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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Aug 02. 2024

저녁 식사의 주제





* [타로카드 읽는 가게'는 소설입니다. 모티브나 컨셉외의 모든 인물과 나오는 사연은 모두 허구입니다.

* 새로운 책, '에코 플라워 레시피(플로라)'가 1월 중 출간됩니다.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문자를 보내고 얼마 있지 않아 전화로 회신이 왔다. 내가 먼저 문자를 보내긴 했지만 이렇게 금방 답이올지도, 그게 전화일거라고도 예상하지 못했던 나는 너무 깜짝 놀라서 전화기를 떨어뜨릴뻔했다.


"......네, 여보세요."


"놀랐어요."


그의 전화를 받은 나만큼이나 놀란 듯 진주의 목소리에서 솔직한 놀람이 묻어나왔다. 


"작가님이 먼저 연락을 주실줄은 몰랐거든요. 그것도......"


진주는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했던지 말끝을 길게 끌었다.


"잘 안풀리는 부분이 있어서요. 주말 기획 회의 때 뭐라도 들고가려면 좀 더 얘기를 해야할 것 같았어요. 회의실에서 만나면 너무 경직되는 것 같아서 식사라도 하면 어떨까 했고요."


내가 그의 말을 마무리지어 주었다. 하지만 나도, 나 역시 무언가 낯설고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에게 먼저 '밥먹자'는 말을 건내본 게 언제였던가. 아니, 있긴 있었나?

누군가가 나를 잡고 '넌 왜 이렇게 바쁘냐'고 섭섭해하며 '밥이라도 한끼 하자'고 팔을 붙잡고 늘어질 때야 촘촘히 차 있는 아르바이트 스케줄 사이에 한 두시간을 빼내어 함께 하는 것 말곤 먼저 식사약속을 잡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조차도 '내가 살게'라는 말이 있을 때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밥을 사겠다며 손을 이끌만한 여유가 있었던 적이 없었으니까. 

내 손가락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윤주와 진주 사이를 오락가락 하긴했다. 진주가 놀란 것처럼 나답지 않게, 쿨하게 '저녁 콜?'하고 문자를 보낸 게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그가 놀란 것이 조금 무안할 정도로 고민하다 한 글자 한글자 천천히 눌러 쓴 것이었다.

그리고 진주의 전화를 받는 그 순간조차도 망설이고 있었다. 글자는 이미 화면에 띄워졌고, 나는 보내기를 눌렀고, 데이터가 먼 길을 떠나 진주의 휴대전화 화면에 다시 글자가 되어 나타나는 시간이 지난 후까지도 나는 '윤주였어야 했나', '보내지 말았어야 했나'를 계속 고민했다.


"좋아요. 좋죠. 자주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죠. 우린 서로를 잘 모르니까."


우린 모르니까.

서로를.


진주의 말이 조금 묘했다. 그의 의도는 묘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가 묘했다. 나도 모르게 내가 그를 이용하려는 것일까? 그런 마음이 한 순간 들었던 걸까? 아니, 그가 내 생각처럼 이용당할만한 인물인가?

그의 말처럼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르는 사이였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이었고, 그 설렘은 금방 티가 났다. 오후 쯤 주인언니가 나를 보더니 '뭔데? 데이트?'라고 음흉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아-아니요."


나답지 않게 오버스럽게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그게 더 어색하고 티나는 것 같긴 했다. 


"맞는 것 같은데. 왠지 기분도 좋아보이고, 시간도 계속 체크하는 것 같고?"


그녀가 큭큭 소리를 내며 장난꾸러기같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이따 남자 만나는 거 맞지?"


돌려말하는 법 없는 그녀가 내 팔짱을 끼며 물을 땐 나도 모르게 씩 웃기까지 했다. 


"데이트는 아니고요."


"그래, 뭐 꼭 각잡고 만나야 데이트니, 이런 저런 핑계 대면서 만나면 그게 데이트고, 그러다 정들면 애인이지."


