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가을의 플레이오프 4차전 노트
여러분, 영웅은 있습니까?
지금 여기 라팍에는 영웅이 있습니까?
문현빈, 맞습니다. 그는 한화의 영웅이죠.
하지만 그의 존재감은 5회까지였습니다.
그럼 진짜 영웅은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는 진작부터
그라운드에 있었습니다.
삼성의 5번 타자.
타율 6할대.
플레이오프의 사나이.
팀이 위기일 때,
그의 패기로.
그리고 다시,
위기를 인기의 기회로.
위기 패기 다시 인기
우리는
그를,
김영웅
이라고 부릅니다!
이제 삼성은 대전으로 향합니다!!!
최강 삼성 히어로 누구!?
김! 영! 웅!
승리의 홈런을 날려라!
최강 삼성 히어로 누구!?
김! 영! 웅!
워어어~어어~어어어~
플옵 4차전.
가을을 비롯해 우리들은 염치가 없지만 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푸른 피의 에이스. 원태인.
"태인아. 또 그렇게 됐다."
유행이 될 판이다. 곧 밈으로 퍼질 듯.
여하튼, 그의 어깨는 전 우주를 감당해야만 했다. 라팍 전체를 짊어져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
"태인아. 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와라. 그동안 고생했다"
1회 초 문현빈의 적시타로 득점
5회 초 문현빈의 3점 홈런.
초반부터 그는 컨디션이 좋은 상태가 아닌 것 같았다.
뭔가 굳어 있는 듯한,
그래도 자신의 구위로 버티고 버텼다.
그러다 결국 한방 먹고야 말았던 것.
'푸피에' 원태인이 무너진 것.
우리는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그의 어깨는 수만 명의 기대를 걸머지기엔 많이 지쳐있는 상황이었기에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가을은 그에게 실망하지 않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다만, 가을은 그 어깨의 짐을 그들이 서로 나누어 지기를 바랐다.
이번엔 그들이 그를 도와야만 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6회 초.
가라비토가 그를 대신해 마운드에 올랐다. 잘 막아줬다.
급한 불은 껐지만 경기의 분위기는 완전 저들에게 넘어간 상황.
패색이 짙게 드리우던
6회 말.
그들은 공격에 앞서 감독과의 미팅을 가졌다고 한다.
"지금까지 너무 잘 해왔으니까 못 해도 된다.
우리 즐겁게,
재미있게 한 번 해보자.
웃으면서 활기차게 하자.
우리 선수들 정말 대견하다."
그들은 상투적인 말로도 들릴 수 있었을 것이다.
"마무리 잘하자"는 의미로.
하지만 그들은 감독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믿었으며 그렇게 행동했다.
가을은 이 미팅의 효과가 결과론일 수 있겠지만
되짚어보면,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점수차는 4 : 4.
좋은 경기 흐름에서 주도권이 그들에게 넘어온 상황.
잔뜩 힘이 들어간 상황에서 그들이 여유를 가지게끔
한 감독의 한 마디.
그렇게 기적의 6회 말을 맞이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
The Meeting
새로운 6회 말.
상대 투수는 황준서.
첫 타자는 김지찬.
타선에서 집중력을 발휘. 우중간 3루타를 날렸다.
이 깊은 타구는
영웅의 등장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 누구도...
다음 타자 김성윤.
황준서는 흔들렸다. 그래서 볼넷.
노아웃의 주자 1, 3루.
다음은 구자욱. 오늘 타격감이 올라온 그였다.
그의 타구는 좌측으로 향하다가 뚝 떨어지는 행운의 안타.
하필 좌익수는 저들의 영웅. 문현빈.
경험 부족에 온 보이지 않는 실책이었다.
결국 구자욱의 안타로 김지찬을 홈으로 불러드렸다.
그래서 스코어는 4 : 1.
가을은 그제야 막힌 숨이 조금 트이는 기분이었다.
'몰아쳐야 한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정말 이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것이었다.
노아웃의 주자 1, 2루.
다음 투수는
간판 마무리 투수 김서현.
그는 1차전의 부진으로 자신을 탓하며 절치부심의 자세로 임했을 그가 올라왔다.
그리고 가을은 생각했다.
긴 기다림에는 그만큼의 부담이 따라오는 법이라고.
그래서 찬스라고 믿었다.
솔직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다음은 디아즈.
그는 내야 깊숙한 땅볼을 쳤고 선행 주자는 아웃.
그는 세이프.
이 세잎은 디아즈의 전력질주가 있어 가능했던 것.
