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야구와 함께 시작한 인생

since 1982

by The Answer

#1 함께 탄생하다

1982년 대구직할시(1963년부터 1994년까지 사용했던 행정구역 명칭) 한 산부인과에서 한 사내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 아이의 이름은 가을이(뭐니뭐니해도 프로야구의 묘미는 찬바람이 콧등을 스치는 가을 야구!).

어찌나 아빠랑 똑 닮았는지, 그 아이를 모르는 사람들도 가을의 아버지를 보자마자 “이 아~아빠 맞죠?!완전 빼다 박았네!”라며 단번에 맞힐 정도였다.


1982년 3월 27일 삼성과 청룡의 프로야구 첫 경기 장면

같은 해 3월 27일 서울시에 위치한 동대문 운동장에서 “대구”를 연고로 한 삼성 라이온즈와 “서울”을 연고로 한 MBC 청룡의 경기로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시작되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고교야구의 힘을 빌려 롯데 자이언츠(부산), OB베어스(대전), 해태 타이거즈(광주), 삼미 슈퍼스타즈(인천) 등을 포함한 총 6개 구단으로 프로야구가 출범하게된 것이다.




#2 야구를 만나다

가을이의 가족은 대구에서 터를 잡아 살아가고 있었고 가을이는 당연히 이 지역을 연고로 하던 삼성 라이온즈를 자신의 팀으로 생각하고 지냈다. 마치 모태신앙과도 같다고나 할까. 분명 가을이는 운명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가을은 TV를 통해 야구 경기를 시청할 때면 삼성 라이온즈에 눈을 떼지 못했다. 밥을 먹을 때도, 심지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에도 그의 눈과 귀는 야구 중계에 빠져 있었다.


삼성의 원조 레전드 선수인 '헐크' 이만수 선수의 모습


가을은 종종 아빠를 따라서 대구 시민야구장에 갔었다. 하필 야구장에 갈 때면 항상 해태와의 경기를 관람했었는데, 그 당시 해태에는 “선동열”이라는 걸출한 스타와 함께 김성한, 한대화 등의 올스타급 선수가 대거 포진되어 있었다(공교롭게도 당시 해태의 수장이었던 김응용 감독과 선동열은 삼성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2000년대 초중반 삼성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에 맞서는 삼성에도 '헐크' 이만수와 '그라운드의 살구꽃'이라 불리는 류중일을 비롯하여 강기웅, 김성래 등의 선수들이 있었다('무쇠팔' 고 최동원 선수는 1988년 말 선수협의 문제로 롯데에서 삼성으로 이적당한 후 1990년에 은퇴하는 불운을 맞이하게 되었다).


1990년대 해태는 가히 무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패배를 모르는 팀이었다.

가을이의 최애팀인 “최강 삼성”은 MLB급 해태를 만나기만 하면 맥을 추지 못했고 가을이는 매번 발을 동동 구르며 경기를 지켜봐야만 했다. 역시나 가을이 시민야구장을 찾은 그날도 삼성은 해태에게 엄청난 점수 차로 패하고 말았다. 야구장에 모인 관중들은 소주병을 비롯하여 각종 쓰레기를 경기장을 향해 던지며 분풀이를 하였다(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광경을 가을이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가을은 그 혼란스럽고 위험한 야구장 한가운데서도 뚝심 있게 경기장이 떠나갈 정도로 목청껏 울어 댔었다.

성인이 된 가을은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기아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2024년의 가을은 가을이에겐 그 어느 가을보다 더 슬픈 계절로 기억되고 있다(한국시리즈 1차전을 연기했어야 했는데 결국 경기 도중 우천으로 인해 PS 사상 초유의 서스펜디드 게임이 진행되어 1:0의 리드를 지키지 못해 아쉬운 결과로 남았다. 늦게나마 푸른 피의 에이스 원태인과 6회초 솔로홈런의 사랑꾼 김헌곤에게 감사와 위로를 보낸다).

이번 이닝에 못한 얘기는 다음 이닝에서 계속 됩니다.

keyword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