진주는 우리가 이렇게 자기를 안주삼아 킬킬대는 걸 알까싶었다. 그저 문자 하나 먼저 보내놓고 데이트니 뭐니 떠드는 게 우스웠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버텨야하는 게 일상이고, 뉴스없는 삶이었다. 나는 별다른 걱정거리가 없어진 이 새로운 삶에, 지루함이 섞인 일상에 묘한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그녀와 함께 킥킥 웃었다. 왠지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러면 나도, 내 삶도 이제는 그럴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저 뒷편, 이제는 내가 돌아보지 않는 어느 구석에 내 동생들이 미라처럼 누워있고 어느 순간부터는 또렷한 눈빛을 보여주지 않은 엄마가 좀비처럼 나를 따라올 것만 같았지만 나는 얼굴도 한번 붉혀보았다. 윤주를 만날 때도 해보지 않은 짓이었다. 윤주가 처음 고백할 때도 좋은 티를 내지 않았던 나였다. 그가 아무리 사랑스러운 짓을 해도, 가슴 터질 것 같은 첫입맞춤을 할 때도 나는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내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 심사위원이 말했던 것처럼 나는 자신이라는 필터를 사용하는 법을 몰랐다. 그런 게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그런데 왜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나도 놀랄 '나답지 않은 짓'을 한 건지는 몰라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당황스럽고, 낯설고, 그가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하면서도 그냥 나답지 않은 짓을 했다는 게 묘하게 설렜다.

대체로 무표정한 내 얼굴에 직접적인 미소는 아니어도 무게가 거의 없는 감정이 레이스처럼 가뿐히 얹혀져있는 것 같고, 왠지 간질 간질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밥을 먹자고 했다. 한끼를 하자고 했다. 그 말은 '내가 살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가 새벽에 남겨 놓은 비상금이 있다. 물론 그것은 진주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긴 하지만 나는 그것을 동생들의 도시락 반찬을 위해 쓸 필요도 없고, 그들의 차비나 참고서를 사는데 보탤 필요도 없었다. 어젯밤 그대로 내 지갑에 들어 있다.

어쩌면 진주는 자신이 내어준 차비로 오늘 저녁 내가 식사대접을 하는 것에 대해 불쾌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결국 집앞까지 택시를 타고 편안히 가지도 못하는 나를 추잡하다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그 돈이 아니라 오늘 내가 타로 상담을 하며 번 약간의 돈으로 그에게 밥을 살것이다. 그럼 큰 문제는 없겠지. 어쨌거나 나는 나 자신에게만 쓸 수 있는 약간의 돈을 벌었으니까.

아니, 아니, 그것도 아니라면. 통장에 넣어두고  이달 월세를 낼 때 쓴 것 말곤 그냥 묵혀둔 진주작가와의 계약금을 드디어 쓴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럼 된 거잖아.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정돈하고 보니 차를 들고 내 앞에 선 손님이 있었다. 지금까지 중 가장 환한 미소를 띄며 싹싹하게 손님을 맞이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카드를 뽑고, 카드의 내용을 풀이해 주고, 다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내 나름의 조언을 곁들여주었다. 왠일로 쉴새없이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생각지도 않았다가 누군가 하는 것을 보고 갑작스럽게 흥미를 느끼며 '나도 그거 할 수 있냐'며 뛰어든 손님도 있었다.

진주와 통화를 한 이후로 그렇게 하루 종일 정신 없이 보냈다. 여기에서 타로카드 상담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았다. 이 모든 사례들이 소중한 이야기거리가, 진주와의 계약에서 내가 내 보일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한명 한명 상담이 끝날 때마다 노트에 사례들을 간단하게 적어두었는데, 이 날은 그런 짬조차 나지 않았다. 상담이 끝나면 손님들이 내미는 상담료를 노트 사이에 끼워두었다가 영업이 끝난 후 지갑에 옮겨 담는데 이 날만은 중간 중간 정산을 해야했다. 지폐의 두께에 얇은 노트가 금새 불룩해져서 책상 위에 올려둘 수가 없었다. 주인 언니조차 '운수좋은 날 같다'며 놀렸다.

가까스로 마지막 손님의 상담을 마무리하고, 더 하다간 진주와의 약속시간에 늦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적극적인 손님의 '예약'까지 마무리지은 후에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가려던 순간까지 오늘 타로 더 안 보냐며 들어온 손님은 주인언니가 다음 날이나, 편한 날로 예약을 잡아주겠다며 날 먼저 내보내주어 가까스로 나올 수 있었다. 


