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라리 소를 키우련다
(feat. 아빠, 소는 위장이 네 갠데요?)
중, 고등학생 때는 인생을 살면서 내가 가장 음식을 많이 먹었던 시절이었다.
고깃집을 가서 혼자 9인분을 다 먹어치우는 막내딸을 바라보던 아빠는 참다못해
한 마디를 하셨다.
“나는 차라리 소를 키우련다.”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으나 아빠와 만담 나누기를 즐기던 나는 고기를 채 씹지도 않은 채
입을 벌리고 아빠에게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왜에?”
웃으며 단골 고깃집에서 나눠준 살얼음 식혜를 깔끔하게 목구멍으로 털어 넣은 아빠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소는 위장이 네 개래.”
“응, 그래서?”
“너는 위장이 족히 다섯 개는 되는 것 같아.”
“……․”
옆에서 나를 조용히 지켜보던 엄마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아빠는 농담인 듯 건넨 말을 끝까지 철회하지 않았다. 나도 어쩐지 수긍이 가서 반발을 하지 못했다. 그날부터 아빠는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차라리 소를 키울란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바깥 음식 많이 먹으면 안 좋다며 본인이 요리를 해주셨다. TV에서 방영한 백종원 셰프님 레시피를 달달 외워가며 닭갈비, 샌드위치, 불고기, 볶음밥, 떡국…․ 셀 수 없이 많은 요리들을 직접 해주었다. 어느 날은 요리를 돕는 내게 조용히 말했다.
“내가 요리한 거 네가 다 봤으니까 나중에는 네가 해 줘.”
아빠가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나는 그 말의 본래 뜻을 알고 있었다.
‘혹시나 아빠가 먼저 죽으면, 엄마랑 언니한테 해 줘’
“엄마랑 언니는 요리를 못해서 나 없으면 쫄쫄 굶을 거야.”
대답 않고 가만히 대파를 썰던 내게 아빠는 농담을 던졌다. 그러게,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아빠는 본인이 죽는다는 가정을 하면서도 우리 가족들의 끼니 걱정을
했던 것이다. 먹이고 또 먹여도 모자란 듯이 웃어주던 그날의 아빠를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얘는 눈이 진짜 이쁘다? 소 닮았어.”
그 옛날, 소를 키우는 게 낫다는 투박한 말 뒤에 따라붙은 아빠의 진심을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진 병이 죽는 병이 아니라 평생 앓는 병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빠의 마지막 순간을 내가 꼭 함께하고 싶으니까, 내가 위장이 다섯 개가 아니라 열 개라도
채우기에 급급했을 당신이 떠나기 전 그날의 밥상은 내가 꼭 차려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