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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Mar 24. 2024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아이와 개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고 했다.

'바람'이라는 건 그만큼 본인을 흔들었던 시련이리라.


세상에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두 가지 시선이 있다.

하나는 모든 것을 희생하는 모성의 상징으로 보는 숭고함과 

또 다른 시선은 사회와 격리되어 세상을 모르는 무지함.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울 때 나는 부단히도 이 두 가지를 오갔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일이 인류의 역사를 이어가는 위대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세상 모든 어머니들을 존경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일상적인 날들 중에 '애엄마'로 보일 때 받는 지탄과 비난을 온몸으로 견디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물음의 끝은 나 자신으로 향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하고 말이다.


솔직히 아이를 키우고 나서는 아이가 없었을 때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죽으면 레테의 강물을 마시면 이승의 기억들을 잊는다는데

죽지 않아도 그 강물을 마신 것처럼 아이가 없을 때의 기억은 어느새 내 삶에서 사라졌다.


아이가 내가 하는 일을 바꾸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바꾸고 결국엔 나의 사고를 바꿨다.

아이를 키우며 인간의 성장을 지켜보았다. 

태어나서 울기만 하는 인간이 어느새 걷고 뛰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능력을 갖추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이를 통해 아이 친구들, 친구 엄마들, 선생님들을 만나며 애가 없을 때는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을 만나며 아주 다른 인간관계를 경험했다.

경제적 개념도 바뀌었다. 나 혼자 빌어먹을 만큼 벌며 살면 족하다고 생각했으나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경제력은 거의 무한에 수렴한다는 것도 알았다.

죽음에 대해서도 그렇다. 나는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이 살고 있는 소박한 현실주의자라고 믿었으나 이제는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절대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개를 키운다는 건 그중 사소한 하나이기도 했다.

아이가 그렇게 키우고 싶어 하는데 그 소원 하나 못 들어줄까로 시작했다.

더구나 몇 년 전 큰 병을 앓았던 이후로는 나는 언제나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생각을 했고, 오늘 멀쩡한 사람이 다음 날 함께 할 수 없다는 일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좋아하지 않지만 개를 키우기로 했다.


내 인생에 아이를 받아들이며 배웠던 것들만큼이나 개를 키우면서 또 인생을 공부했다.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보는 개들이 어디에서 태어나는지 그전까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개가 상품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과정들에 분노하기도 했다.

그리고 반려동물이 가족이란 밀처럼 인간과 함께 하기 위해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고

말은 못 하지만 교감하려는 생명체에 대한 이해도 필요했다.


어제였다.

펫모차에 강아지를 태우고 가는데 우리 집 강아지와 같은 요크셔테리어길래

나도 모르게 멈추어 서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강아지가 없었을 때, 이렇게 낯선 타인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내가 아니었다.


잠시 스쳐가는 사람이고, 이름도 모르고 사는 곳도 모르지만 단지 키우는 강아지가 같은 종이라는 것만으로도

서로 경계심 없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건 우리 강아지 '러키'가 나에게 준 또 하나의 선물이다.


아이와 강아지를 키우기 전까지는 내가 많은 걸 희생하고 베풀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의 저출산도 경제적 어려움도 있지만 거기에 더 하는 건 '자기희생'이 크다는 생각이 아닐까 싶다.

내가 가진 것은 내어놓고 내 시간을 쪼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아이도 강아지도 선뜻 키우지 못한다.


그러나 인생을 살면서 아이와 강아지에게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받고 배우고 있기에 

내가 내어주는 것들이 얼마나 작은 것들인지 그 작은 것들에게 비해 돌아오는 커다란 사랑에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깨닫는다.


개를 처음 키울 때는 '인생이 개판이 되는구나.'라는 자포자기 마음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9개월이 지나 이제 거의 성견이 되어가는 강아지를 보니 강아지 이름처럼 '운수 좋은 개판'이라 말하고 싶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노래는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심지어 개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또한 이 글을 지금까지 읽어준 분들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우리들'입니다. 


   

나를 키운 아이와 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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