"와, 이제 여기 예약까지 해야 돼요? 전에는 그냥 와도 됐었는데. 언니가 유명해졌나 보다."


문을 나서는 내 뒤로 나만 알고 아끼던 어떤 것이 만천하에 들어났을 때의 아쉬움과 자랑스러움이 묻어나는 손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뿌듯했다가, 글을 쓸때는 왜 이런 사람이 하나 없었나 싶어 자조적인 웃음이 풋 터져나왔다. 윤주 말대로 조금 더 했으면 나아졌을까? 아니면 이제서야 정신차리고 재능도 없는 일에 매달리지 않아 운이 풀리는 건가?

어떤 쪽으로든 해석이 가능했지만 일단은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들뜬 기분이 조금 더 길게 이어졌으면 했다. 내가 태어나 지금까지 이런 기분이 들었던 것이 얼마나 많았나 떠올려보면 이건 꽤 귀중한 기분이었다. 말 그대로 '왠지 모르게 좋은 기분'말이다. 그 기분을 망치고싶지 않아 그냥 두루뭉술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이유가 이상하거나, 이유가 없거나, 아니면 내가 뭘 잘못 생각해서 생긴 기분이라면 그 즉시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왠지 이유가 그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나를 더 생각하지 못하게 한 것도 있다.


"작가님!"


문을 나서 정류장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튀어 나가던 내 등뒤에서 진주가 나를 불렀다. 그는 굳이 이 추운 날 차 밖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그냥 낡은 내 청바지와는 다르게 굳이 새것을 일부러 낡게 만들었을 것 같은, 낡았으되 후줄근하지 않은 회색 진에, 역시나 겉만 낡고 신발 뒤축은 새것처럼 반듯한, TV에서 보기론 일부러 때를 묻혀 비싸게 판다는 것 같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정말 낡은 나와 비슷한 듯 다른 모습이었다. 한 겨울에 그럴듯한 외투도 없이 얇은 니트 가디건을 입은 진주는 추위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정말 추위를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는 추위 속에서 길게 헤매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거추장스럽게 두꺼운 외투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모로 나와 비슷하게 차려입었으나 그 태가 여러모로 나와는 너무나 다른 그를 보자 알 수 없는 웃음이 나왔다.


"왜 여기까지 오셨어요? 우리는......"


"우리는 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죠. 근데 중간에 시간이 남았어요.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은데 굳이 역 앞에서 뱅뱅 도느니 작가님을 더 빨리 만나면 좋죠."


진주가 내 말을 가로채며 빙 돌아 재빠르게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졸지에 꽤나 극진한 에스코트를 받는 귀빈이 된 것처럼 비싸지만  흙먼지를 뒤집어쓴 그의 차에 올라탔다. 


"차가 좀 더럽죠? 여행을 다녀오고나서 세차를 못했어요. 아니, 안 한 것 같아요. 귀찮아서."


조수석 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돌아온 진주가 말했다. 그답지 않게 부끄러워하며 변명하는 것 같았다. 나는 슬핏 미소를 지어보이며 괜찮다고 답했다. 괜찮다고는 했지만 뒷좌석은 무언지도 모를 짐으로 앉을 곳도 없어보였고, 조수석 바닥도 말라붙은 진흙같은 것으로 지저분했다. 나는 오히려 조심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마음이 편했다. 진주의 것보다 비싸진 않지만 나는 평생 살 수 없을지도 모를 고급 세단을 타는 윤주의 차는 항상 반짝반짝거렸다. 주유소에 들르면 기름을 넣고 나오는 길에 반드시 자동세차를 하고, 휴일 아침이면 손수 내부세차를 하는 윤주의 차는 가끔씩 나를 주눅들게 했다. 비나 눈이 오는 날 나를 데리러 올 때는 더욱 그랬다. 푹 젖어버린 나의 낡은 운동화는 윤주의 차에 들여선 안되는 물건처럼 보였다. 타기 전에 아무리 탁탁 털고 타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괜찮아. 그냥 막 타. 어차피 주말에 청소할 거니까."


