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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이는 그것이 당신이다.

보이는 게 정말 다가 아닐까?

by 망토리 Jan 26. 2025

'보이는 것이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떠한가
수긍이 가는가 아니면 그건 아니지 싶은가


나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나를 더 대변해줄 수 있다고 믿었다. 나의 소비는 옷이나 화장품보다는 수건, 베개, 디퓨저, 영양제 등 나만 아는 개인 생활 영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남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보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 중요했다.


좋게 말하면 자기 중심이 잡혀 있다고 볼 수 있고, 안 좋게 말하면 자기 중심적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외모에 많은 신경을 썼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상–하의 색 조합은커녕 그저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입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 변화에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사회생활에 치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정신없는 회사 생활 속에서 누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스타일인지 생각할 겨를도 관심도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도 남한테 관심이 없으니, 남도 내게 관심이 없다고 단정지었다. 그리고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귀찮았다. 나도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남의 생각까지 헤아리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이런 생각은 ‘보여지는 것을 신경 쓰는 일은 남의 시선에 맞춰 사는 것’이라는 결론으로 흘러갔다. 거기서 더 나아가 편한 게 최고라며,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처럼 행동했다. 그 결과 집은 늘 엉망이었다. 옷 하나 찾으려면 옷더미를 헤집는 건 기본이었고, 집안은 점점 관리되지 않은 상태로 변했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며 사는 게 버거워 신경 쓰는 것을 줄이자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 정도가 지나쳐버렸다. 결국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정말 스트레스를 덜 주기 위해 이렇게까지 한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저 남의 시선을 신경 쓰기 싫었던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것으로 판단받고 싶지 않았던 나 자신을 발견했다. 사실 나도 타인의 외모와 외적인 것들에 영향을 받으면서, 나는 그러한 영향을 받기 싫다는 모순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타인의 옷차림, 말투, 작은 행동을 의식하지 않아도 순식간에 관찰하고, 어떤 사람일지 판단하며 혼자 거리를 두거나 가까워지곤 했다. 그 선판단은 맞고 틀림을 떠나 내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는 나를 지켜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제한하는 울타리가 되었다.


일만 하면 됐지 나머지 아웃오브 안중!이라던 망토리


이런 생각이 반작용을 일으켜 오히려 내가 보여지는 모습을 신경 쓰지 않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두려움은 나를 ‘관리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시켰고, 거울 속 내 모습을 보기 싫게 만들었다. 보여지지 않는 부분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결국 내 외적인 모습도 소홀히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막상 거울 속 나는 참 못나 보였다. 표정은 어둡고, 자세는 구부정하며, 피부는 칙칙했다.


거울 속 보이는 내 모습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기에 아닌 것인가? 이 질문에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방의 상태는 내 얼굴의 표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옷장에는 편한 옷들만 가득했고, 같은 물건을 여러 개 중복으로 구매한 흔적도 있었다. 물건의 품질보다 그것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행동이 눈에 보였고, 그 행동들이 나를 향한 태도로 느껴졌다.


이제야 비로소 내가 보여지는 모습으로 판단받기 싫어한 두려움과 나를, 그리고 내 물건과 환경을 대하는 태도를 혼동했음을 깨달았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의 몸은 저절로 샤워실로 향했다. 긴 샤워를 마치고 얼굴에 팩을 붙인 채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쌓인 묵은 짐과 정리되지 않은 습관을 바로잡는 데 1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를 대하는 태도를 내 눈으로 ‘보이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 시작은 정말 작았다. 집에 돌아오면 옷을 옷걸이에 거는 일, 손을 씻는 일 등이었다. 거울을 자주 보며 내 표정을 살피고 지금 내게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짧게라도 생각했다.


나의 변화는 다른 사람들도 알아챌 정도로 성장했다. 나의 마음과 태도가 외적으로도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남이 나를 선판단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보다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당당한지, 나 자신에게 제한을 두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 시작은 옷을 옷걸이에 거는 아주 작은 변화에서부터였다.


돌이켜보면 극도로 싫어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것에는 자신의 두려움과 상처가 숨어 있다. 나는 그 두려움과 상처를 꼭 극복하거나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상처를 주는 주체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필요는 있다고 믿는다. 모두가 각자의 인생 타임라인에서 그 상처를 마주하고 보살펴줄 순간이 있다. 나에게는 그 순간이 칙칙한 눈빛을 거울 속에서 마주한 순간이었다.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지금 바로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봐 보자. 내 눈빛은 어떤지, 표정은 어떤지 말이다. 그 얼굴의 모습이 순간적으로는 당신의 전부일 수 있지만, 동시에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부정하지 말자. 어떤 모습이든 그 보이는 모습이 지금의 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통제할 수 없더라도 나의 물건, 관계, 환경은 모두 나의 일부분이다. 그 어떤 것도 나를 100% 대변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조각들로 이루어진 사람인지 계속 발견해가는 중이니까.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것들이 나의 조각이며, 그 조각들을 대하는 태도가 결국 나를 만들어간다고 믿는다.


지금 보이는 것이 당신이다.

이 말이 당신에게는 어떤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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