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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Answer Jan 07. 2021

왜 우리는 이 같은 일들을 반복하는가?

대학이 전부가 되어 버린 학생과 학교

얼마 전 두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 통은 저녁 10시경에 걸려왔다. 하지만 아들을 재운다는 핑계로 누웠다가 내가 먼저 잠들어 버려서 받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에서야 확인하고 문자를 보냈다.


지은아. 아들 재우면서 나도 덩달아 자버려서 못 받았어ㅠㅠ 무슨 일 있니?


아침에 보낸 문자에 대해 점심 무렵에 답장이 왔다.


아니에요ㅠㅜ 제가 밤에 연락드려서 죄송해요. 새해 인사랑 대학 얘기 때문에 연락드렸어요ㅎㅎ 사실 쌤이랑 오랜만에 전화하고 싶었어요^^


녀석도 참. 예상은 했겠지만 이 학생은 2년 전에 담임이었던 반의 학생이다. 항상 적극적이고 노력하는 학생으로, 부족한 내가 뭐라고 담임인 나를 믿고 1년 동안 따라준 아끼는 학생이다. 2학년에 올라가서도 내가 있는 교무실에 내려와서 그간의 썰(?)을 투덜거리며 풀던 나랑 쿵짝이 맞는 아이였다. 2020년에는 내가 학교를 옮길 때 코로나로 인해 인사도 제대로 한번 나누지 못한 채 헤어졌던, 고3까지 옆에서 응원해주고 격려해주지 못해서 마음에 걸렸던 아이기도 했다. 그래도 1년 동안 틈틈이 연락하고 수시 시즌에는 대학 정보 및 조언도 구하고 알아봐주면서 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여름에는 당시 우리 반이었던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이라도 건네주면서 마스크를 쓴 어색한 모습으로 마주하기도 했다.



그런 아이였기에 문자를 보자마자 전화를 했다.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묻어 있었지만 어딘가 주춤거리고  어색한 기운이 들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수화기 넘어 약간의 한숨이 들리면서 대학 합격 얘기를 꺼넸다. 나는 지은이가 고생하며 대입 준비를 했다는 것을 알기에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의외의 말을 보내왔다.


선생님 미안해요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왜 미안하다고 하는지를. 마냥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줄 수 없었다. 이럴 때면 내가 더 미안해진다. 그 대학의 네임벨류가 뭐라고 그간 고생했던 아이의 입에서 저 같은 말이 나오는가. 회의감과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고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는 것일까? 20년 전의 우리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실이 참 야속하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학교를 옮기면서 대입에 관해 관심을 갖고 어떻게든 도와주기 위해 많은 활동들과 상담을 해왔지만 이 같은 행동이 과연 우리 학생들에게 무엇을 남기는 걸까?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등등 인 서울 중에서도 상위 대학이 입학해야만 학생과 교사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결과인 것일까?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자신들의 노력에 대해서는 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일까?



한편, 지은이와의 통화 후 다음 날 또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들의 점심을 차리느라 정신없던 그때, 전화벨이 울렸고 누군지 확인한 후 바로 받았다. 2년 전 담임을 맡았던 시은이었다. 지은이와도 절친이었던 아이였다.

수화기 너머로 기쁨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예상했겠지만 합격 소식이었다. 그것도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역시 진심으로 축하해주면서 연락해준 것에 고마움을 표현했다.



시은이는 지은이와 함께 1년 동안 나를 믿고 따랐던 학생이었고 2학년에 올라가서도 나를 찾아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웃고 떠들던 아이였다. 학교를 떠나면서 마음에 걸렸던 학생이기도 했던 아이에게 합격 소식을 들으니 뿌듯함을 느꼈다. 대견스럽기도 했다. 사실 이 학생은 체육계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1학년 때부터 나를 따라서 다양한 교내외 스포츠 활동에 참여했었다. 2학년 때에는 그 당시로서는 현실적인 얘기를 꺼내며 상처 주는 말도 했었지만 본인의 의지가 워낙 강해서 반신반의하며 이런저런 대입 정보 및 활동을 준비했었다. 이 같은 아이에게서 듣는 대학 합격 소식은 남다르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어저께 통화했던 지은이가 떠올랐다. 지은이는 시은이의 소식을 듣고 분명 축하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본인도 모르게 좌절감과 삶의 회의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질투심과 자격지심으로 인해 둘 사이가 어색해질 수도. 그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선뜻 연락하지 못했다. 그럴수록 본인 스스로 비참해지기도 하니까. 부디 지은이가 이 같은 생각과 기분을 가지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는 내가 미워지고 그들에게 이 상황을 물려줘야만 하는 우리 세대가 미안해진다.



학생 입장에서도, 교사 입장에서도 분명 합격 여부가 판가름 나는 이 시즌은 힘겹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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