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겁이 많은 아이였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 아무리 작은 일이어도 경험이 없거나, 새로운 환경에 가면 공격을 받는다고 느끼곤 했다. 그래서 몸에 항상 힘이 들어가 있고 어깨와 목은 항상 딱딱하고 피곤했다. 예민은 예민을 불러오고, 쌓인 예민은 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나 자신을 지켜야 한다.' 이건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다. 자존감, 자신감을 넘어 생존과도 연결되니 어쩌면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보다 더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나는 무엇으로부터 나를 지켜야 하는 걸까? 세상? 타인? 가족? 사실, 모든 것에서 나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나를 위협하는 존재는 결국 나 자신이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자신을 자신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학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세상이, 타인이, 가족이 어떻게 나를 대하는 건 내가 통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과 태도는 바꿀 수 있다.
20대 내내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불안하고 불안정한 나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고, 타인의 관심과 사랑으로 그 빈틈을 채우려 했다. 나의 불안함은 나도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감정과 행동 그리고 이중성들이었다. 나를 예뻐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들기엔 스스로가 너무 부족하게 느껴졌다. 사랑받아야 할 존재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온전히 나를 좋아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고 느꼈다.
스스로 생각하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밝고, 건강하고, 일 잘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가족들에게 잘하고, 자기 계발도 잘하고, 웃음이 많고, 늘 꾸준히 노력하는 그런 존재 말이다. 실상보다는 보여지는 모습만큼은 그러고 싶었다. 드라마 캐릭터도 아니고 원하는 존재상과 실제 모습과의 괴리가 크다 보니 우울함도 술병의 수도 나날이 늘어만 갔다. 나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 그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철갑옷을 두르고 자신을 지키려는 망토리
나에게는 자존심만 있었지 자기 중심은 없었다. 무시당하기 싫고, 부족해 보이기 싫고, 약간은 남들이 나를 부러워해줬으면 했다. 말 그대로 찌질한 자존심만 내게 있었다. 이 사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데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무엇이든 진심으로 ‘인정’을 하는 데는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더 빨리 직면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인정을 하기 위해 내게는 10년이라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만한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더 빠르게 인정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찌질한 자존심을 인정하는 과정 속에 성장한 것이다. 이 인정을 했다고 해서 갑자기 내가 예뻐 보이고 좋아하는 마음이 들 수는 없다. 다만 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나에게 애정 어린 눈길을 주는 것이다. 나의 양면성, 말도 안 된다고 생각되는 실수 등을 나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신체든 마음이든 코어 근육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어떤 모습이든 나의 한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사실 굉장한 에너지가 쓰이는 일이고, 에너지가 없다면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중심의 정의는 무엇이고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나 스스로 나의 중심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나의 중심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믿음이다. 의도치 않은 풍파가 와도, 실패해도, 잘못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마음의 태도이다. 나는 이것을 내 인생을 대하는 태도로 정의했다. 이 정의는 나를 나로부터 지켜주는 중심축이 되었다. 이런 태도로 살기 시작하니, 나를 지켜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되뇌지 않아도, 긴장하지 않아도 스스로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으로부터 보호받는 이 느낌을 오래도록 가져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정의한 나의 중심을 남이 아닌 내게 어떤 방식으로든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1시간 더 일찍 일어나자는 스스로와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자책하지 않고 다시 하면 된다고 바로 생각하는 것이다. 왜 일어나기 힘들었는지 좀 더 쉽게 하는 방법은 없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그게 내가 나한테 보여주는 자기 중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중심은 정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주 얇은 종이 낱장 같은 작은 행동이 쌓여야 비로소 진짜 중심이 만들어진다. 그 중심에서 내가 안심하고 무언가를 심고, 자라게 하는 나만의 ‘밭’이 만들어진다. 그 안에서 도전하고 실패하면서 밝고 건강하고 웃음 짓는 내 인생이 만들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