윤주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한번도 그의 자리 발판에서 모래 같은 게 굴러다니는 걸 보지 못했다. 


"항상 이런 건 아니에요. 누군가 탄다고 하면 치우는데, 오늘은 좀 갑작스러웠잖아요? 그래서 그렇다고 이해해줘요. 너무 더러워서 내리고 싶은 건 아니죠?"


네이게이션을 조작하며 진주가 말했다.


"전혀요. 오히려 편하네요."


나는 정말 나답지 않게 아주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진주 역시 편안한 표정으로 웃어보이고는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에서는 낯선 가요가 흘러나왔다. 이제는 아는 노래도 별로 없다. 

언제는 있었나?

휴대용 워크맨이며 CD플레이어, 더 커서는 MP3까지, 친구들은 그 나잇대에 맞는 음향기기를 바꿔가지고 다니며 자신만의 '우리 오빠'만들고 열심히 추종할 때에도 나에겐 오빠도, 음악도 없었다. 그런 걸 알려면 TV나 라디오를 끼고 살아야 하고, 그게 아니면 작은 뮤직플레이어라도 있었어야 하지만 나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 TV는 있었지만 그걸 볼 시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아니면 죽기 살기로 공부를 했다. 대학에 가는 것 말고는, 그것도 반드시 전액 장학금을 받아 가는 것 말고는 아무 희망도 없었던 시기였다. 시급이 가장 높은 아르바이트는 과외라는 걸 알게 된 후로 나는 대학생이 되어 과외알바를 시작하는 것만이 내가 현재 시점에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꿈이라고 생각했다. 하루에 서너 시간을 잤는데 그것도 학교 쉬는 시간을 모두 포함해서였다. 

코피도 터지는 팔자가 따로 있는지 왠종일 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집안 일을 하거나, 작은 방 하나에 다닥다닥 붙은 모두가 깊이 잠든 밤 후레시를 켜고 교과서를 달달 외우거나 하는 피로한 삶이었음에도 나는 코피 한방울 흘린적이 없었다. 어리고 젊은 체력이라는 것 특징만 아니라면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날들이었지만 그 누구도 내가 얼마나 피곤한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다들 어렸고, 엄마는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아니면 아비도 없는 애를 베고 있었거나.

나는 차라리 코피라도 매일 터지길, 차라리 하늘이 노랗게 보이면서 핑그르르 쓰러져버리길 바랐다. 그것을 핑계로 쓰러져 있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혹사해도 나 홀로 피로할 뿐 그 누구도 나의 피로를 알아볼만한 사인은 드러나지 않았다. 


"저는 작가님이 더 나이가 많은 줄 알았어요."


라디오의 낯선 멜로디 사이로 진주가 슬며시 자기 목소리를 얹었다.


"생각보다 저랑 차이가 안 나시더라고요?"


무슨 소린가 했더니 내가 나이들어보인단 얘기였다. 저런 무례한 이야기를, 그것도 그리 친하지도 않은 여자와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아무렇잖게 툭 던지는 것을 보니 그는 정말이지 평생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인생을 살았나보다 싶었다.


"여섯살 밖에 차이가 안나요. 그쵸?"


무엇이 그렇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나이들어 보인다는 걸 인정하라는 것인지, 나이차가 별로 나지 않으니 맞먹겠다는 뜻인지, 알 수가 없어 나는 아무말 하지 않았다.


"저보다 열살이나 많은 사람도 저는 곧잘 누나라고 불러요. 열살이 뭐에요. 스무살 차이도 그렇게 부르죠. 가끔은 엄마 친구들도 누나라고 불러요. 물론 그땐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거지만요. 나이가 들어도 여자들은 항상 어려보이고 싶고, 뭐 그러니까요."


그래. 그걸 잘 알면서 이러는 건 내가 안중에도 없다는 뜻인가, 자기 엄마 친구들보다도 중요하지 않다는 뜻인가?


"그런데 작가님한테는 누나 소리가 잘 안나오더란 말이죠."


"......"


"제가 보기보단 능글맞은 편인데도 말이에요."


"......"


"어젯밤에 헤어지고 나서 잠을 좀 설쳤어요."


"왜요?"


"그 얘기가 계속 생각 났어요."


".....뭐가요?"


