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넓다. 하지만 내 생활은 회사와 집 사이 6정거장, 그 사이의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시사 뉴스와 트렌드를 애써 챙겨보지 않으면 좁고 짧은 일상에 금세 휩쓸려 버리곤 한다. 일하고, 집안일하고, 주말에 맛있는 음식을 먹다 보면 한 달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시간의 빠름이 새삼 무섭게 느껴진다.
분명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있는데도, 좁디좁은 세상에 갇힌 기분이 들 때면 불안해진다.더 넓고 다른 세상에서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의 현실이 왠지 초라하게느껴지곤 한다.
중년의 어른들이 가끔 내게 묻는다.
“뭐 재밌는 일 없니?”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서재밋거리를 찾는 눈빛으로 말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내 들고 떠들고 싶지만특별히 말할 만한 게 없다. 그렇게 대화는 싱겁게 끝나고, 마음 한구석에서는 생각한다. ‘내가 노잼인걸까?이렇게 나이가 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나..’
나에게도 일상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방황했던 시절이 있었다. 동료나 친구들에게 “퇴근하면 뭐 해?”, “주말엔 뭐 해?”, “취미로 뭐 해?”라고 물으며 남의 일상이 궁금했던 적이 있다. 다들 퇴근 후 쉬거나 공부하거나 취미를 즐긴다고 했지만,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선택하지 못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에 억지로 이벤트를 만들고 약속을 잡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조급한 노력은 일상을 더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고 다짐했지만, 어느새 나의 시선은 내 일상이 아닌 다른 곳을 향했다. 지금 일상이 싫은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자꾸만 일상에 머물지 못하는 걸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소소한 일상을 보내든,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살아가든, 시간이 지나면 결국 익숙해진다. 그 익숙함 속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를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렇게 또다시 시선은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곳을 향한다.이는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인 것일까?반대로 변화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시대의 흐름이나 나의 목표에 뒤처지게 되는 걸까?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이 질문은 단순한 진리로 이어졌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세상은, 그리고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변화’한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말이다.
자극적으로 체감되지 않을 뿐, 시간은 어김없이 흐른다. 가지 않을 것만 같던 겨울도 결국 가고, 봄이 오고야 만다. 늘 똑같아 보이는 일상도 자연스럽게 변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 발뿐만 아니라 내 눈, 팔, 온몸이 오늘이라는 현실에 밀착해야겠다고 느꼈다. 변화는 오히려 변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온다는 말이 맞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는 일상이 쌓여 결국 변화를 가져온다. 이 당연한 이치를 알게 되자 내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성장해야 한다는 나의 의지를 굳건히 하고, 성장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 또한 줄어들었다. 좋든 싫든 결국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이 내 일상에 시선을 둘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일상은 고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내가 그 변화를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배움들이 일상 속에 숨어 있고, 내가 인지하지 못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도 존재한다. 책이나 강의를 통해 얻는 지식적인 배움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인간관계 속에서, 혹은 바보 같은 나의 실수들 속에서 무심코 지나쳐 버린 수많은 배움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 배움들은 ‘의식’하고 ‘발견’하지 않으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비슷한 하루의 반복처럼 느껴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일상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단지 불안하거나 지루하다는 이유로 일상을 떠나려는 시도는, 결국 일상 속에서의 일탈일 뿐이다. 그것은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자극적이고 짜릿한 것들은 일상으로 자리 잡기 어렵고, 설령 잠시 그런 것들에 빠져들더라도, 도파민을 자극하는 새로운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복적이고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결국 변화를 만든다. 그리고 이 일상은 내가 원하면 언제든 바꿀 수 있다. 어떤 일상을 보낼지는 스스로 선택에 달려 있다. 선택한 뒤에는 그 방향에 맞게 바꾸거나 수정해 나갈 수 있다. 변화는 특별한 계기나 이벤트가 찾아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선택하고 만들어낸 순간들이 특별한 계기가 되고, 그로 인해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오늘이라는 일상에 발을 붙이고, 관심을 기울이며,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현실에 만족하면서도 안주하지 않는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