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운전을 하고 있었다. 은아는 아빠가 운전하는 택시 뒷좌석에서 앉아 있었다. 은아는 너무 놀라서 아빠를 부르려는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빠는 바지 속에서 검고 조그만 호출기를 보더니 가까운 공중전화 앞에 차를 세웠다.
통화를 하고 오는 사이 손님이 택시에 탔다. 손에는 선물을 들고 있었다.
“아, 오늘 산타 출동이시군요.”
이제는 기억이 희미해진 아빠였지만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말을 잘 거는 성격이었다.
“저는 작년에 들켜서 올해는 그냥 원하는 걸 말하더라고요.”
손님은 크리스마스 따위 귀찮군 하는 것 같았다. 언뜻 보기에 아버지와 동년배로 은아랑 비슷한 또래의 자식이 있지 싶었다.
“우리 애들은 아직은 믿어서 속이느라고 제 차에 실어놨지요.”
은아는 이제 알았다. 아빠나 엄마가 산타 할아버지인 증거를 찾겠다고 온 집안을 동생과 뒤져보기도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했다. 아빠의 택시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린 아이의 한계였다. 그렇지만 지금 은아는 자신의 차에 지민의 선물을 실어놨다. 그 때의 아버지처럼.
“들켜서 다행이다 싶었어요. 언제까지 속여야 하나 했는데…”
정직은 늘 최선일까? 아이에게 산타가 없다고 알려주는 적정 나이가 있는 것일까? 남편 말대로 3학년이면, 10살이면 현실을 알아야 하는 것일까?
은아도 지민이에게 오늘 선물을 주지 못하고 거짓말로 선물을 미루거나 아니면 남편 말대로 현실을 말해준다면 저 손님처럼 다행이란 생각이 들까.
“살면서 거짓말을 하면 아주 마음이 불편했는데요. 산타만은 아이들이 속으면 속을 수록 즐거운 거 있죠. 전 최대한 안 들키고 해보려고요. 아까 집사람이 삐삐를 쳤더라고요. 선물 차에 잘 있냐고. 아이가 아직 안 잔답니다. 산타 기다린다고.”
아버지의 다소 빠른 말투에는 장난끼가 잔뜩 묻어났다.
“아이가 몇 살이에요?”
손님이 물었다. 아빠의 익살스런 설명에 아이들의 나이가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지금 열 살하고 여덟살이요. 올해 부쩍 저를 의심하더라고요. 하하.”
열 살의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은아에게 열 살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악몽이었다. 아버지도 산타도 오지 않은 날이었다.
엄마는 한 밤중에 전화를 받고 달려나갔고, 그 후로 은아의 집은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엄마는 눈물을 흘리는 날이 많았고, 은아에게 남동생을 잘 보살펴야 한다는 잔소리가 늘었다. 그리고 반지하 집으로 이사를 했고, 엄마는 미용 기술을 배워 미용 보조로 일하기 시작했다.
은아는 이제 더 이상 산타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다음 해 산타는 찾아왔다. 잠든 사이 은아가 갖고 싶던 빨간 부츠를 놓고 갔다. 어떻게 알았는지 내 사이즈에 딱 맞는.
평소에 아끼라고 돈 없다고 잔소리 대마왕 엄마가 산타로 변했을 때만 후한 선물을 준다는 것을 알 게 된 건 몇 년후였다.
차창밖으로 눈이 내리는 것이 보였다. 이 날은 다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해 신났지만, 그 이상을 넘어 폭설이 되어 서울 시내 도로가 통제되고 눈길에 미끄러지는 차들로 교통 사고도 많았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라고 더 운전하다가는 위험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콩매니저말대로 아버지에게 은아는 보이지 않고 은아는 아버지를 만질 수 없었다.
‘아빠….’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VR은 멈춰버렸다.
은아는 방금까지는 못느꼈는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자 VR이 아니라 쇳덩어리를 머리에 얹은 것만 같았다. 은아가 VR을 벗으려고 손으로 VR을 잡아 올렸지만 잘 벗겨지지 않자 콩매니저는 희고 긴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VR을 벗기며 말했다.
“저는 어른들 거짓말 중 하나만 용서해요.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은 거짓말 같아서요. 오래오래 속이는 게 좋은 거짓말 같아요. 산타요.”
아니 콩매니저는 뭘 안다고 산타이야기일까 싶었는데…
“운전하시려면 그 옷 불편하지 않을까요?”
콩매니저말에 자신의 차림을 보니 은아는 급한 마음에 산타 복장을 갈아입지 않고 카페에 들어왔던 것이었다.
은아는 화장실에 가서 옷을 갈아 입고는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절대 들키지 않을 거야. 나 지금 출발해.’
아까보다 조금 눈발이 잦아드는 것 같았다.
“안전 운전하십쇼.”
은아는 콩 매니저의 인사를 등뒤로 하고 서둘러 차에 타서 시동을 걸었다.
‘가자. 루돌프!’
오늘의 커피 ‘크리스마스 라떼’는 콩 매니저가 사장이 되어 판매한 첫 잔이었다. 콩 매니저는 카드매출 5만원을 보며 ‘산타 할머니, 감사합니다.’ 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부탁한 영수증 리뷰까지 적혀 있는 걸 보며 또 한 번 ‘감사합니다.’라고.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