"세련씨가 화를 냈던 거요. 나는 내가 어리다거나, 어린애같다거나, 세상물정을 모른다거나, 고정관념이 있는 타입이라고 생각해 본적 없어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로군.

나는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났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나이가 든다는 것도, 실패한다는 것도, 태어나보니 부모가 만신창이라는 것도, 가난이 무엇인지도, 재능없는 꿈을 가진 사생아가 이 정도 정상인으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죽을 힘을 다해 뛰어다니는지도, 결국 살기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쳐야한다는 것도, 모두 버리고 도망치고 나서야 무언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누군가는 그럴 수 있죠. 너는 가난이 뭔지 몰라. 네가 아는 가난은 TV 다큐멘터리 속 아프리카 난민에게나 있고, 네가 아는 비극은 막장 TV 드라마 정도일테고, 네가 겪은 최고의 슬픔은 소설 주인공의 비극 정도일거라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어느 정도 균형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꼭 겪어야만 아는 건 아니다. 꼭 그 삶을 살아봐야만 균형감 있는 인간이 되는 건 아니다. 나는 철부지 도련님이 아니다, 라고 얘기하고 싶었죠. 그리고 그렇다고 믿었어요. 어제까지는."


"......"


"나는 세련씨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어요. 그냥 조금 가난한 소설가 지망생이었다가 현재는 조금 독특한 부업을 하고 있는 약간의 재능이 있는 여자라는 것 밖엔. 아니, 그 정도면 다 파악했다고 생각했죠."


나는 침을 삼켰다. 하지만 입술까지 말라서 목구멍까지 꺼슬꺼슬했다. 


"수수하다못해 추워보이는 외양도, 나이치고는 살집이 전혀 없는 앙상한 몸도, 화장이랄 것도 없는 민낯도 그냥 외모를 꾸미는데 취미가 없어서일거라고 쉽게 생각했어요. 작가니까. 작가같은 룩이랄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진주의 네비게이션은 우리를 어디론가 안내하고 있었고, 진주는 부드럽게 이쪽 저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미리 켜둔 것인지 엉덩이로 느껴지는 좌석 히터의 온도는 적당해서 노곤했다. 무슨 얘길 하려고 이렇게 나를 깔아뭉개는 것일까.


"그냥. 밤새 생각해 보니 그건 그냥 가진 것이 없어서였을 수도 있겠더라구요. 꾸밀 돈도, 시간도, 여력도. 사실 그렇게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자존심이 세 보여서일 수도 있어요. 가난해 보이는 외모가 의도한 것일거라고 나 혼자 마음대로 생각한 거죠. 작가처럼 보이고 싶어서."


정말 마음대로군. 나는 앞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그를 힐끗 쳐다봤다. 헌것같지만 사실은 새것인 그의 빈지티 스타일의 패션과 조금이라도 덜 구질구질해 보이고싶어 깨끗히 빨아입는 내 옷들은 너무나 달랐는데, 그게 내 자존심처럼 보였다니. 


"진주씨는 그런가요? 작가처럼 보이고 싶어서, 누가 부잣집 막내 도련님처럼 보는 게 싫어서, 어리다고 무시할까봐 일부러 터프하게 말하고, 사랑에 연연하지 않는 척하고, 일부러 구멍을 뚫고 때를 묻혀 파는 옷을 사입나요?"


내가 말했다. 그거 깜짝 놀라는 티를 내며 나를 돌아보며 핫!하고 웃었다.


"와! 엄청나네요, 세련씨! 엄청나게 상처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어요, 지금."


누가 할 소리야.


"......이렇게 톡 쏘는 것도 내가 생각 없이 한 말들이 무언가를 건드렸기 때문이겠죠?"


"......"


"그런데 그 말이 다 맞는 것 같아서 할 말이 없네요. 나는 아무것도 꼬인 것 없고, 너희들이 뭐라 떠들든 그냥 평범히 인생을 꾸려나가는 쿨한 사람이야, 라고 과하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라요. 사실은 작가님 말대로 그냥 고생 한적 없이 좁은 식견을 가진 부잣집 도령일뿐인데 말이에요. 나도 열등감이라는 게 있었나 봐요."


"......"


