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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Answer Jun 17. 2020

힙합은 오래된 미래다!

불혹을 눈앞에 둔 이에게 힙합이란?

Verse.1 힙합이 내게 다가오다.


언제쯤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고1~2 무렵이었던 같다.
랩을 처음 접하고 따라하던 때가. 

<1999 대한민국>이란 제목의 음반이었던 같은데, 

우리나라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했던 래퍼들이 모여 제작한 앨범이었다. 

그 시절의 랩은 기성세대에게는 가사를 흥얼거리며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길 없는 노래 갖지도 않은 것으로 치부되었기에 그걸 따라 부르는 학생들을 보고 손가락질 하던 때였다. 

그 삿대질을 받던 학생 중 한명이 나였을 거다. 

나로선 순전히 저렇게 빠르게 말하는 걸 들으면서 ‘나도 저 사람처럼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들어 따라 하기 시작했고 어쩌다가 리듬을 타면서 틀리지 않고 랩을 하게 될 때면 스스로 뿌듯했다. 

남들 앞에서 부르기엔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기에 노래방에서나 가끔씩 불렀고 나머진 혼자서 이어폰을 꼽고 버스를 타거나 걸으면서 중얼거렸다. 

이 같은 행동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차에서나 혼자 걸을 때 랩을 따라하고 있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에 랩을 처음 접했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드렁큰타이거, MC 스나이퍼 등의 노래를 자주 듣곤 했었다. 

그러다가 군 입대를 하게 되면서 점점 랩과 멀어져 갔고 복학을 하면서는 랩 음악은 내 MP3 플레이어 플레이리스트에서 자취를 감쳤다. 

이후 임용시험을 준비하면서 가끔 에픽하이 음악으로 마음의 위안을 받으며 가사를 흥얼거리며 따라 불렀지만 고등학생 때만큼의 순수한 열정은 아니었다.


임용시험을 합격한 후 교사로 재직하면서도 랩은 내 삶에서 존재감이 없었다. 

그렇게 4여년의 시간이 흘렀고 2014년 <Show me the money 3>가 대히트를 쳤고, 

dok2의 <연결고리>가 유행이던 시절이었으며 

S.M.T.M에서 Bobby는 dok2가 remix한 <연결고리#힙합>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또, 기리보이, 씨젬, 올티 등등 S.M.T.M에 출연한 래퍼들이 십대 아이들에게 인기가 끌었기에 그 당시 여중에 있었던 난 아이돌이라고만 여긴 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듬해 우연히 처갓집에서 밤늦게까지 TV를 보다가 <Show me the money 4>의 재방송을 보게 되었고 드디어 랩에 다시 빠지게 되었다. 

그즈음 학교축제에서 뭘 할까 고민하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랩을 하게 되었다. 

그중 로코의 <RESPECT>와 베이식의 <STAND UP>이 내 마음이 들었고 따라 부르기에도 비교적 쉬워 축제에서 부를 노래로 선택했다. 

학생들 입장에서 선생님이 자기들 앞에서 랩을 하니까 신기하기도 했고 그 당시 유행했던 거라 적지 않은 호응도 얻을 수 있어서 내겐 큰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다음 해 고등학교로 직장을 옮겼어도 계속 랩에 관심을 갖고 랩 음악을 들었다. 

<Show me the money 5>도 열심히 시청했었다. 

그렇게 랩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그해 2학기 농구수업의 주제로 힙합을 활용하기까지 했다. 

흑인들이 게토(Ghetto)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였던 것이 바로 농구와 랩이었다는 것에서 착안하여 정한 주제였다. 

내가 좋아하는 운동과 음악의 콜라보레이션이었던 셈이었다. 

또한, 이번 학교의 축제에서도 무대에 오르기로 해서 무얼할까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YouTube에서 스윙스의 무반주 랩을 듣게 되었고 너무 마음에 들어 도전할 용기가 생겼고 그리하여 난생처음으로 직접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을 활용하여 가사 내용을 생각하고 메모하면서 연습했었다. 

그렇게 수십 번을 쓰면서 연습했고 가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준비한 곡은 바비의 <연결고리#힙합>이었다. 

이 곡의 마지막 무반주 파트에서 개사하여 집어넣기도 했다. 

이렇게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은 랩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이었다. 

랩 가사를 적으면서 내 생각이 정립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라임을 맞추는 과정도 참 재미있었다. 

이렇게 나를 표현하는 도구로서 랩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던 거다.
 
Verse.2 힙합이 내게 들어오다.

2017년 올해는 한걸음 더 나아가 래퍼와 교류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바로 박하재홍. 

그와 만남의 첫 단추는 그의 저서 <랩으로 인문학하기>를 접하면서부터였다. 

인문학에 관심이 있던 나로선 좋아하는
음악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한다는 자체가 흥미로웠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장르가 있었으니 바로 “포에트리 슬램”이었다. 

글을 랩처럼 읽어내듯 말하는 장르였다. 

책을 읽는 내내 무척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래퍼가 아닌 일반인도 얼마든지 랩을 해낼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어서 더욱 관심이 갔다. 

사실 내가 래퍼가 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게 현실이지만 랩은 하고 싶고 힙합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포에트리 슬램”은 어쩌면 내가 있어서 삶의 돌파구이자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또 다른 그의 저서인 <10대처럼 들어라>를 읽고서는 음악을 수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알게 되어 실천에 옮기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음악을 추천받아 그중 일부를 수업 중에 들려주는 것이다. 

