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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Answer Jan 12. 2021

넷플릭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나름 진지한 글쓰기 피셜

나는 이런저런 활동들을 참여하면서 오로지 나 자신의 만족만을 위한 것들도 있고 외적인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큰 것도 있다. 글쓰기를 예로 들면 어떤 글은 누군가의 글에 영감을 얻거나 그냥 쓰고 싶은 내적 꿈틀거림에 타이핑을 치고 스스로 위안과 성취감을 얻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글은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 글의 소재를 찾고 고민하면서 완성도 높은 글을 쓰고자 애쓰기도 한다. 어떤 글들은 꾸준한 외적인 보상으로 인해 의무감을 갖고 쓰기도 한다.



이는 무엇이 ‘옳다, 그르다’란 가치와 선택의 문제보다는 나의 마음가짐이 문제다. 우선, 스스로에게 뿌듯한 글들은 그 자체로는 만족스럽지만 어딘가 부족함을 느끼며 글쓰기의 동력이 미약하다. 내적 동기가 무척 중요하지만 들쑥날쑥하다고나 할까. 책상에 앉히는 자력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다음, 외적 보상에 대한 기대감을 품은 글들은 그간 생각해보지 않았거나 갈피를 못 잡는 글쓰기에서 도전심과 몰입감을 주지만 결과 발표 후에는 기대감이 썰물처럼 빠지고 실망감에 더해 공허함이 그 자리를 메운다. 외적 보상이 보장되어 있는 글들은 꾸준한 글쓰기가 가능케 하는 동력을 주지만 요구사항과 충족조건, 그리고 ‘반드시’라는 족쇄가 채워져 답답함이 앞선다.



내게 있는 지금 이 글은 첫 번째 경우에 해당되며, 넷플릭스 스토리텔러 공모전을 비롯한 브런치에서의 공모전 활동이 두 번째, 두피디아에 게시하는 여행기가 세 번째 경우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두 번째 경우에서 느끼는 공허함 때문이자 올해 목표인 ‘꾸준히 글쓰기 프로젝트’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제 하루 종일 메일과 브런치를 오가며 주최 측의 연락을 기다렸던 내 모습에서 씁쓸함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토록 외적 보상에 목을 매었는지 허탈감이 느껴져 위축되기도 했었다. 사실, 공모전의 합격여부가 내 경제생활이나 직장생활에는 하등의 영향을 미치치 않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연락을 기다렸던 이유는 아마 내 글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내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에게도 ‘잘 쓴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인정 욕구는 돌이켜보면, 나의 첫 글쓰기는 대학생활에서의 글쓰기 과제에서부터 시작된다. 최근 30대 이상 ‘라테’의 전형인 ‘싸이월드’가 지금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이었던 시절, 교수님의 미니홈피 게시판에 매주 과제로 수업소감문을 올려야만 했었다. 한 학기 동안 총 16회에 걸쳐 글쓰기를 하면서 처음에는 A4 크기 기준으로 한 장을 쓰는데, 4시간이나 걸렸던 것이 점차 시간이 단축되면서 1시간 정도면 거뜬히 분량을 채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운동부 출신이었던 나는 글쓰기가 매우 부족했었기 때문에 이 같은 시간과 노력이 불가피했었다. 그보다는 내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분석일 것이지만 이처럼 생각도, 능력도 없었던 내게 꾸준히 글쓰기를 가능케 해준 것은 바로 동기와 선후배들의 응원 댓글이었다. ‘잘 쓴다’식의 표현으로 응원해줬었지만 아마 그들은 선수 출신이 글을 쓴다는 자체에 대한 응원과 형식적인 댓글인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그 당시 내게는 글쓰기의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고래가 춤추듯 동료들의 칭찬에 글쓰기 과제를 해낼 수 있었다. 이 과정을 시발점으로 현재에 이르렀고 글을 쓴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작업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이 글을 쓰면서도 추억을 되새길 수 있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다. 잠재의식을 깨워 그 당시의 행동과 감정을 끄집어 현재로 되돌릴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옛일에만 머물지 않고 기억이란 타임머신을 태워서 현재로 불러들여 ‘지금 여기’에 존재시킨 다는 점에서 이 같은 목적으로의 글쓰기는 신비로운 동시에 특별하다. 또, 이 같은 글쓰기는 그동안 내가 가져왔던 생각들을 줄줄이 끌어당겨 글로 나타나게끔 한다. 가령, 나는 브런치 등에서 ‘글쓰기’에 관한 제목을 보노라면 의아할 때가 있었다. 사실, 글쓰기 자체에 대해서 할 말이 있을까 싶었다. 글 쓰는 방법에 관한 글은 각 대형 서점을 비롯하여 브런치에도 많이 널려 있으니까 방법론에 대해서는 굳이 쓸 말이 없을 것 같았다. 근데, 현재 내가 쓰고 있는 글이 ‘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내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남’이 소재가 아니라 ‘나’ 자신이 글감이라는 점에서 ‘글쓰기’란 주제의 글은 나와의 대화라는 점에서 ‘성찰’이다.



앞으로의 글쓰기에서 나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세 가지 경우 모두가 중첩되는 교집합(공통집합) 일 것이지만 이상은 현재에 존재하기 쉽지 않을 터. 고민 그 자체가 내면의 성장이라는 말인 ‘성찰’이라면 계속되는 ‘고민’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해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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