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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Mar 17. 2024

개판에서 말 거는 사람들

애를 키우기 전까지는 낯선 사람이 말을 걸 일은 거의 없었다.

아마 말을 걸었다면 일단 경계부터 했을 테고,  스쳐 가는 사람이 서로 말을 할 일은

전철이나 버스에서 살짝 부딪혔을 때 '죄송합니다.'가 가장 긴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애를 데리고 나가자 불쑥 말 거는 사람들이 생겼다.

특히 같은 아이 엄마, 할머니 등이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여전히 똑같이 보이는 세상에서 내가 또 다른 차원에 들어왔음을 이해했다.


애가 아니었다면 백화점 직원에게 수유실을 물어볼 일이 없었다. 

애가 아니었다면 아기 신발을 주워준 할머니에게 고맙다는 말과 동시에 몇 개월이냐는 질문을 들을 일도 없었고, 

애가 아니었다면 똥기저귀를 갈기 위해 항공사 직원에게 기저귀 교환대가 있는 화장실을 못 찾아 사무실을 빌리고 그 직원이 임신 7개월이라는 사실도 몰랐으리라. 


그런데 개를 키우니 연령을 초월해 말을 거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말을 못 하는 아이부터 노인 분들까지 내가 이렇게 평소에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스쳐 지나감이 멈춤으로 바뀌는 마법이 개를 통해 경험할 수 있었다.


아이들 중에는 부모로부터 교육을 잘 받은 아이들이 많았다.


"만져봐도 돼요?"

라며 허락을 구한다.

"물지 않아요?"

라고 묻고는 몇 번 쓰다듬고는

"감사합니다."

라고 돌아간다.


나도 강아지가 없었을 때 저렇게 교육을 잘 시켰을까 반성했다.


노인 분들 중에는 우리 강아지가 요크셔테리어이기에 과거에 키웠던 강아지들을 많이 회상하는 듯했다.

"우리도 전에 요크셔테리어 키웠었는데..."

라며 아련한 표정으로 몇 살인지를 묻고는 한다.


어떤 아저씨는 한참을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개가 너무 짖어서 미용실 하는 집에 갖다 줬거든. 그런데 며칠 만에...."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그리고 못 키워."

우리 강아지가 과거에 유행했던 요크셔테리어라 그런지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나는 그분들이 말을 걸 때마다 우리 강아지가 잠시 그분들의 반려견에게 '애도'의 시간이 되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아이를 키우면서 낯선 사람들이 말 걸 때 참 불편했었는데, 강아지를 키우면서는 나도 빨리 적응했다.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강아지와 의사소통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얻는다는 의미였다. 


집에서도 그렇다. 아이가 처음 생겼을 때 부부 대화 주제가 바뀌었듯이 딸, 남편과 대화도 또 풍성해졌다. 


결국 개판이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 공존이란 무게감이 점점 커지기만 한다.  

낯선 사람과 대화를 하게 해 준 두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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