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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Answer Jun 14. 2020

잃은 후에 알게 된 이름 석자

2018.10.09. 그날을 기억하며...

“김인희”

내가 37년 만에 알게 된 그 이름. 

하지만...

이제 불러볼 수 없게 된 그 이름.     


10월 9일 늦은 밤. 한 통의 전화를 왔다. 아버지였다. 오지 않았으면 했던 반갑지 않은 전화였다. 


“문수야..........”

“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그저 안부전화이길 바랐지만 내가 예상했던 말이 흘러나왔다.


“알았다...”

“조심해서 내려와라...”

“......”


잠시 멍한 상태였다. 이내 정신 차렸고 그때부터 바빠졌다. 

오늘 출발해야 하나? 아내와 아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 상복은 어떻게? 부의금은? 

직장 상사는 왜 이리 전화를 받지 않지? 등등 마치 결정 장애가 온 듯 안절부절, 

우유부단한 모습이 나를 더 당황케 했다.      

얼추 일정이 정해진 후 잠자리에 누웠다. 20개월 된 아들을 겨우 재운 후였다. 

누운 후 천장을 쳐다보니 바로 떠오르는 이가 있다. 

엄마였다. 그랬다. 

엄마는 엄마를 잃었다. 

전화를 드렸다. 


“괜찮아요?”

“응...괜찮다...그러니까 은혜랑 준용이는 데리고 오지 마라. 

멀기도 하고 와서도 지내기도 힘들텐데....오지 마라....뭐 좋은 일이라고...”


본인 마음도 추스르기 힘들텐데......아들이랑 며느리, 손자 걱정이 먼저다.

원래 엄마는 이런 존재일까? 자기 자신을 돌봐야 할 때에도 가족들 생각이 우선이다.
본인의 존재를 잊은 채 살고 있는 것인가? 존재를 잊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타인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것인가? 

이랬던 저랬던 엄마에게 이름 석자는 안중에도 없다.     


근처에 사는 사촌 형과 함께 대구로 갈 채비를 했다. 지난 일요일에 할머니를 뵌 지 정확히 3일 만이다. 

이렇게 빨리 내려갈 줄이야. 원래는 오늘 대구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다행이었다. 

살아생전의 할머니 모습을 뵀으니까. 이 말이 참 세속적이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전에 업무로 여기는 내 모습하고는. 

정이 메말라도 한참 말랐다. 정내미가 뚝 떨어진다.      

그 때 할머니는 그저 병실에 누워 계셨다. 

딱 한번 눈을 뜨고 나를 비롯해 이모들을 살펴봤을 뿐, 본인의 생명을 기계에 의지한 채.....

가족에 기대지 못한 채.....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힘없이 축 처져 있는 할머니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알고 있던 할머니는 온데간데없었다. 

내 눈앞에는 명절 때면 항상 밝은 모습으로 나를 맞이해준 할머니는 없고 

힘없이 본인의 의지로 호흡도 하지 못하는 나약한 할머니뿐이었다. 

인생의 끝이 눈앞인데,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 어느 요양병원의 5층 한 병실에서 누워있다니...

할머니는 상상이라도 해봤을까. 

옆에 같이 누워있는 이들조차 죽음을 기다리고 있고 그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만이 병실에 가득한 이곳에서 이승의 삶을 마무리 하리라고는.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그날 아침, 점심까지는 상태가 호전되었었다고 한다. 

그날 저녁 할아버지가 찾아왔고 얼굴을 뵌 후로부터 급속도로 악화되더니 결국 숨을 거두셨다. 

살아생전 힘들게만 했던 남편과 마지막 작별인사라도 하듯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다.      


할머니는 한 줌의 재가 되었다. 바람에 흩날리기라도 하면 금방 사라질 존재로. 8

3년 인생이 그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이야. 세상사가 덧없이 느껴졌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담담하게 할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주었다. 

저승에서는 속 편하게 지내길 바라면서....

우리 걱정이랑 하지 말고 이승의 살은 훌훌 털어버리고 본인의 삶을 살기를 바랐다.      

할머니는 맑은 웃음과 작은 체구를 쏙 빼닮은 하얗고 조그마한 수골함에 모셔졌다. 

그리고 대구의 한 납골당 한켠에서 편히 쉬게 되었다. 


“김인희”


이름 석자가 새겨진 그 함을 보고 있노라니 눈물이 왈깍 쏟아졌다. 

어쩌면 이곳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의 모진 삶은 불구덩이보다 뜨겁고 아팠으며 이 작은 납골당보다 답답했을 생각에 마음이 메어졌다. 

그렇게 할머니는 우리 곁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왔다. 밀려 있는 집안일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어릴 적 내 모습을 이야기해줄 할머니가 없구나.....2살 때 엄마 곁을 떠나기 싫어서 대전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는 얘기를 해 줄 사람이 없구나....’


돌아가신 후에야 후회한다는 말이 맞나보다. 

뭐 그렇게 바빴고 할머니께 손자 얼굴도 보여주지도 않고 내 곁을 내줄 여유가 없었는지... 

뭐가 쑥스럽다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는지....거친 손 한번 잡아주지 못했구나...     

가족의 죽음은 내가 해온 행동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얼마나 가족들에게 무심했는지를....

나란 인간이 얼마나 인간미가 없는 놈인지....


착한 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못된 놈일 줄은 몰랐다.  

훗날 기억 저편으로 할머니가 잊혀질 때쯤 “김인희”라는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니까 할머니. 

못된 손자의 모습을 용서하세요. 

이 글을 할머니께 바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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