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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 우산 Mar 22. 2023

중국인과 차이나 타운 (제 1 편)

뉴욕 맨해튼, 차이나타운의 춘절

중국인과 차이나 타운 (1부)


미국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당시에는, 지금 같은 대형 한인 마켓이 없었다. 한국 물품을 파는 작은 슈퍼마켓이 몇 있었을 뿐이었는데, 살만한 것이 없을 땐, 일본 슈퍼마켓을 찾거나, 아니면 차라리 차이나 타운으로 갔었다. 차이나 타운에는 항상 물건이 풍성했고, 값도 저렴했다. 


뉴욕에는 차이나 타운이 세 곳이 있는데, 역사가 가장 긴 맨해튼의 차이나 타운에는 주로 본토에서 옛날에 서부 개척 시대에 철도 공사 인부로 건너온 사람이 시작이었단다. 그러니까 켄트니즈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요즘은 여러 동남아 사람들까지 가세한 형국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래도 나이가 젊은 사람은 영어를 하는데, 나이가 든 사람들은 대부문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만큼 영어를 못하고 중국어만 해도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차이나 타운은 크고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지도상으로 보면 맨해튼의 금싸라기 땅인 금융지역 바로 위에 있지만, 제일 낙후되어 있는 지역이어서, 훗날에는 개발업자들에겐  단 하나 남은 황금알을 낳는 그런 지역이 될 것 같다.


예전에는 일본인이 많이 거주했었던 플러싱을, 한인의 초기 이민자들이 가서 살기 시작했고, 그 뒤를 중국인들이 나중에 따라왔다. 플러싱에서 일본인이 떠나면서, 한 때는 한인들이 플러싱을 장악하는가 싶었는데, 중국인들에게 밀려서 지금은 노던 블루버드를 따라 넓게 흩어지는 형국이다. 플러싱은 맨다린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특히 대만계가 우세했었는데, 그것도 요즘은 많이 변화하고 있는 듯싶다. 중국인들은 많은 정치인을 배출해서, 토지 변경을 통해 큰돈을 벌어가고 있는 형국인데, 그 배경에는, 작은 돈을 여럿이 공동으로 투자를 하는 그들의 문화가, 혼자서만이 사업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인들을 압도하는 형국이, 플러싱에서 세입자로 있는 한인이 건물주인 중국인에게 밀려나고 있는 처지가 되어가고 있다.


미국인 틈에 끼어 살면서 우리는 중국인을 같은 동양인이라는 동질성으로 바라보고, 또 기대도 했었는데, 중국인들은 처음부터 우리와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자기네들끼리의 갈등과 차별이 있는데, 그런 그들의 눈으로 보는 한국인은 그저 괄시받는 한 소수민족으로 밖에 안 보이는 것 같다. 맨 나중에 생겼지만, 제3의 차이나 타운은, 중국 내에서도 제3 세력이라는, 그래서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괄시를 받는 제3의 언어인 쩨쭈안어를 쓰는 쩨쭈안들이 브루클린에 세운 차이나 타운이 있다. 어떤 국가가, 또는 어느 민족이 만일 전쟁에서 지면, 그 후손들은 대대로 멸시를 받으며 살게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그러나 상술에 관해서는, 모든 중국인들은 어디를 가나 항상 박리다매의 상술을 사용하고 있다. 그 브루클린의 차이나 타운에서는 과일을 Box 채 사면 아주 싼 값에 팔고 있어서, 싸기는 하는데, 사과도 Box 채 사는 바람에, 빨리 먹지 않으면, 상한 사과를 먹어야 했던 기억을 안겨주는 지역이다.


코로나 사태 때는 차이나 타운마다 긴 줄이 있었다. 무료로 음식을 나누어 주는 줄인데, 대부분 노인들이 줄을 서있는데, 간혹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도 줄을 설까 말까 망설이는 모습도 보게 된다. 공짜는 세계 만국 누구나 좋아하는가 보다.


옛날 종합무역상사에서 근무할 당시, 조회 시간에 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당시 한국에서 수출품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경공업 제품이 언젠가는 저가의 공세로 나올 중국한테 추월당할 수 있으니,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오던 것을, 내가 회사를 관두고 한국에서 완구 제조 수출사업을 할 때, 나에게 들이닥쳤다.

