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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면 Oct 24. 2021

내가 찜통더위에도 압박 붕대를 하게 된 사연

나를 파업하게 만든 두 가지 사유


선천성 림프부종 질환,

난치병 진단을 받은 후 일상 속에서 가장 달라진 점을 두 가지 꼽자면, 바로 이것이다.     



1. 매일 압박 붕대를 감고, 풀어야 한다.      

2. 라면, 떡볶이, 국물, 매운 것들을 멀리해야 한다.         

 


살면서 먹고 마시는 것이 가장 큰 만족으로 여기며 살았던 사람으로서는 두 번째가 가장

절망적인 지침이라고 여겼었으나, 사실 경험해보니 크나큰 복병은 첫 번째였다.

입원기간 약 2주, 나는 암 재활센터로 매일매일 양 손 가득 붕대를 들고 출근했다.

무리가 되지 않는다는 자전거 타기 운동과 스쾃, 근력 운동을 1시간에 걸쳐 한 뒤

공기압 마사지 (림프부종 환자 전용)를 받고 체중을 재고 붕대를 감아주면 다시 입원실로

퇴근하고, 저녁밥과 약을 먹고 복도를 거닐다가 잠에 들었다.      



이걸 매일 반복하다 보니 입원 3일 때에는 아침에 무조건 일찍 일어나 붕대를 풀고

샤워실로 직행했다. 담당의사 선생님은 시간 약속이 칼 같은 분이라 회진 예약을 9시에 하면

무조건 9시에 오셔서 다리를 봐주셨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줄자로 붓기를 재는데, 어쩐지

부기가 생각보다 빠지지 않으면 묘한 죄책감에 사로잡히기 일쑤였다.     



다행히도 2주간 빠른 호전 상태를 경험한 나는 불과 한 달만에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버린 몸을 보고 절망감에 빠졌었다. 사실 누워서 병원에서 짜준 식단을 먹고 자고, 운동하고, 붕대를 하루 종일 감고 있으니 표면으로 나타난 부기가 안 빠지고는 못 배길 상황이었다.     



퇴사하고 몸이 한껏 자유로워진 나는 자가치료에 완전히 돌입하고 난 뒤 식단, 운동, 붕대감기를 병행하고는 체중이 급격히 빠지는 것을 느꼈다. 우선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바깥에서 파는 음식을 먹을 일이 거의 없고, 무리해서 걷거나 뛰는 것을 하지 않으니 다리가 터질 정도의 통증을 느끼는 일도 줄어들었다.      

물론 발이 부풀어 오르고 발가락 사이가 전혀 벌어지지 않는 것은 여전했으나, 당장 아프지 않다는 사실에 순간적인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행복도는 급격히 추락했다.

바로 뜨거운 여름이 오고 말았던 것이다.       



림프부종 환자에게 주어지는 특단의 조치로는 보통 두 가지다. 입원과 자가치료, 입원해서는

거의 24시간 내내 붕대를 감고 있어야 한다. 자가 치료자들은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스스로 붕대를 감고 자기 전에 풀어야 한다. 그리고 위에 명시된 식단은 무조건 지켜야 할 필수 항목이다.



6월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잘 지켜오던 나는 7월이 되자마자 그만 한계에 봉착하고 말았다.

양 쪽 다리를 발가락부터 시작해서 허벅지 위까지 칭칭 붕대를 감고, 그걸 하루 종일 장착한 채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경험해보지 않으면 말할 수 없다. 통풍이 전혀 되지 않아 답답하고, 더워서 반팔을 입어도 하체는 여름철 까만 스키니진을 입은 것처럼 속박되어 있는 기분에 하루 종일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퇴사한 이후 자연스레 백수 타이틀을 소지하게 된 나는 집에서 마음껏 에어컨을 킬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사면초가가 된 채 압박 붕대를 칭칭 감고 웃통을 훌렁 벗어던진 채 거실 소파에 누워 한숨을 내뱉는 날이 많아졌다. 폭염이라는 뉴스 자막을 보며 남몰래 눈물을 훔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붕대를 칭칭 감았다.     

압박붕대를 감는 데에 걸리는 시간? 양다리를 칭칭 감는 데에만 무려 40분이 소요된다.



그렇게 열심히 감고 나면 좀비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가 된 듯 집안을 어슬렁 거리며 다닌다. 화장실에 갈 때가 제일 곤욕인데, 변기에 앉으면 무릎을 굽힐 때마다 정강이가 당겨서 죽을 맛이었다. 봄, 가을 철에는 붕대를 감고 있는 시간이 나름 참을만했으나 여름이 되자마자 모든 걸 때려치우고 싶어졌다. 이쯤에서 양심선언을 하자면, 나는 찜통더위를 사유로 약 3주 간 파업을 했다. 물론 식단도 마찬가지였다.  


   

‘맛있게 많이 먹는다’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

‘먹방 비제이를 해봐라’     



수년간 가장 많이 들어왔던 말들이었다. 물론 2년 전부터 두 번째 문장은 듣기가 어려웠지만 말이다. 주 2회 떡볶이 섭취가 당연했던 떡볶이 러버, 배달 어플의 금메달 소유자, 라면을 군대 후임보다 잘 끓였다는 극찬을 받았던 앞선 모든 타이틀이 쓸모가 없어진 사람의 절망감이란…․ 식단을 6개월 동안 잘 지켜왔던 나는 찜통더위 앞에 파업을 선언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그냥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련다”     


그렇게 3주가량 나는 압박붕대와 식단의 속박에서 벗어나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루에 라면 3개를 끓여먹고, 피자 한 판을 다 먹고, 치킨 두 마리는 기본에 떡볶이 한 통을

혼자 다 비웠다. 그러자 애써 감량한 살들이 다시 돌아왔다. 반가움에 몸서리가 쳐졌다.     

3주의 행복한 시간을 보낸 대가는 무척이나 썼다. 우선 예전처럼 건강한 몸이 아닌 탓에

피부가 죄다 뒤집어졌고, 붓기는 더욱 심해졌으며, 밤마다 통증에 시달려 병원에서 처방받고

먹지 않았던 진통제를 매일 섭취해야만 잠에 잘 수 있었다.     



결국 다시 켜진 건강 적신호, 정기검진을 받으러 간 병원에서 나는 담당의사 선생님께 꾸지람을 들었고, 다시는 그러지 않기로 한다. 인생은 게임이 아니다. 고로 나의 목숨은 한 개다.




“야, 나 딸피야!”     



라고 구조 요청하는 캐릭터에게 수류탄을 던진 꼴이 되었다.



두 다리의 정맥 순환제와 진통제를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온 날, 잠들기 전 나는 생각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어쩌면 나는 그간 평생 먹을 음식을 미리 다 당겨 먹은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스스로에게 미안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 날을 기점으로 나는 나를

이루고 있는 타이틀을 새로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다.    

 


‘맛있게, 많이 먹는 나’ 말고 다른 ‘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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