"그래서 아까 문자를 받았을 때 뭔가 기뻤어요. 더 듣고 싶었고."


"무엇을요?"


"내가 모르는 이야기?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이 아닌 곳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


"......무례해요. 진주씨."


나는 이제 조금 화가 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어젯밤처럼 파르르 화를 낼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열등감을 이야기 하는데 나는 왜 내 열등감이 자꾸만 톡톡 건드려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걸까. 


"그러니까, 지금 진주씨는......내가 실제보다 나이가 들어보인다는 말로 얘기를 시작했고, 내가 가난하고, 허전하고, 또 빈해 보인다고 말했어요. 다만 스스로 그것을 멋이겠거니 오해해었다고 했고요. 가진 것도 하나도 없으면서 자존심은 있어보여서 몰랐다, 뭐 그런 얘기를 내 면전에서 하다니. 나야 말로 놀라울 정도로 무례한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들었네요."


나는 나답지 않게, 뭔가에 씌인 사람처럼 와다다다 쏟아냈다. 옆에서 진주가 당황했는지 아니, 아니라며 내 말을 막으려고 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내가 하려는 말을 다 했다. 나는 화를 잘 내지 않는데, 적어도 최근 몇년 간은 누군가에게 이렇게 쏘아붙이듯 상대가 한마디도 못하게 짜증낸 적이 없었다. 그냥 끙, 하고 삼킬 뿐. 그런데 왜.

그때 진주가 내 어깨를 슬쩍 잡았다. 한 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내 한 쪽 어깨를 툭 치듯, 살짝 올려놓듯, 그렇게 짧게 잡았다. 진정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알았다. 내가 화를 내고 있구나. 아주 오랜만에 어떤 감정을 마구 뱉어내고 있구나 라고.

그렇게 쏟아내고서도 한참을 달려 차는 어디엔가 섰지만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친하지도, 그렇다고 아예 모르는 사이도 않은 묘한 사이이고, 앞으로 아예 보지 않을 수도 없는 사이이며, 그렇다고 막역지우처럼 야, 됐어. 하고 아무렇잖은 척 하기에도 어색한 친분이었다. 

어색한 공기가 차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그걸 내가 걷어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까지 하기에 나는 너무 많은 감정을 보였다. 나답지 않게.


"어......미안해요. 되게 눈치없이 화나게 하려던 건 아닌데, 왠지 그런 말에 상처 받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나 봐요."


무겁고도 낯선 침묵의 끝에, 진주가 사과의 말을 건냈다. 무례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던지던 것처럼 담백하고 솔직한 사과였다. 나라면 저렇게 솔직하게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


그의 사과가 솔직하고도 더 덧붙일 것이 없다고 생각했음에도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뭐라고 한단말인가. 괜찮아요? 나 노안인 거 맞아요? 고생을 많이 해서 그래요? 진주 같은 사과에는 진주같은 말로 대답할 수 있었지만 나는 진주가 아니었기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그래도 밥, 먹을거죠? 밥먹자고 한 거니까?"


진주가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이제 그만하고 나가자는 뜻이었다. 그가 만약 내 애인이라면, 우리가 썸이라도 타는 사이였다면 나는 핑 토라진 채 오늘은 그런 기분이 아니라며 집으로 돌아가버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런 사이는 아니었다. 굳이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일종의 갑을 관계였다. 나는 그에게 무례하다, 불쾌하다는 클레임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아예 무시하고 끊어버릴만한 입장은 못되었다. 


"네. 그래요."


우리는 어색하게 차에서 내렸다.







밥은 내가 먹자고 했지만, 무엇을 먹을지는 진주가 선택했다. 그의 차를 타고 있었고, 그가 핸들을 맡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먹자거나, 무엇을 좋아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가 묻지 않았고, 그 후에는 할 경황이 없었다. 

진주가 차를 멈추고 나를 데리고 들어간 곳은 삼겹살집이었다. 드르륵 소리를 내는 알루미늄 미닫이 문이 달린 오래된 식당이었고, 어디로 보나 특별난 것이 없는 곳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지글거리는 기름 소리에 고소한 돼지 고기 냄새가 온 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 진주는 단골인지 카운터를 향해 꾸벅 가벼운 고갯짓을 하더니 성큼 성큼 걸어 안쪽 자리로 향했다. 그리곤 익숙하게 등판 없는 작은 드럼통 같은 둥근 의자의 방석을 들어올려 가디건을 접어 넣고 다시 방석을 올린 뒤에 앉았다. 나도 그를 따라 낡은 외투를 벗고 의자 안에 접어 넣고 앉았다. 


