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부담감
처음인 임신에 출산이지만, 무언가 아기에게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 아이의 부담을 덜어주는 자연주의 출산, 일회용 기저귀 대신 천 기저귀 쓰기, 그리고 내 몸이 내어줄 수 있는 가장 큰 것, 모유 수유를 시작했다.
출산 휴가는 3-4개월 남짓, 게다가 한국에 가서 출산을 하고 조금 쉬었지만, 금세 중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회사와 업무는 출산휴가에서 막 돌아온 엄마에게 많은 여유를 주지 않는다. 아침 일찍 아이를 이웃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출근을 한다. 그리고 아이가 배고플 때쯤, 다시 모유 수유를 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냅다 뛰었다. 내가 늦으면 아이는 배가 고프고, 배가 고픈 갓난아이를 달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을 안다. 어떤 때에는 아이가 자고 있어서 깰 때까지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 어떤 때는 늦어서 헐레벌떡 뛰어가, 땀범벅이 된 채 아이를 끌어안았다.
한 번은 1박 2일의 워크숍을 가는 때가 있었다.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아이와 떨어져 있었고, 긴 회의를 진행하는 동안 젖이 불면, 호텔 화장실로 뛰어가 젖을 짜내기를 반복했다. 아이와 같이 있지 않았지만, 내 몸은 아이가 젖을 먹어야 하는 시간의 간격으로 젖이 돌기를 반복했다. 시간을 딱히 기억할 필요는 없었다. 젖이 한 참 돌면, 딱딱해지면서 아파왔기 때문이다. 수유 펌프를 잊고 안 가져왔던 때는 손으로 짜내기도 했었다. 그 호텔이나 우리 회사에 수유실이 생긴 건, 내 아이가 성장하고도 아마 한 참 후의 일이다.
나는 모유수유를 오래 하지는 않았다. 두 아이의 경우 모두 자연스럽게 모유 수유를 중단해야 할 일이 생겼다. 한 번은 상하이로 이사 오는 동안 수유를 중단했다가 아예 그만두게 되었고, 둘째는 중국에 못 데려올 일이 생겨서, 떨어져 있다 보니 또 끊게 되었다. 각각 6개월 남짓의 기간이었지만, 내 몸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데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내 몸을 다시 보게 되었다. 옷맵시를 좋게 해 주고 성적인 매력을 뽐내도록 디자인된 것이 아니라, 내 가슴은 온전히 아이에게 영양을 전달해 주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을. 아이에게 젖을 먹여야 하는 때가 되거나, 아이가 보챌 때, 가슴이 저려오면서 젖을 뿜에 낸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리고 그 덕에 점점 더 아파오는 가슴을 부여잡고 화장실에서 짜내야 했던 그 기억은 지금 생각하면 처량한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