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가장 나를 막을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자 하는 것에 비해 자신의 몸에 대해 알려고 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옷발이 잘 받는 아름답고 멋진 몸매를 만드는 것 외에 나의 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이가 들거나 감기처럼 아플 때만 몸을 챙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 몸 그 자체에 대한 관심과 이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자기소개를 MBTI로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만큼 나의 성격, 가치관, 특징 등 자신에 대해 넓고 깊게 이해하는 것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 성향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상대적으로 나의 몸의 특성을 알려고 하는 경우는 적다. 나의 몸은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어떤 것에 강하고 약한지보다는 나는 E 성향이 몇 퍼센트인지, F인지 T인지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나는 성격 그리고 더 나아가 나의 가치관까지도 결국 나의 신체의 성향과 특징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간절히 원하는 목표도, 눈물 나는 노력에 대한 의지도 결국 ‘체력’에 의해 좌절되는 경우가 많다. 체력이 약하다는 것이 단순히 근육과 지구력이 부족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나의 몸 사용법을 몰라서인 경우도 크다. 나는 나의 몸 사용법을 몰랐기에 잘못된 목표를 세웠고, 약한 의지와 부족한 노력을 탓했다.
이는 나약한 정신력을 탓하는 것을 넘어 주어진 기회를 잡지 못하게도 했으며, 잡더라도 금세 지쳐서 또다시 나를 탓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했다. 이런 악순환은 컨디션을 더 악화시켰고, 악순환의 뫼비우스의 띠를 뱅뱅 돌 수밖에 없게 했고, 늘 우울하고 자존감과 자존감이 바닥을 기게 만들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생각해 보면 건강을 챙기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요가,헬스,폴댄스,크로스핏 등 종목을 바꾸더라도 운동을 놓지 않았고, 삼시 세끼에 야채를 끼워먹으려 애썼고, 영양제는 당연히 챙겨 먹었다. 좋은 잠이 만병통치약이란 말에 수면 시간과 환경까지 철저히 관리하려고 했다. 오히려 나는 지나치면 지나치다고 말할 정도로 건강을 챙겼기에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몸에도 고유의 인격이 있다면 어떨까?”
사람들이 자신의 성향을 알고 싶어 하는 이유는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고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몸에도 인격이 있다고 가정하면 어떨까? 몸의 필요를 알아내면 나를 더 잘 관리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친구나 동료를 알아갈 때 물어보는 것처럼 내 몸에게 물어보았다. 언제가 가장 편안한지, 요새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신체 어느 부위가 가장 신경 쓰이는지, 어떤 부분이 가장 자신 있는지, 어떤 계절을 좋아하는지 등이다.
머리가 아닌 몸의 관점에서 답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답이 나오기도 했다. 어떤 부분이 가장 신경이 쓰이냐는 질문에 내 머리는 승모근과 표정이었는데, 나의 몸의 대답은 눈의 건조함과 더부룩한 장이었다.
어떤 계절을 좋아하냐는 질문도 답이 달랐다. 손발이 찬 나는 겨울이 나의 최대 적이라 생각했지만, 몸은 여름이라고 말했다. 에어컨 때문에 몸의 온도 조절이 겨울보다 여름이 힘든 것이었다.
머리가 말하는 것도, 몸이 말하는 것도 모두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몸의 관점에서 답을 찾다 보니 나의 컨디션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컨디션이 좋든 나쁘든 변화가 생기면, 그날 내가 몸에게 무엇을 했는지 몸의 관점에서 돌아보게 되었다.
산뜻한 기분이 들 때면 전날의 식사와 수면 시간을 돌아보며 몸의 반응을 관찰했다. 반대로 이유 없이 우울한 기분이 들면, 몸의 어느 부분이 불편한지부터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불편한 부분이 우울한 기분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지라도 가장 먼저 편안하게 해주려고 했다. 이런 관점과 행동의 변화는 모두 나의 몸에 대해 이해하려고 질문 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나의 예민하고 날카로운 성격들은 약간의 불편함을 느낄 정도의 위와 장의 불편함이었다. 나의 성향에는 늘 예민하고 섬세함이 나오는데, 그 성격의 이면에는 나의 몸이 기반이 된 것이다. 몸에 관점에서 필요한 것들을 찾고, 행동에 옮기면서 위와 장이 편해지자, 주변에서 여유가 생겼다는 소리도 듣게 됐다.
나의 성격과 성향이 꽤나 몸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인식한 순간이었다. 이걸 알게 되니, 무조건 나의 의지와 노력을 탓하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내 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필요한 것을 채워주지 못해서 의지와 노력이 계속될 수 있는 연료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원하는 나’가 되라고 무조건 요구하고 바라기 전에 내게 충분한 에너지가 있는지 물을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더 오래,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일을 해내는 나의 몸에게 괜찮냐고, 도와줄 것이 있는지 묻는다. 결국 자기 이해의 끝에는 나의 몸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당신의 몸은 당신의 욕망을 지켜주는가
아니면 욕망을 포기하게 만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