"돼지 고기 같은 거 안 먹거나, 뭐 그런 건 아니죠?"


다시 원래의 진주 같은 미소를 띄며 말했다. 나는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진주는 직접 일어나 반쯤 들여다 보이는 주방 문 앞까지 가서 뭐라 뭐라 주문을 하곤 쟁반 하나를 들고 왔다. 파절이며, 김치며, 숟가락, 젓가락까지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상차림 쟁반이었다.


"옛날에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어요. 여기서."


가만히 올려다보는 나를 내려다보며 그가 씩 웃었다.


"뭐 생각하는지 아는데, 아마 그 이유가 맞을 거에요. 그냥 해보고 싶었어요. 고깃집 아르바이트. 힘들다고 하고, 또 아무나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나도 이런 걸 할 수 있는지, 버틸 수 있는지 궁금해서 했어요. 열아홉살 때.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그는 쟁반위의 것들을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렸다. 각각의 반찬과, 물컵과, 기타 여러 식기들이 어디에 놓여야 하는지 알고 있는 손길이었다. 그리고 바로 쟁반을 다시 주방에 반납하고 돌아와 내 앞에 앉았다. 이번에는 대패 삼겹살이 산더미처럼 올려진 접시를 들고 왔다.


"용돈도 충분했고, 엄마나 아빠는 입시 준비하느라 힘들었으니까 온 가족이 다 함께 유럽 여행이라도 다녀오자고 했지만 왠지 싫었어요. 어린애 같아서. 지금은 그게 얼마나 바보같은 생각인지 알아요. 부모님과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거, 가족들끼리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그 마음을, 엄마 아빠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어린애처럼 보는 것 자체가 어린생각이라는 거."


치이익-


그는 이야기를 하면서 테이블 위의 가스렌지를 켜고, 불판 위로 손을 올려 온도를 세심하게 가늠하고, 집게로 얇디 얇은 삼겹살을 듬뿍 집어 허튼 자리가 없도록 각을 딱딱 맞춰 올렸다. 고기는 빠르게 익어갔다.


"어쨌건, 여기서는 꽤 오랫동안 일했어요. 군대가기 전까지 일했던 것 같아요. 나 같은 날라리 알바생을 일년 넘게 받아준 좋은 사장님이 있었으니까요. 알바 스케줄을 줄여도, 바꿔도, 그래 허허 하면서 다 바꿔주셨어요. 지금 다시 일한다고 해도 받아주실걸요? 그쵸, 사장님?"


진주는 서비스라며 병 콜라 두병을 들고 온 초로의 남자를 향해 넉살 좋게 빙그르 웃어보였다. 


"암만. 언제 와도 좋지. 잘생겼잖아. 그 때 잘생긴 알바생 있다고 장사 잘됐지!"


사장 역시 따뜻하게 웃으며 진주의 등을 말랐지만 두꺼운 손으로 두드리고 자신을 호출하는 테이블로 떠났다.


"재미있었어요. 나는. 바쁘면 바쁜대로, 힘들면 힘든대로, 거친 일도 즐겁게 했던 것 같아요. 그땐 내가 나약한 도련님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렵지 않게 잘 해내는 것을 보면서 무언가 증명을 하는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런데 지금와서 다시 생각하면 그것 또한 유치한 생각이죠. 도련님 같은."


진주가 입모양으로 '술?'이라고 말하며 소주잔을 들고 마시는 흉내를 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열등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주변에서 뭐라고 떠들어대든, 나는 나고, 세상 이치 알만큼 알고,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


"그런데 어젯밤에 느꼈어요. 나에게도 열등감이 있을 수 있겠다. 뭘 모르는 애 취급 당하는 거. 곱게만 자란 취급 받는 거. 그런 게 내 열등감은 아닐까. 그 반대의 것이 세련씨의 것이고 우리는 서로의 것을 슬쩍 건드린 거 아닐까."


