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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Oct 24. 2024

크리스마스 라떼(2)

주문하신 커피와 천사가 나왔습니다

나무로 된 문이 제대로 밀리지 않아서 문앞에 ‘open’이란 팻말만 없었어도 영업을 안 한다고 생각할 뻔 했다.


“어서오세요.”

굵은 저음의 목소리의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왼쪽 가슴에 ‘콩 매니저’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이 작은 동네에 사장과 매니저가 따로 있나 싶어 신기하던 차에 이런 생각을 콩 매니저는 눈치챘는지 


“하하. 전 사장이에요. 사장. 실은 제가 서울에서 콩매니저로 이름을 날리다가 정수군에 놀러왔다가 이곳을 보고…”


TMI다.

은아는 매니저든 사장이든 상관 없었다. 먹을 것이 필요했다.

콩매니저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매니저 뒤쪽에 메뉴판을 봤는데 큼직한 글씨로 ‘오늘의 커피: 크리스마스라떼’라고만 써 있을 뿐이었다.

가격도 없었다.


“오늘의 커피는 크리스마스 라떼에요. 크리스마스니까 크리스마스라떼. 가격은 후불제에요. 일단 마시고 커피 값어치를 본인이 결정하시는 거에요.”


피곤하다.

은아는 이 카페를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었다.

주인은 말이 많고 메뉴는 하나에 가격도 정해져 있지 않다. 은아는 이런 복잡함이 싫었다. 그래서 아까 정수군을 착각했을 때도 담당자에게 별다른 설명 없이 일찍 출발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선택지가 없어보였다. 한 집 건너 카페인 서울과는 달리 오직 이 곳뿐인 것 같았다. 뭐가 됐든 커피니까 아무 거나 한 잔 마시고 5천원쯤 내자 생각했다. 


“네. 주세요.”

“그럼 원하는 자리에 앉으세요. 자리로 가져다 드릴게요.”


드디어 마음에 드는 구석 하나를 발견했다. 진동벨을 주거나 셀프로 가져가는 게 아니라 자리로 가져다 준다니. 

둘러보니 앉을 곳은 한군데밖에 없었다. 테이블은 하나였고, 나머지 자리는 바 스타일로 창가를 바라보며 앉는 자리인데 의자가 높아서 앉기 불편해 보였다. 

카페를 고를 때처럼 자리도 선택지가 없어서 아직 녹지 않은 소매의 눈을 털며 의자에 앉았다.  


“주문하신 커피와 천사가 나왔습니다.”

은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커피와 천사?

커피를 담은 커피잔과 나온 것은 VR기기였다.

“저희 집 오늘의 커피는요. 천사가 같이 나와요.”

“천사요?”

“아, 이 VR 이름이 천사예요. 제가 만들었거든요. 제가 공대생인데….커피를 좋아해서…”


또 TMI

“그러니까 이 VR을 쓰라고요?”

“네네. 제가 카페에서 일하다보니 혼자 오는 손님들이 많은데 다들 핸드폰만 들여다 보는 거에요. 그래서 핸드폰 대신 우리 집에서만 볼 수 있는 VR을 만들어 보자 했어요.”


이 정도는 TMI보다 매뉴얼 설명이라 해두자.

“VR엔 뭐가 있어요?”

“그게….아직 개발중입니다. 그래서 가격을 정하지 못했고요. 오늘의 커피에 끼워 팔기로 했지요.” 

은아는 빨리 커피 한 잔을 하고 나가야 하는데 VR이라니.

“아 빨리 서울로 가셔야지요?”


어떻게 은아의 스케줄을 알고 있나 깜짝 놀라는 순간.

“며칠 전부터 포스터가 붙어 있었어요. 산타 할머니 작가가 온다고요. 아이들이 얼마나 기다렸다고요. 제가 검색을 해봤어요. 서울 사시더라고요.”

“네,”


은아는 더 이상 콩 매니저에게 길게 대답할 기운도 없었다.

“VR은 길지 않아요. 왜냐면 제가 아직 기술이 없어서 5분도 안 될 거에요. 대신에 한번 재생한 내용은 다시 나오지 않으니까 딱 손님만 한 번 볼 수 있어요.”

은아는 우선 커피부터 한 모금 마셨다. 


‘아니 이건 그냥 라떼잖아?’

크리스마스라떼라면 최소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있던가, 그냥 라떼를 이름만 바꿔서 오늘의 커피라고. 이럴 거면 설날 라떼, 발렌타인 라떼, 다 갖다붙여도 되겠네.


“오늘의 커피는요. 천사가 중요한 거에요. 천사가 VR이고요.”


콩매니저는 이번에도 은아의 마음을 읽었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VR. 은아는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이걸 쓰면 주변이 달라지고 다른 세상에 있는 느낌. 그러나 남이 볼 땐 우습다. 검은 안경을 쓰고 팔을 휘휘 내젓는 모습이나 느릿느릿 몸을 좌우로 움직이는 모습이. 

어차피 지금 혼자고, 어서 이 VR을 쓰면 콩 매니저가 귀찮게 굴지 않겠지 싶었다.

VR을 머리에 끼려니 콩 매니저의 도움이 필요했다. 

콩 매니저는 희고 긴 손가락으로 은아의 머리에 맞게 VR을 조절해 주었다. 


“저 혹시 VR을 잘 모르실까봐 말씀드리면, VR 속의 사람을 보면 진짜 사람처럼 보여도 대화를 하거나 만질 수는 없어요. 당연하지만 혹시나 해서 말씀드려요. 자, 이제 오른쪽 버튼을 누르세요.”


‘아빠….?’

분명히 아빠였다. 그것도 젊은 아빠.

이렇게 간단히 과거를 보여준다고?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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