상대적으로 느린 발로 최선을 다해 달렸다.
1 아웃의 주자 1, 3루.
다음 타자는
김영웅.
사실, 그는 어제도 홈런으로 팀을 구한 영웅이었다.
하지만 팀의 패배로 문동주에게 그 자리를 내줘야만 했다.
그런 그에게 다시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
상대는 김서현.
강 vs 강
김서현은 초구부터 강한 속구로 그를 제압했다.
영웅은 헛스윙
2구 역시 높은 쪽의 속구.
영웅은 다시 헛스윙
가을은 아들과 기도 중이었다.
작은 휴대폰 화면을 함께 보며 두 손 모아 기도했던 것.
제발....
한 번만...
부디...
.
.
.
한편, 가을은 항상 기억하는 문구 하나가 있다.
헛스윙은 홈런의 예고편
준플 1차전 3회 초 영웅이 보여준 장면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래서 가을은 혼잣말로 주문을 건다.
영웅아. 헛스윙이 아니야. 홈런에 가까워지고 있는 거야. 가까워졌어. 포기하지 말고.
김서현의 3구.
역시 빠른 속구. 그것도 안쪽으로. 초구와 같은 쪽.
그는 영웅을 3구 삼진으로 돌려세울 심산이었던 것.
하지만.
영웅의 확신이 찬 스윙은
자신만만한 그의 공을
우측 담장 너머로
넘겨버렸다!
그것도 3점짜리로.
김지찬으로 시작된
추격의 서막이
영웅의 등장으로 마무리된 것.
그리하여
스코어는 4 : 4
승부는 원점.
이후에도 그들에게는 계속되는 기회가 있었다.
가을은 아직 폰세가 몸을 풀고 있어서 당장 올라오기 힘드니까 타이밍 상 그는 더 던져야 했다.
그래서 가을은 그들이 무너진 김서현을 몰아붙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최대한 많은 점수를 뽑아야만 폰세가 등판하더라도 해볼 만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추가 득점엔 실패.
다시 가을은 불안이 엄습해 왔다.
그들은 저들에게 항상 1점 차로 패했기에 그의 데자뷔로 느껴졌기 때문.
아니나 다를까.
위기 뒤에 기회라고.
7회 초.
저들은 가라비토를 상대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기세였다.
하지만 그는 위기 상황을 잘 모면하여 그들에게 기회를 허용하지 않았다.
같은 방식으로,
그들이 7회 초 위기를 잘 극복했으니 기회가 다시 와야 했다.
아니, 와야만 했다.
그리고 그 믿음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7회 말.
한화 투수는 한승혁.
그는 첫 타자 김성윤을 땅볼 아웃으로 1 아웃을 챙겼다.
1 아웃.
두 번째는 구자욱.
한 점차 승부였기에 그는 정면 승부는 무리라고 판단했을 것.
ABS존을 아슬아슬하게 빠져 가는 공으로 던지다가 결국 구자욱을 몸에 맞는 볼로 출루시켰다.
1 아웃의 주자 1루.
다음은 디아즈. 그 역시 결국 볼넷.
다음 타자는
전 타석의 영웅
김영웅.
1 아웃의 주자 1, 2루.
6회 말과의 데자뷔.
가을은 그래도 설마 했다. 그래도 욕심을 부렸다. 간절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1구
마침 상대의 초구는 김서현의 3구와 같은 쪽으로 날아왔다.
에이~설마...
그래도...
혹시...
어!?어~~~~~~어? 어!?
영웅은
그렇게 진정한 영웅이 되었다.
타구는 6회 말 홈런과 같은 방향으로 쭉쭉 뻗어갔고 우측 담장을 넘어갔던 것.
기적의 연타석 3점 홈런.
믿기지 않는 그의 퍼포먼스.
그야말로
대역전극의 마침표를 찍는,
이 시리즈를
대전으로 끌고 가는
폭죽과 같은
홈런이었다.
가을은 6회 초까지는 욕심이 과했다고 여겼다. 가을 야구를 잘 즐겼다고도 생각했다.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한 팀들보다 행복한 가을을 보냈다고 자부했다. 그렇게 위로했다.
근데,
그래도,
정말,
이기고 싶었다. 더 즐기고 싶었다.
근데, 그게 이루어졌다.
욕심과 간절함이 기적을,
기적이 현실로 다가온 것.
이제.
우리는 다시 대전으로 향한다.
참, 생각해 보니 대전이 대구보다 잠실에 더 가까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