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하신 천사와 커피가 나왔습니다
“작가님 오늘 행사 관련 확인 차 연락드려요. 좀 먼거리지만 조심히 오세요, 여긴 눈이 오네요.”
“서울은 푸른 하늘이에요. 그런데 충청도 쪽에 눈이 와요?”
역시 은아는 정수군을 충청도로 착각하고 있었다. 이제는 제대로 알려줘야만 하는 타이밍이었다.
‘작가님. 여긴 강원도 정수군이에요.’
이렇게 보내놓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만약에 은아가 못온다고 하면 어떡하지 싶었다.
‘앗 제가 착각했네요. 곧 출발합니다.’
심장박동이 100회 넘기 전에 온 문자였다. 유미는 함성이라도 지를 뻔했다.
‘오늘 크리스마스 이벤트는 성공이다!’
모든 것이 ‘고의’였다. 상대방의 착각을 눈치챘으면서도 확인하지 않은 것이 맞다. 유미는 은아가 처음 ‘크리스마스 북토크’를 수락했을 때 은아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 확인했어야 했다. 하지만 유미는 그러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고 은아가 착각하고 있더라도 할 수 없다고 양심이 냉동실에 들어가 버렸다고 생각했다.
다만 막판에 은아가 못온다고 할 걸 대비해 일 주일 째 <<산타 할머니>> 책을 읽으며 연습했다. 인터넷으로 산타옷도 샀다. 여차하면 유미 본인이 입고 은아의 빈 자리를 매꿀 대비책도 마련했다.
역시 오랜만에 성사된 행사라 그런지 20명이 이틀만에 마감되고 대기 20명도 금방 찼다. 당일 오는 대여섯 명의 가족들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어린이만 45명. 100명이 넘은 사람들로 센터는 넘쳐났다. 은아 작가는 아이들 이름을 한명씩 다정하게 불러주고 사진까지 찍어주었다. 덕분에 아이들만이 아니라 엄마들까지 만족했고, 유미는 은아 작가가 진정 자신에게 ‘산타’가 되어주었다고 생각했다. 행사 성공으로 유미의 고가가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주었기에.
매년 재계약을 하는 유미는 올해 근태점수가 최악이었다. 얼마전 설치한 지문인식기 때문이었다. 1초의 지각도 용납되지 않는다. 심지어 점심시간 한 시간도 1초도 늦으면 안되었다. 그런데 아이를 그것도 평범하지 않은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고 있는 유미에게 1초는 너무 가혹한 기준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유치원에 안 간다고 떼쓰는 건 보통이고, 목욕탕에서 세수하는 것, 밥 먹는 것, 가방 매는 것까지 하나하나 챙겨야 하고 그때마다 산을 하나씩 넘는 듯했다. 출근하려고 했던 화장은 땀에 번들거리고 입술을 몇 번이나 물었는지 립스틱은 지워지고 만다. 아이가 우유라도 쏟으면 옷을 갈아 입어야 했고, 출근 하나만으로도 전쟁이었다. 그런데 지문인식기라니. 심지어 1초만 지나도 울리는 경고음은 매일 같이 ‘넌 패배자야.’라고 스핑크스가 문제를 못맞춰서 내쫓는 것만 같았다. 답이 틀려도 죽지 않기 위해 맞서 싸우는 오이디푸스처럼 유미는 지문인식기 경고음을 들으면서도 사무실 안으로 꿋꿋하게 들어갔다.
계약직을 무기한 계약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성과 고과에 따라 공무원이 될 수도 있다. 언제 짤릴 줄 모르는 직장이 아니라 안정된 직장. 그때까지 버티려면 근태가 아닌 다른 점수가 필요했다.
은아 작가에게 고의적으로 진실을 누락하는 비양심적 행동을 하기로 결심한 것도 그때였다.
“크리스마스 이벤트 강사 확정되었나요? 2시 회의 때 보고해 주세요.” 메시지가 떴다. 한겨울에 이곳에 찾아올 만한 강사는 없었다. 강원도 정수군이라는 걸 아는 순간 벌써 여섯 강사가 사의를 표했다. 될 수 있으면 다른 계절이었으면 좋겠다는 여운을 남긴채 말이다.
여기가 어디인가. 물과 눈의 고장. 몇 년전 폭설로 일주일 동안 차량이동이 어려워 재택 근무를 했다. 폭설과 교통마비로 겨울에 꼭 피해야 할 정수군이 되었다. 눈길 사고가 많아 현지인들끼리 조용히 살아 가고 있는 마을. 듬성듬성 생성된 군락지가 모여 만들어진 정수군 특성상 스키장이나 대형 리조트가 들어오기는 교통도 부지도 협소하다.
그 때마침 어제 보낸 은아작가에서 강의를 수락한다는 답장을 받았다. 시계를 보니 1시 30분. 아직 연락해서 세부 사항을 논하고 보고를 할 시간은 있었다. 그런데 지난 번 강사와 세부 사항을 확인하다 ‘강원도 정수군’이라는 걸 밝히는 순간 ‘멀어서 어렵겠어요. 저는 차도 없어서요.’라는 답을 들었던 기억이 나서 망설이고 있었다. 이건 유미의 잘못이 아니다. 여섯번의 거절이 유미의 양심을 냉동실에 넣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못 온다면 나라도 산타 옷을 입어야 한다. 오늘까지 처리해야 할 안건만 내년 사업 계획안, 이용객 현황보고서, 장난감 및 도서 구입 의뢰서, 크리스마스 강의까지. 하루가 모자라다.
은아작가는 만나기 전에도 그랬지만 직접 만났을 때도 성실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3학년 아이를 이야기할 때는 유미미에게도 아이가 몇 살이냐고 물어보며 일곱 살이라고 하자 ‘산타 선물 뭐 준비했어요?’라고 물었다.
그렇지만 유미는 은아작가의 순진무구한 표정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상대가 속였다고 생각하지 못한 채 자신의 상식 부족이라고 스스로를 탓하는 그런 사람. 유미도 원래는 저런 사람이었다고. 유미가 엄마, 아빠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을 때도 엄마 아빠가 자신을 만나러 올 것이라고, 또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그 속에 내 엄마 아빠가 있다고 믿었던 그런 순진함이 있었다. 그러다 아이를 키우며 알았다. 자신이 버려진 아이라는 것을. 유미는 아들이 지적장애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도 ‘내 아들’을 키우겠다는 결심이 하나도 흔들리지 않았건만 멀쩡한 자식을 버린 그런 부모가 다시 찾아올 리가 없다고 말이다.
유미가 은아의 미소속에서 자신의 순진함을 읽고 있는 이유는 은아가 유미를 한치도 의심하지 않고 믿고 있고 심지어 아이를 키우는 같은 엄마라는 동질감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이벤트는 은아 덕분에, 아니 은아를 속인 유미 덕분에 성황리에 끝났고 종무식 날이 왔다.
종무식이라고 평소와 달리 2시간 일찍 끝난 덕에 2시간의 자유가 생겼다. 평소라면 가족센터에서 퇴근하자마자 유치원으로 달려 갔겠지만 오늘은 아침에 못 한 빨래와 집안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집으로 향했다.
방향을 달리해서일까. ‘커피와 천사’라는 카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