솔직한 사람이다. 자신의 열등감을 깨닫고, 그것을 인정하고, 더불어 자신의 것만이 아니라 상대의 것까지도 알아봤다. 그걸 당사자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그가 부러웠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나의 약점과 어두운 면을 안지 얼마 되지도 않는 사람에게 담담하게 털어놓을 수 없다. 여전히 부끄럽고, 여전히 무겁고, 두렵다. 그의 손쉬운 고백은 오히려 그의 열등감의 뿌리가 깊지 않음을, 그 무게가 그다지 무겁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역시나 부러웠다.

그는 말을 멈추고 금방 익어 바삭하게 되어 버린 얇은 고기를 내 접시 위에 수북히 쌓았다. 그리고 얼른 먹으라는 듯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까딱했다. 나는 과자처럼 바스락거리는 고기를 와삭와삭 씹었다. 양파초절임도 하나 집어먹었다. 고소하고 상큼한 맛이 입안에 맴돌았다. 아주 오랜만의 외식이고, 또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타인이다. 여기 저기서 연기를 내며 피어오르는 불판의 열기에, 와글와글 떠드는 사람들의 온기에 가게 안은 따스했고 굳어 있던 내 얼굴도 그 열기에 버터처럼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나이 들어 보인다고.....한 거 미안해요. 그런 뜻은 아니었지만."


내 앞에 고기를 산처럼 쌓은 뒤에야 자신의 입에 고기를 넣으며 진주가 말했다. 


"나도 미안해요. 별로 나이 차이도 안나면서 나이 든 얼굴로 오해하게 해서."


농담이랍시고 나도 대꾸했지만 괜히 예민하게 구는 사람 같이 말이 삐딱하게 나갔다. 그런 것에도 쿨하게 반응해야 어른스러운 걸텐데 그러지 못했다.


"늙어보인다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요."


"되게 웃기는 변명이네요.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그런 말은 아니었다고요?"


이번에는 너무 신경질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말했다. 웃으며 말했다.


"어, 어......내 말 뜻은......어......왠지 말을 할 수록 실례가 될 것 같지만."


"어차피 한 거니까 얘기해 봐요. 정확하게 무슨 뜻이었는지. 진주씨가 그렇게 뺄수록 궁금하네요?"


진주는 먹다말고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겠다는 듯, 정확히 설명하겠다는 듯 턱을 긁으며 눈을 위로 뜨며 생각에 잠겼다.


"솔직함과 무례함은 어느 한 곳이 닿아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지금까지 솔직하되 무례하지는 않으려 했지만 솔직함이 무례함에 닿으려 하면 더 이야기를 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왠지 작가님은 괜찮을 것 같았단 말이죠. 조금 무례하지만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걸 더 좋아할 것 같았어요."


"왤까요?"


"모르겠어요. 그냥 느낌이죠. 속고싶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무엇에든."


"속고 싶지않다."


나는 그를 따라 말했다.


"내가 하고싶었던 말은, 세련씨가 예쁘다는 거였어요."


"굉장히 극과 극을 오가는 이야기네요."


나는 좀 놀랐지만 놀라지 않은 척했다.


"예쁘잖아요? 그런 말 들은 적 없어요?"


"글쎄요."


"나이를 듣고 고생을 많이 했나보다 했어요. 예쁜 얼굴인데."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쁘다는 뜻이에요."


"칭찬이에요?"


"아......또 아니에요?"


여전히 무례하다. 돌려말하거나 꾸며 말하는 법을 모르거나, 지금까지는 그럴 필요가 없었거나. 그래도 예쁘다는 말이 더 크게 들렸는지 아까처럼 불쾌하지는 않았다. 예쁘다는 말을 꽤나 신기한 방법으로 구사한다고도 생각했다. 여자친구에게 예쁘다는 말을 할 때도 이런 식이었을까?


"흥미로운 분이네요. 진주씨는."


나는 그저 그렇게 밖에는 말해줄 수 없었다.






Knight of Cups(컵의 기사): 비밀스러움. 속내를 알다가도 모름. 불완전하고 비밀스러운 관계, 또는 본인이 본인의 마음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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