이즈음 애플뮤직에서 3개월 무료체험 이벤트를 알게 되어 더욱 쉽게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이 방법은 수업 중에 음악 듣는 걸 좋아하는 나로선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전에는 학생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면 자신이 듣고 싶은 곡만 듣고 싶어 해서 고민이었고, 

음악부장을 선발해도 그 학생들이 책임감이 있게 음악을 갖고 오는 게 아니라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고민과 힘듦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학급 내 학생들이 추천한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었던 것이다. 

이랬더니 학생들 사이에 불만이나 노래가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아서 참 좋았고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책으로 저자와 소통하던 그 때, 

엠씨 세이모(a.k.a 박하재홍; 이하 세이모)의 실제 만남은 학생자치회 행사로 인해 극적으로 성사되었다. 그전에 처음 그와의 연락은 “포에트리 슬램”을 어떻게 하면 수업 안에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에서 출발했다. 

<10대처럼 들어라>에 그의 이메일 주소가 적여 있었고 바로 내 고민을 적어 메일로 보냈다. 

그의 조언을 구했던 거다. 반신반의하면서 보낸 e메일이었기에 사실 답장은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매우 진지한 태도로 나의 고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메일로 보냈다. 

신기하면서도 고마웠다. 그 후 몇 차례 e메일을 주고받으며 조언을 구하면서 인연을 이어갔다. 

참고로 그와 연락하면서 “포에트리 슬램”을 “스포큰워드”라는 명칭을 바꾸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와 연락이 뜸하던 어느 날 간부수련회라고 불리는 행사를 준비하면서 프로그램을 짜느라 고생하고 있을 때 문득 그가 떠올랐고 이번에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e메일로 지금의 내 상황을 알렸고 도움을 청했다. 

사실 ‘어차피 안 될 테니까 질러나 보자’식으로 보낸 것이었는데 거짓말처럼 그가 흔쾌히 수락했던 것이다. 너무 흥분되었고 나부터 “스포큰워드”를 준비하자는 마음으로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공식적인 자리라 학교의 철학도 담아내고자 했다. 

그래서 <존중>이란 주제로 가사를 썼다. 

쓰면서 느낀 건 내가 갖고 있는 철학이나 가치관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 생각을 학생들이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메아리에 불과하더라도 말하고 싶었다. 

어차피 선택은 각자의 몫이므로.
이렇게 준비는 했지만 실제 행사에서는 내가 쓴 가사를 선보이진 못했다. 

세이모의 의견이 더 중요했으므로. 

그래도 이 행사가 값진 게 있다면 행사 직전 내가 그의 앞에서 선보였던 무반주 랩의 특징과 방법이었다. 

로코의 <RESPECT> 중 지구인 파트를 가사를 보면서 랩을 했고 박자를 세는 내 모습을 보고 무반주의 랩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며 시범을 보여주었다. 

과연 그러했다. 또 한 가지는 가사를 뱉을 때의 느낌이었다. 

가사는 낱개의 음절로 되어 있고 그 속에는 나름의 느낌들이 있다는 점을 조언해주었다. 

랩을 할 때는 그 느낌을 살려서 또박또박 내뱉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너무나 소중한 얘기였다.


이후 행사에서 난 학생들이 자작 랩을 쓰기 전 시범으로 나섰고 다듀팀의 <N분의 1> 중 넉살 파트를 선보였으나 역시나 버벅거리면서 잘 못했다. 

근데, 나로선 잘못해도 상관없었다. 

학생들 앞에서 했다는 자체가 의미가 있었고 큰 배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사 마지막엔 싸이퍼 형태로 모인 학생들 사이에 들어가 프리스타일 랩을 했지만 이 역시 별로였지만 내겐 시도했다는 것이 스스로의 만족감을 느꼈다. 

행사 이후에도 여전히 난 랩을 한다. 넉살의 <필라멘트>, 다듀팀의 <N분의 1> 등등을 흥얼거리며 연습한다. 그리고 간간히 내가 쓴 가사를 다듬고 있다.

Verse.3 힙합이 나를 드리우다.


난 매주 교사성찰일기를 쓰고 있다. 

2주 전에 쓴 글에는 힙합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했다. 

힙합은 문화고, 그 문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여 “SWAG”이라고 표현했다. 

자신만의 멋이라고 말했던 도끼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멋”을 다른 말로는 “개성”이라고 말했으며, 

그 개성을 드러내면서 내뱉는 말에 대한 “책임감”, 

개성을 인정해주는 “존중”이라고 풀었다. 

결국 힙합은 존중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말이 얼마나 정확한 표현인지, 얼마나 공감해서 설득력이 있는지 몰라도 내가 알고 있는 힙합은 그런 것이었다. 

다른 얘기지만 힙합을 한다는 건 네 요소 즉, 랩, 비보잉, 그래비티, 디제잉을 해야 한다는 편견을 깨준 사람이 있으니 바로,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씨다. 

그가 랩을 하는지, 비보잉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있어 그는 글로 힙합을 한다. 

덕분에 내가 힙합을 할 수 있는 분야도 더욱 넓어질 것 같다. 

난 글 쓰는 게 어렵지 않고, 

랩 가사를 쓰는 것도 즐기고, 

랩을 선보이는 것도 쑥스럽지 않으니까. 

그리고 교직에 있으면서 체육과 힙합의 연결고리를 갖고 학생들과 호흡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힙합에 관한 나의 이야기와 생각을 쓰면서 힙합을 하는 것처럼. 

힙합은 문화이자 삶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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