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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자까 Nov 28. 2022

멜버른 편의점엔 삼각김밥이 없다

문화 충격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촬영을 했던 Hosier Lane의 골목길 안에도 들어가 보고, 혼자 쓰레기통 옆에서 임수정으로 빙의되어 쭈그려 앉아도 보았다.

낯선 풍경에서 오는 이국적인 정취를 한참 만끽하고 있었다.  트램과 마차 지나가는 소리, 한글 하나 안 보이는 영어 간판, 영어로만 들리는 대화 소리, 길거리 꽃집의 튤립 향기까지도 모든 것이 신기한 초보 워홀러였다.



Hosier Lane, 미사 촬영지



한참을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팠다. 플린더스 역 근처 노천 식당에 앉아 혼자 멋들어지게 주문을 하고 싶었지만 내 영어 실력으로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몇 군데 노천 식당을 쭈뼛쭈뼛 구경만 하다 결국 밥 사 먹는 걸 포기했다. 뭐를 먹을까나 싶어서 두리번거리는 그때.



그때 저기 저 멀리서 보이는 익숙한 숫자.

7-ELEVEN


편의점을 보는 순간 너무 반가웠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동포 청년이라도 만난 듯 기쁘게 달려갔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그곳엔 없었다. 삼각 김밥이. '이럴 수가...' 심지어 맥주도 없었다. '세상에나..'

멜버른의 편의점엔 삼각 김밥이 없었다.






처음 멜버른에 갔을 땐 외국 생활이라곤 머리털 나고 난생처음이라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한국땅에서만 26년을 살아온 나는 당연히 멜버른 세븐일레븐에도 삼각 김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전주 비빔 까진 아니더라도 참치 마요 정도는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하지만 웬걸 편의점에 삼각김밥이 없다니.


정말 충격이었다. 시원한 맥주라도 사야겠다 싶어서 냉장고 쪽으로 갔는데 또 다른 충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주에선 편의점에서 술을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 마이 갓!  리쿼 샵 또는 보틀 샵이라는 허가된 곳에서만 술을 살 수 있는데 가게 문은 또 어찌나 일찍 닫는지 밤 10시면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24시간 편의점에서 술을 자유롭게 사고, 2차 3차, 밤새 노는 문화가 있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아니, 장사할 마음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나는 입이 댓 발은 튀어나온 체 문을 연 리쿼 샵을 찾아 멜버른 시티를 돌아다녔다.


리쿼 샵에 갈 때마다 신분증 검사를 했는데 술을 사고자 마음먹은 날엔 여권을 꼭 챙겨 다녀야 했다. 술이 남는 건 괜찮지만 부족한 건 도저히 용납이 안되었다.

새삼 한국이 참 살기 편하구나..라고 생각이 드는 시점이었다. 삼각 김밥과 맥주 하나로 한국 편의점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또 하나 신기했던 문화 충격은 호주 직장인들의 복장이었다. 내가 살고 있던 콜린스 스트릿 쪽엔 회사들이 몰려 있었는데 아침이면 치마 정장에 운동화를 신고 백팩을 메고 출근하는 커리어 우먼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점심시간이 되면 구두를 신고 나왔다. 남자들도 비슷했다. 심지어 사이클 복장으로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손엔 슈트 케이스를 든 체. 한국에서는 상상도 안 되는 풍경이었다. 남들 눈 신경 쓰지 않고 본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입고, TPO를 맞추는 그들이 나는 왠지 좀 멋있어 보였다.


스타일에 관해 또 하나 재미있는 부분이 있었다.

호주 학생들은 정말 집체만 한 배낭을 메고 다닌다. 가방이 어찌나 크던지 당장  배낭여행이라도 떠날 것 같은 가방 크기였다. 여자 학생들은 여름에 시원한 원피스를 입고, 샌들을 신었다. 남자 학생들은 반바지에 반팔 또는 셔츠 차림이었다. 역시나 샌들을 신었다. 참 자유분방해 보였고 더운 호주 날씨에 알맞은 교복이라 생각이 들었다.  근데 학교에 락커도 있을 텐데 가방 크기는 정말 미스터리이다.


결제 시스템도 참 생소했다.

대부분의 결제를 1주 또는 2주 단위로 했다. 아르바이트 비용을 주급으로 받았고, 집 렌트비는 1주, 2주 또는 1달 단위로 결제했다. 그래서 미리 계산하고 아껴두지 않으면 거지되기 딱 좋은 시스템이었다. 매주 아르바이트 비용이 들어오니 탕진을 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이 필요한 나였다.


또 하나 신기했던 건 분리수거를 대부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는 플라스틱, 종이, 음식물, 유리 등 분류별로 분리수거를 했는데 호주에서는 그냥 봉지에 전부 넣어서 버리면 그만이었다. 유리류는 따로 폐기를 해야 했지만 음식물과 쓰레기가 함께 뒤섞여 있는 모습은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면서 썩 유쾌하진 않았다.


하지만 편한 건 빌라나 아파트 대부분 층마다 쓰레기 버리는 작은 문이 하나씩 있다는 것이다. 그 작고 네모난 구멍으로 검은 봉지를 내 던지기만 하면 되니 편리함에 죄책감은 쓰레기와 함께 굴러 내려갔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라야지 어쩌겠는가.





건널목을 건널 땐 꼭 버튼을 눌러야 한다.


이밖에도 신기한 것들이 참 많았다. 지금 한국에선 종이 통장을 많이 쓰지 않는 추세이지만, 호주에서 처음 계좌를 만들 때 종이 통장을 주지 않는 것, 체크카드 대신 데빗 카드라는 표현을 쓰는 것, 건널목 신호등에 붙어있는 버튼을 눌러야 보행자 신호로 바뀌는 것, 자전거를 탈 때 헬멧을 쓰지 않으면 벌금을 바로 먹여 버리는 것, 경찰이 말을 타고 다니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전부 신기했지만 새삼 다른 문화에 와 있구나 체감되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생경했던 문화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었다.


신기했던 문화도 있지만 좋은 문화도 많았다.

눈 마주치면 인사하는 것, 미소 짓는 것, 부딪히면 서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 이 문화가 나는 제일 따뜻하고 좋았다. 그렇게 멜버른에서 7년을 지낸 나는 한국에 막 돌아왔을 때 횡단보도를 지나가다 어깨를 부딪혔는데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이 말이 튀어 나았다. "Sorry"

나를 먼저 쳤던 30대 초반의 젊은 여자는 가자미 눈으로 나를 흘겨보더니 그냥 지나갔다.

호주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온도 차이였다.


하지만 한국의 세븐 일레븐엔 내가 좋아하는 전주비빔 삼각 김밥이 있으니 이걸로 위로 삼아 본다.

어디 세븐 일레븐만 있나? CU도 있고, GS도 있고 심지어 맥주도 24시간 살 수 있으니 말이다.



Flinders Station, Melbou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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