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Answer Aug 03. 2020

아르노강을 따라 르네상스가 흐르다

부부 여행단의 이탈리아 여행-피렌체 2편

피렌체에서 깨어나는 일,
햇살 비쳐 드는 객실에서 눈 뜨는 일은 유쾌했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일,
익숙하지 않은 걸쇠를 푸는 일도 
햇빛 속으로 몸을 내밀고 
맞은편의 아름다운 언덕과 나무와 대리석 교회들,
또 저만치 앞쪽에서 아르노강이 강둑에 부딪히며 흘러가는 모습을 보는 일도 유쾌했다.


영국의 소설가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가 소설 [전망 좋은 방]에서 피렌체의 아침을 위와 같이 묘사했다고 한다. 어쩜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

피렌체에서의 둘째 날이 밝았을 때 우리가 맞이한 아침의 느낌을 잘 표현한 글귀였다. 우리의 아침은 비가 왔다는 것뿐, 다른 모든 것들은 우리의 감정을 잘 대변하고 있어서 참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쿠폴라에 오르기 위해 일찍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종종걸음으로 두오모로 향했으나 이미 줄이 길게 서 있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어 얼른 줄을 섰다.

쿠폴라에 올라가는 길은 고난이었다. 총 463개의 계단을 한없이 올라야 했기 때문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한 줄로 서서 천천히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간다고 상상해보라.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겠는가. 그래도 쿠폴라에서 바라보는 피렌체의 모습을 상상하며 한 걸음씩 내디뎠다.


정상에 다다르기 전 마지막 관문인 가파른 계단들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랐고 드디어 쿠폴라에 도착했다.

고생 끝에 낙이라고 했던가! 정상에 선 순간! 탄성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안갯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이 도시는 신비스러움을 넘어 영험함마저 자아냈다.

도시의 시그니처인 주황색으로 덮인 건물 지붕들과 종탑을 비롯한 각 명소들이 선명하지 않았지만 마치 도시 전체가 실루엣처럼 보이는 이 모습이 참 아름다웠고 중세도시를 상상할 수 있게 해 주어서 참 고마웠다.   

쿠폴라에서 내려다본 피렌체의 모습
쿠폴라에서 본 조토의 종탑과 두오모 지붕의 모습

그렇게 쿠폴라에서의 뜻깊은 시간을 보낸 후 이 도시의 속살을 더 들여다보기 위해 골목 곳곳을 돌아다녔다.

중세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골목들은 우리가 마치 15세기 유럽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시뇨리아 광장의 베키오 궁전과 회랑의 모습

우리는 시뇨리아 광장과 우피치 미술관을 지나 아르노 강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어느 음악가의 버스킹이 눈에 띄었다.

사실 도시 곳곳에서 노래하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자신의 예술적 감수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브루넬레스키 등 수많은 르네상스의 인물들이 이곳에서 자신을 미술과 건축, 조각으로 마음껏 표현한 것처럼.

우피치 미술관의 외관 모습

이 감동을 품은 채 아르노 강변을 거닐다 보니 마치 예술가가 된 듯했다.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베키오 다리에서 우리를 보며 손짓하는 것 같았다.

이 기분을 한층 높이기 위해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OST인 [The Whole Nine Yards]를 들었다.

이 순간, 영화 속 주인공이 쿠폴라에서 재회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이었을까.

이 도시와 이 음악은 영화 속 주인공인 쥰세이와 아오이처럼 운명이다.

베키오 다리의 전경

우리는 영화와 문학, 예술이 숨 쉬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 피렌체를 유유자적하며 다녔다.

늦은 밤 저 멀리 두오모가 살짝 얼굴을 내밀며 인적이 드문 축축이 젖은 골목길을 걷고 있노라면 이곳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둠 속에서 더욱 밝게 빛나는 별이 된 기분이다. 항상 두오모가 곁에서 지켜줄 것만 같은 이 기분은 무엇일까.

피렌체 어디에서든 보이는 두오모의 모습
아르노 강변의 모습들

피렌체는 자신의 향기를 온몸으로 맡은 우리에게 절정의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작은 연주회였다.

늦은 밤 숙소로 발길을 재촉하던 중 어느 20대 음악가의 바이올린 연주 앞에서 멈춰 섰다.

아내가 좋아하는 [My Way]가 흐르고 있었다. 뜻밖의 행운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우연한 기회에 좋아하는 음악을 아름다운 두오모 앞에서 듣고 있는 이 순간이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피렌체에서의 피날레를 아름답게 해 준 그 연주가와 이 도시가  참 고마웠다.

어제 봤었던 그의 연주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가끔 여행을 장소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유명 관광지에 들러서 인증숏을 찍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러다 보니 여행한 곳마다 사진만 찍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패턴이 되기 십상이다.

이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이 점도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여행을 장소의 변화, 공간의 이동만이 전부가 아니라 시간의 변화와 이동, 경험의 축적, 생각의 깊이와 범위의 변화, 일상의 재발견 등 인간의 총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봤으면 한다.

여건상 여행을 자주 다니지 못하는 우리 부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어렵사리 떠난 여행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계기가 되기를.

우리의 평범한 삶에서 비범함을 발견하는 눈을 갖게 되는 기회가 되었으면.

마치 소설 [연금술사]에서 산티아고가 긴 여정 이후 자신이 찾던 보물을 본인의 터전에서 찾을 수 있었던 그 안목을 기른 것 같이.  


이전 16화 그곳을 다시 가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