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에 앞서, 이번 화를 마지막으로 3주 간 브런치 활동을 잠시 멈추려 한다. 휴식을 위한 것도 있지만, 다른 주제의 에세이집을 위한 준비 기간을 가질 예정이다. 퀄리티 높은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좀 더 많은 시간을 글쓰기에 투자하기로 했다. 그동안 제 글을 읽어주셨던 모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항상 댓글을 남겨주시거나 구독이나 좋아요를 눌러주셨던 분들, 한 편이라도 제 글에 관심을 가지고 저의 공간에 들어와 주셨던 모든 분들이 자주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30번째 글에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야 깔끔하고 담백한 막을 내릴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며칠 간의 고민 끝에, 나는 현재의 나를 만들어 준 과거를 차근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몇 년 전에 공동 저자로 참여하며 출간했던 '같은 시간, 다른 장소'의 '티핑 포인트'를 재구성한 글이다.
어릴 적 운동회가 열릴 때마다 항상 두려워하는 종목이 있었다. 파랑 또는 흰색의 아대를 손목에 두른 채 '탕!' 하는 소리를 출발 신호로 서로의 운동화를 앞다투어 내딛는 100m 달리기 경주에서 나는 단 한 번도 1등을 해본 적이 없었다. 꼴찌를 면하면 다행이었고 딱 한 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3등을 차지하면서 손등에 숫자 3이 찍힌 도장을 받아본 게 전부였다. 이게 복선이라면 복선이랄까.
고등학생이 되면서 본격적인 공부에 돌입했는데,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눈에 띌 만큼의 열정을 보였지만, 좋은 성과를 거둬들이진 못했다. 용모 단정하고 성실하지만 성적은 그저 그런 애매모호한 모범생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등급을 올려 보려 최선을 다했다. 공부의 왕도를 보고 회독 공부법을 따라 해 보기도 하고 점심시간엔 줄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직접 만든 영단어장을 펼치며 단어를 웅얼거리거나 정해진 자습 시간 외에 추가로 남아 야간 자율 학습을 이어갔다. 또한 나는 주로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영어 리스닝 점수를 올리기 위해 기숙사 아침 점호를 알리는 알람 소리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 영어 듣기 평가 문제를 풀었다. 수능 날이 가까워질수록 수업 시간이 줄어들면서 나의 순 공부 시간은 10시간을 훌쩍 넘기는 날이 잦았다. 하지만 3년 간의 노력이 허망할 정도로 수능 결과는 빛을 발하지 못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나의 삶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보지 못했다. 그러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 유의미한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네가 이번 시험 1등이래!"
주인공을 바라보는 관중석에만 있었는데, 갑자기 무대 위로 올라와버린 기분이었다. 사실 수능이 끝난 뒤, 나는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었다. 원하는 곳에 닿기 위해서는 높은 학점이 필요했다. 나는 입학할 대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학과 커리큘럼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미리 조금이라도 공부해 갈 심산이었다. 찾아보니 고등학교 때 배웠던 생명과학 II가 일부 전공과목과 가장 관련성이 높았다.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었고, 잘 정리해 놓은 요약 노트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대학교 새내기가 되기 전까지 요약 노트를 반복해서 보았다. 그 덕분에 첫출발이 수월했고 다행히 높은 성적은 꾸준히 이어졌다.
그런데 중반쯤 달렸을까. 나는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좋은 성적을 받을수록 만족감보단 안도감이 커졌다. 행여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당근을 뺀 채찍질만 하기도 했다. 어떻게 얻은 결과인데, 다시 내려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성적에 극도로 집착했던 것이다. 주변에선 내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나는 결국 학교에서 운영하는 상담을 신청했고 한 학기가 지나서야 조급함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결국 4학년 마지막 학기까지 성실히 다닌 후, 나는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꿈을 위한 최선이 이제 그만 막을 내리면 좋았겠지만, 아직 또 다른 준비가 남아 있었다. 취업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스펙이 되는 공인 영어시험, 토익이었다. 사실 신입생 때부터 조금씩 토익 준비를 해 왔지만 아직 고득점은 얻지 못한 상태였다. 방학 때 했던 토익 학원과 고시텔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두 달간 학원-카페-집의 반복이었다. 많은 자습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일부러 첫 수업을 신청했고, 수업 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와 단어를 외웠다. 거의 매일 강의실 불을 켜는 건 나였다. 물론 수업을 마친 뒤 스터디에도 참여했다. 과제는 끝이 없었고 잠은 늘 부족했다. 그런데도 성적은 오를 기미가 없었다. 학원 선생님도 왜 점수가 안 오를까 의아해하셨다. 나는 자주 서럽게 울었다. 고시텔 특성상 소음을 내지 못하는 곳이기에, 소리 없이 헐떡였다. 그렇지만 내려놓진 않았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억울해서라도 계속 버텨야 했다. 그렇게 두 달의 시간이 흐르고 찔끔찔끔 오르던 점수는 갑자기 100점이 뛰었다. 수석으로 졸업했던 순간보다 더 큰 성취감이었다. 나는 시원한 마음으로 고시텔을 나왔다.
이후 수많은 자기소개서와 몇 변의 면접을 본 후 나는 마침내 원하던 곳에 입사하게 되었다. 이제야 마음 편히 놀 수 있었다. 직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퇴근 후엔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다양한 경험을 시도했다. 이제 불안 끝, 행복 시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소리였다.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에 대해 점점 알아갈수록 삶의 만족감이 낮아졌다. 내면의 시야가 넓어지면서 나는 독서와 글쓰기에 꾸준한 애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가치관이 뚜렷해지면서 수직적인 사회생활에 심한 저항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책 속으로 파고들었고 글쓰기로 혼란스러운 감정을 해소했다.
내 앞에 또다시 선택의 갈림길이 놓여 있다. 그것도 완전히 다른 방향의 길이. 조금씩 방향을 틀 준비를 하고 있다. 다시 불안감에 휩싸일 수 있다. 안정을 내려놓고 꿈을 향해 달려 나가면서 후회가 몰려올 수도 있다. 하지만 길지 않은 인생에서, 여러 번의 실패와 성공을 겪으며 깨달은 것이 있다. 추락하는 것을 눈뜨고 보고만 있지 않는다면, 삶은 결국 고점을 향해 간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내 삶을 돌아봤을 때 나는 방황-선택-행동-실패-성공의 패턴을 이루고 있었다. 인생의 그래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향과 상승 곡선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전체적인 추세선을 그어 보면, 상향을 향하고 있다. 여러 번의 실패와 소수의 성공을 통해 얻은 경험치들이 축적되어 인생의 하한가가 조금씩 올라가는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속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므로 기울기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나를 내려놓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과거를 내려다볼 수 있는 순간은 반드시 올 것이다. 인생은 100m 달리기 경주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