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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고운 Mar 14. 2021

본심

흔한 만큼 중요한 고민

 늘 하던 고민이 요즘 들어 부쩍 진지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현재 나름 안정적인 직장에 종사하고 있다. 그곳은 내가 대학교 졸업 후 두 달 만에 합격한 첫 직장이었으며 게다가 흔치 않은 정규직 자리였다. 그곳에 입사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던 건 사실이었지만 요즘의 취업난을 염두해 봤을 때 지인들의 '너는 운이 참 좋아'라는 말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취업 성공 소식에 가장 기뻐했던 분들은 역시 부모님이었다. 나 역시 내가 꿈꾸었던 직장의 일원이 된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은 간사한지라 그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여러 사유가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내가 이 일을 퇴직할 때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다른 분야에 직업으로써 도전해볼 수는 없는 걸까?'

 '이제 난 장기간의 여행이나 휴식은 퇴직하기 전까진 꿈도 못 꾸는 걸까?'


 어쩌면 많은 직장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라 흔한 주제일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특히 나는 직장을 얻고 나서야 내가 책과 글쓰기에 꾸준한 흥미를(2년째)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꿈을 실현시키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이제 조금 나를 알아가기 시작했는데 20대에 벌써 미래가 대충 정해지고 삶의 제약이 생긴 기분.


 얼마 전 유튜브로 '유 퀴즈 온 더 블럭'를 시청했다. 주인공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출연했던 진기주 배우였다. 놀랍게도 그녀는 과거에 삼성전자 직원이었고 기자였으며 슈퍼모델이었다. 여러 번의 이직 끝에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연기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이직에 대한 결정은 쉽지 않았다.

 

 "취업할 때의 그 고통들이 제 안에는 아직도 생생하니까. 그거를 또 한다? 그거를 또 한다고 될까?"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토익 성적을 만들기 위해 몇 달간 고시텔에 지냈던 경험, 제자리인 점수로 밤에 숨죽여 울었던 기억, 약 스무 곳의 자기소개서를 쓰고 운이 좋아 먼 곳에 면접을 볼 기회가 생기면 전날 근처 모텔에서 혼자 면접 준비를 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지금 이걸 내려놓고 전업 작가로 시원하게 나아갈 용기가 없는 건 새 출발을 위한 준비 기간이 얼마나 힘든지 너무 잘 알아서였다. 그래서 더욱 그녀가 대단해 보였다. 진기주 배우가 그러한 고통을 다시 겪음에도 배우라는 새로운 갈림길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동안 제가 거쳐왔던 직업들에 비해 가장 불안정적이고 가장 자존감도 많이 깎이고 상처도 가장 많이 받고 그렇긴 한데요. 그냥 흥미로워서 좋아요."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함에도 단지 흥미롭기 때문에 선택한 연기. 나도 안정적인 직장을 내려놓고 고정적인 수입과 사회적인 지위를 포기하고 성공할지 모르는 작가의 길에 온전히 발을 들일 수 있을까. 평소보다 구체적인 사유를 해본다. 결국 나는 코로나로 인해 위축된 고용 상황을 탓하며 그 삶을 조금 뒤로 미루기로 한다.

하지만 그 시도를 절대 포기하진 않는다.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멀지 않은 날 뛰어들 것이다. 오히려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 보는 삶이 가장 후회 없고 건강한 삶이 되지 않을까.


 현재로선 이렇게 매주 브런치에 글을 올릴 시간이 주어지는 것만으로 감사해하며 살기로 했다.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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