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Peony (작약)
브런치에 연재된 플라워 에세이 '일 년, 열두 달 흔들리는 꽃'이
이제 서점에서 만나요!
June: Peony
6월의 한낮에는 여름이, 아침과 저녁에는 봄이 공존한다. 다가올 무더위에 대한 맛보기 예고편인 듯하여 약간의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는 비교적 6월을 좋아하는 편이다. 6월에는 작약(Peony)의 가격이 내려간다. 그것이 내가 봄도, 여름도 아닌 애매한 계절인 ‘6월을 좋아하는 편'이 된 이유이다.
작약 (Peony)
작약은 ‘꽃의 여왕’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대표적인 꽃으로 유명하다. ‘여왕' 타이틀을 두고 누가 진짜 여왕인가 장미와 설전이 벌어질 수도 있지만, 역사적 이유, 관련 설화, 대중적 인지도 등 부차적인 이유를 빼고, 두 꽃이 얼굴로만 붙는다면 나는 작약이 완승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작약 여왕님은 누가 뭐래도 생긴 것부터가 딱 여왕처럼 생겼다. 기회가 있다면 만개한 작약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라. 압도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힘에 의해 압도되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지만 꽃의 아름다움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는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다.
따뜻한 오후의 햇살이 들어오는 실내에서 작약 꽃다발을 만들다 보면 어느새 손에 들고 있던 작약 봉오리들이 모두 활짝 피어난다. 나 좀 보라는 듯 벌어지는 작약의 커다란 얼굴은 ‘내가 보는 게 진짜 꽃인가?’ 하는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게 하는데 꽃잎의 가장 안쪽에서 찰랑이는 꽃술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홀린듯이 ‘너, 살아있구나’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커다란 꽃송이와 화려한 화형, 그리고 짧은 시즌 덕에 작약은 다른 꽃들보다 비싼 편이다. 병충해가 많은 꽃이라 상품가치가 있는 깨끗한 얼굴로 키우는 것도 어려워 보물처럼, 아이처럼 조심 조심 다루고 키워야 한다니 그야말로 ‘여왕’같은 꽃이다.
꽃이란 것이 그렇다. 너무나 명확하게 손에 잡히는 아름다움의 결정체지만 인간의 육적인 조건으로 보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다. 자연에 의해 빚어진 완벽한 아름다움이 스스로 피어나고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온전히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이 유일한 장점이다.
나는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오랜시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지만 나 역시 꽃시장에서 비싼 작약을 만나면 손을 떨면서 두번, 세번 살지 말지를 고민하고, 내가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던 그 작약을 망설임없이 수십단씩 싣고가는 다른 플로리스트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때도 많다. 나도 예산이 조금만 더 넉넉했다면, 지난 달 매출이 조금만 더 여유로웠다면 하는 쓸데없는 비교에 우울해 하기도 한다. 꽃을 하는 게 행복해 꽃을 시작했으면서도 더 많이, 더 마음껏 사지 못해 우울해하다니.
플로리스트는 늘 가성비를 생각해야하는 직업이다. 마음으로는 순수한 아름다움만을 쫒고 싶지만 내 삶은 언제나 땅에 붙어 있다. 매월 꼬박 꼬박 나가야 하는 직원의 월급과, 가게의 임대료와, 재료비와, 언제나 느는 추세에 있는 생활비는 나로 하여금 현실감을 잃을래야 잃을 수 없게 한다. 천상계의 아름다움을 가진 것들에 둘러 쌓여 마음이 붕 뜨기 쉬운 플로리스트의 발목은 언제나 지극히 현실적인 것들에 묶여 있다.
꽃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성비'란 정말이지 말 그대로 족쇄같은 것이다. 손님들은 조금이라도 싼 꽃을 찾지만 같은 종류의 꽃이라도 조금 더 비싼 꽃이 언제나 조금 더 예쁘고 품질이 좋다. 그리고 가성비와 예술혼 사이에 낀 플로리스트들은 곡예사처럼 균형의 지점을 찾아내야 한다.
작약이 끝물에 해당하는 6월, 특히 6월 초에서 중순에는 작약의 가격이 쭉 내려간다. 그리고 그 해 여름 더위가 조금 더 늦게 찾아온다면 작약의 계절은 일시적으로 조금 더 길어 진다.
계절의 흐름에는 언제나 틈새가 있다. 촘촘한 듯 이어져있는 시간의 흐름은, 가만히 들여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구멍이 있고 가끔은 그것을 기회로 이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봄과 여름의 경계, 계절의 벌어진 틈을 이용해 작약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가성비 있게 즐기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기다린다.
다른 꽃들보다는 조금 더 비싸고 수명은 훨씬 짧지만 그래도 이정도의 가격으로 이 정도의 아름다움은 충분히 즐길만 하다고 생각되는, 저울의 수평 지점이 6월 초 어디쯤인가 있는 것 같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고객들의 성향과 니즈를 파악하며, 아름다움과 가성비의 저울을 오가는 내가 속물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 세상에 이런 저울 하나쯤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이 어디 나 하나 뿐일까 생각 해 본다.
이런 기회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내 사소한 관심과 노력으로 지금껏 작약이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고 살았던 누군가가 새로운 행복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면 이 정도의 속물적 번거로움은 얼마든지 감수할만 하다.
행복은 어디에나 있지만 적극적으로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고 한다. 노력 없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을 행복이라 부를 수는 없겠으나, 역설적으로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은 그것을 구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행복은 ‘영역'을 가지고 있지 않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내가 아직 도달하지 않은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누어 놓은 현실과 이상의 영역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것.
여기가 아닌 저기로 가야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영역을 가로질러 넘어가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노력을 해도 행복을 찾지 못하는 건 찾는 노력이 아니라 자꾸만 다른 곳으로 가려는 노력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일년에 딱 한번, 약 일주일 정도 마음껏 누리는 작약의 행복은 어렵게 찾은 틈새에 있었기 때문에 더욱 황홀하고 기다려진다. 그건 마치 작약의 수명처럼 짧지만 폭죽처럼 강렬하다. 나 여기에 있었어!라며 나타난 인생의 깜짝 선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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