 비교하게 되고, 그 비교는 끝없는 판단과 요구로 이어진다.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우리는 결국 관계를 포기하게 된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 위기가 있었다.

엄마는 아버지와의 싸움 끝에 링거를 꽂고서도 이혼을 원했지만, 나는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어린아이였다.

엄마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생명이 끊어질까 봐 두려웠다.


엄마는 18년간의 고생에 대한 대가를 원했고, 아버지는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했지만 그 말은 실행되지 않았다.

어쨌든 이혼은 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 시기를 지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가족은 하나둘씩 포기하기 시작했다.

포기란 사랑을 멀리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오빠들은 아내와, 언니는 형부와 가정을 꾸리며 떠났고,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부모는 자식 앞에서 숭늉도 못 마신다”는 말처럼, 엄마 아빠의 싸움은 큰오빠와 아버지의 싸움으로 번졌다.

큰오빠는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텔레비전을 던지려 했고, 아버지는 충격을 받았지만 그 장면은 보는 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집 앞에 꽈리가 열렸다.

문구점에서는 고무로 만든 꽈리를 팔았지만, 집 앞 꽈리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했다.

언니는 “퍼드득 뽀드득” 소리를 잘 냈지만, 나는 끝내 따라 하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잘 안 되는 일을 쉽게 포기했던 나는, 아버지가 나를 지원하지 않을 때, 엄마가 특별히 아끼지 않는다고 느낄 때, 동생의 버릇없는 모습에 지칠 때도 어느 순간 가족을 포기하며 살았다.


그렇게 멀어진 나는 사회와 종교단체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었다.

그들은 나와 비슷한 아픔을 안고 있었고, 말이 통하는 듯했지만, 가족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분위기는 달라졌다.

불화를 겪고 있다는 것조차 숨겨야 할 일이 되었다.

포기와 거리 두기는 다르다.

포기는 등을 완전히 돌리는 것이고, 거리 두기는 시선을 마주한 채 몇 걸음 물러서는 것이다.

상대의 눈을 피하지 않되, 상처받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는 것이다.

인간은 발전을 원한다.

그리고 그 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느낄 때, 우리는 관계를 포기한다.

그러나 때로는, 상대를 돕는 그 시간이 나의 성장 과정일 수도 있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우리는 너무 많은 관계를 등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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