당시 제법 사업의 규모도 되어가는 듯싶었고, Buyer 만 계속 이어진다면, 될 성싶었을 무렵, 문제가 생겼다. 원제품만 사가던 중국인이 비슷한 완제품으로 한국 상품을 따라오기 시작하는데, 값이 거의 덤핑 수준이었다. Buyer들마다, 중국인의 가격대에 맞춰주어야만 Order를 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중국인의 저가 공세에 무너지면서, 그것이 내가 미국으로 이민 오게 된 주된 요인이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특히 뉴욕에서는 한인들이 세탁업을 주도하는 세력이 되었다. 그에 동참했던, 나도 세를 불려 가며, 이제 조금만 더 나아가면 빌딩도 사고, 괜찮겠다 싶을 무렵, 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역시 중국인이다. 그들의 박리다매, 저가 공세는 뉴욕의 세탁업에서도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왜 좀 될만하면, 꼭 중국인은 우리를 따라와서는 기를 꺾어 놓는지 모르겠다. 싸구려 중국인의 저가 상술에, 한인은 고 Quality를 고집하며 맞섰지만, 싼 값을 좋아하는 소비자의 심리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요즘은 내가 직접 기계를 안 돌리고 도매를 하는 곳에 의뢰한다. 그중에 한 곳은 중국인이 하는 곳인데, 그곳의 저렴한 가격이 사실은 나에게도 매우 매력적인 것은 또한 부인 못한다. 그 중국인 도매상을 어느 누구의 소개로 거래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남자 주인 괜찮았는데,) 여자 주인이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처음부터 무섭게 나를 대했다. 


내가 뉴욕에 와서 중국인과도 많이 일을 해보았다. 다는 아니겠지만, 많은 중국인의 뇌리에 한국인을 멸시하는 그런 것이 뿌리 깊게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직장 상사이니까 고분고분하다가도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땐 그 본성이 나오기 마련인데, 그때 느끼는 것이 중국인은 한인들을 몹시 멸시하는 것이 뿌리 깊다는 느낌이었다. 중국 본토에서 온 중국인이건, 대만에서 온 중국인이건 안 가리고 모두들 그렇다. 특히 여자들은 정말로 Tough하다. 그래서 그럴까, 중국 사람들은 한인이 운영하는 Business에는 아예 지원도 안 한다.

여자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에 비해 일본 여자들은 전혀 거칠지가 않다. 내가 만난 일본 여자는 한 명도 예외 없이, 나긋나긋하고, 순종적이다. 얼굴이 잘생겼든, 못생겼든 상관없이 여자답다. 꼭 그렇다고 모든 것이 완벽하고 인격이 훌륭하단 이야기는 또 아니다. 즉, 앞에서는 나긋나긋하게 보이는 만큼, 뒤에서 뒤통치는 면도 있는 것을, 한 사람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내 경험상 그렇다는 말이다. 한 번은 일본서 온 지 얼마 안 된 일본 여자를 고용해 본 적이 있었다. 물론 앞에서는 매우 순종적이었다. 그래서 한 가게의 Manager를 시켰는데, 하루아침에 후임자 물색할 시간도 안 주고는 다른 가게로 그냥 가버렸다. 반면에 중국 여자는 잘 생겼든, 못 생겼든 상관없이 그냥 거칠고 사납다. 화나면, 목소리도 크다. 그러면, 한국 여자는 어떨까? 딱 중간이다. 일본 여자의 상냥함과 중국여자의 거친 성격의 중간 수준인데, 더 놀랍고 재미있는 현상은, 한국에서는 남쪽으로 갈수록, 일본 여자의 성품에 가깝고, 북쪽으로 갈수록 중국 여자의 성품을 닮아가는데, 누가 논문 제목으로 정해서 한번 연구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암튼 중국 여자의 Tough 함에, 인종적 멸시가 더해지면 정말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거래를 시작한 도매상의 그 여자 주인도 그런 느낌이었다. 기분이 나빠서, 거래를 끓을까도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저렴한 가격이 매력적인지라, 나도 돈 앞에서는 약한 인간인 모양이다. 그래서 참고 지내다가...


그곳에서 사용하는 물건 운반하는 카트를 누군가가 (아마 홈레스가 그랬을 것이다) 훔쳐간 일이 벌어졌다. 쩔쩔매고 있는 것을 보고는, 내가 발 벗고 나서서 그 일을 도와주었다. 당시 나는 가게를 줄여나가며 정리하던 터라, 내다 버릴 물건도 많았다. 내 큰 카트를 전기톱으로 자르고, 그 밑의 받침대를 나무로 만들어줘 가며, 그리고 아래에는 바퀴를 달아서, 잃어버린 것보다 더 좋은 카트를 즉시 만들어 주었다. 우리 집 사람은 남의 일에 뭐 그리 오지랖도 넓게 너무 Over 하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암튼, 난 그 일을 깔끔하게 해결해 주었다. 그랬더니...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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