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하신 커피와 천사가 나왔습니다
‘더 쌓이면 곤란한데….’
은아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면서 불안한 눈으로 창밖의 눈을 흘낏거렸다.
아이들에게 은아는 지금 ‘산타할머니’였다. 빨간 산타 모자를 쓰고 아래 위 빨간 산타 옷, 그리고 아이들 이름이 쓰여진 선물이 든 꾸러미를 옆에 두고 있었다.
자기 차례가 된 아이의 엄마들은 최고의 크리스마스 기념 사진을 남기겠다는 결의를 부드러운 목소리에 실어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웃으라고 했다.
은아는 이런 엄마들의 주문이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아 신경이 쓰였지만, 산타 모자를 쓰고 있으니 이미 즐거운 모습이라 살짝만 웃어도 은아의 눈 걱정을 숨기기는 수월했다.
10월초, 정수군 가족센터라는 곳에서 메일을 받았다.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를 기획하고 있는데 은아가 쓴 <<산타 할머니>>라는 그림책을 보고 연락한다고.
은아가 <<산타 할머니>>라는 그림책을 쓴 것은 벌써 십 년전이었다.
남자만 산타가 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산타의 능력 시험에 도전해 산타 할머니가 된다는 내용으로 크리스마스에 맞춰 출간했고 산타 할머니 복장을 하고 아이들과 북토크도 했다.
그 후, 크리스마스가 되면 은아는 크리스마스 행사에 초대 받고는 했는데 문제는 그 책때문에 정작 본인은 크리스마스 이브 밤 늦게서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책을 쓰던 십년 전에는 결혼 전이었고 아이도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그 책을 쓴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다른 그림책보다 유독 작가로서 초대받는 일이 많으니 유명 작가가 아니더라도 작가의 명맥을 이어주는 책이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매해 어느 곳에서 크리스마스 행사 의뢰가 올까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올해는 정수군에서 가장 먼저 연락이 왔고 흔쾌히 수락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정수군이라는 곳이 대한민국에 두 군데가 있다는 걸 몰랐던 은아에게는.
은아는 메일을 받고 검색해서 나온 충북 정수군을 보고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였고, 크리스마스라 차가 막힌다 해도 강의가 끝나면 집에 돌아오기에는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은아가 정수군을 착각했다는 것을 알아챈 때는 당일 날 아침이었다.
‘작가님 오늘 행사 관련 확인차 연락드려요. 좀 먼 거리지만 조심히 오세요. 여긴 눈이 오네요.’
그 동안 행사 진행을 위해 연락을 주고 받던 담당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서울은 푸른 하늘이에요. 그런데 충청도 쪽에 눈이 와요?’
눈이 온다는 말에 창밖으로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 답을 보냈다. 서울보다 아래인 충청도에 눈이 온다니.
‘작가님. 여긴 강원도 정수군이에요.’
마흔이 넘어도 모르는 것 투성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수군이 대한민국에 두군데라는 건 정말 몰랐다.
일단 네비로 다시 길을 검색했다.
3시간.
지금 당장 출발해야 강의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본인이 장소를 착각했으니 지금 시점에서 은아는 취소하겠다는 말도, 또 늦는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앗 제가 착각했네요. 곧 출발합니다.’
상황을 설명할 시간도 없었다. 은아는 이렇게만 문자를 남기고 일초라도 빨리 출발해야했다.
강원도 ‘정수’라는 톨게이트가 멀리 보이는 곳부터 정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직 눈이 쌓이지는 않았지만, 눈이 쌓이면 운전해서 서울로 돌아가는 밤길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런 은아의 걱정과 달리 가족센터에 꾸며놓은 트리며 은아가 차려입은 산타 할머니도 완벽한 크리스마스였다. 모두가 꿈꾸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가족센터에서는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도 준비해놔서 은아가 아이들을 한명씩 호명해서 선물해주는 것으로 훈훈한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데 행사를 마치고나니 눈은 더 굵어졌고, 차들도 서행을 하고 있었다.
우선 크리스마스 이브에 남편과 둘이 있을 지민이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오늘 산타가 올까?”
지민이의 첫마디였다.
“그럼. 우리 지민이가 착한 일 많이 했으니까 꼭 올 거야.”
“그치? 엄마, 언제 와?”
“지금 출발하는데 지민이 자고 도착할 것 같아.”
“나 안 자고 산타 기다릴 거야.”
“일단 아빠 좀 바꿔봐.”
“아빠~”
전화기 너머 지민이가 아빠를 부르는 소리에 이어 남편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전화 끊고 카톡 보낼게.”
은아는 남편과 대화를 지민이가 들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자마자 바로 카톡 앱을 켰다.
‘어떡하지? 눈이 너무 오는데.’’
은아는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운전하긴 어때?’
‘몰라. 크리스마스만 아니면 어디 모텔이라도 들어가 하루 자고 가는 게 나을 것도 같은데…’
은아는 눈 오는 날 운전하는 것을 무서워했다. 특히 크리스마스 이브는.
문제는 지민이에게 줄 산타 선물이 은아의 차 안에 있다는 거였다.
은아는 지민이가 산타를 믿고 있고 또 엄마가 산타라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미리 준비한 선물을 자신의 자동차에 숨겨두었다.
‘산타 선물만 아니면 그냥 여기서 자고 가도 될텐데….’
남편에게 카톡으로 하소연을 했다.
‘산타가 하루 늦는다고 하면 어때?’
남편의 아이디어.
‘음.’
그다지 기발하지도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냥 다 말해. 이제 삼학년인데.’
아이가 컸으니 그만 속이자는 남편의 말에 더 이상 대답할 의욕이 없어졌다. 남편의 말이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다 현실적인 이야기라는데 동의가 되는 자신이 더 싫었다.
모르겠다.
은아는 아침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배가 고플 때는 어떤 판단도 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삶의 지침을 상기할 뿐이었다.
‘커피와 천사’
촌스런 간판이 하나 눈에 띄었다.
쿡 웃음이 났다.
얼마 전, 과거 가수의 좋은 노래라며 유튜브에 떠돌던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 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노래가 떠올랐고, ‘엔제리너스’ 우리 안에 천사라는 뜻을 가진 유명 커피 체인점을 따라했나 싶었다.
어쨌든 커피든 뭐든 배속에 넣어야 앞으로 긴 시간 운전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식사를 하자니 더 지체할 것 같았고 후딱 커피와 간단한 빵으로 떼우고 서울로 출발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싶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