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일을 겪었지만 세비야에서의 렌트카 일정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세비야로 여행지를 옮긴 후에도 숙소에서 계속 렌트카 관련 내용을 검색했다.
그러던 중 국제면허증만으로도 운전을 할 수 있다는 블로그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비록 스페인에서의 사례는 아니었지만 실낱같은 희망이 보였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산타 후스타 역으로 향했다.
세비야에서 눈에 띄었던 전동 킥보드를 타고 출발했다.
택시는 비용이 조금 부담되고 걸어가자나 멀고 그래서 떠오른 것이 전동 킥보드였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작동이나 운전이 서툴렀지만 점차 적응하더니 이내 베스트 라이더가 된 내 모습에 흡족했다.
현지인들은 일상 속에서 출근하느라 분주해보였고 자전거를 타거나 나처럼 킥보드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꽤 보였다. 마치 내가 세비야에 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킥보드로 30분을 내달린 끝에 도착한 산타 후스타역.
우선, 역 안에 있는 렌트카 업체를 들러서 절박한 심정을 삼아
국제면허증과 마드리드에서의 운전기록을 보여줬지만 돌아오는 답은 NO.
다음은 역 외부에 위치한 렌트카 업체들을 컨택해보기로 하고
마드리드에서 차를 빌렸던 같은 enterprise 회사에 문을 두드렸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역시나 국내 면허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
우울한 기분으로 옆에 있던 SIXT 업체에 들어가서 똑같이 질문했는데, 왠일로 "OK"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너무 좋았던 나는 재차 물었고 그들은 운전기록과 국제면허증이 있으면 된다는 확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일정과 가격.
기쁜 마음을 이내 진정시키고 일정을 물어봤고 기대감에 한껏 부푼 내게 돌아온 것은 우리 일정을 맞출 수 없다는 것.
우리가 세비야에서 떠나는 날에만 가능했던 것이었다.
결국 포기한 채 업체에서 나왔고 맞은편에 골드카 업체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지막으로 도전했다.
똑같은 질문과 내 상황을 전했고 직원은 몇차례 검색하더니 너무나 환한 표정으로 "OK"답했다.
또 다시 희망이 보였다. 일정을 물어보니까 이틀 후에는 가능하고 아내 이름으로 예약하되,
나를 운전자 추가해야 한다는 옵션이 걸려 있었다.
'그 정도쯤이야.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당신의 차라고!'
당연히 수락을 했고 예약 문서를 작성하면서 예약금에 대해서 물었더니 의아하게도 당일 아내가 직접 결재하면 된다고 했다. 뭔가가 의심스러움을 지울 수 없어서 직원명과 이메일을 받았고 옆 직원의 이름을 파악한 후에야 업체를 나설 수 있었다.
아주 기쁜 마음을 안고 킥보드를 타며 숙소로 향했고 오는 길에 느꼈던 차가운 공기가 상쾌함과 청량함으로 변해 나의 마음 속까지 정화시키는 듯했다.
그렇게 그날의 세비야 여행 일정을 가볍게 시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