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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 우산 May 04. 2023

브루클린아! 미안하다?

브루클린 식물원 꽃구경 가기

가끔 문뜩문뜩 생각 나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다. 한 번은 한국에서 미국 빙문차 뉴욕에 온 친구를 그 친구의 형님댁에 데려다준 적이 있었다. 길을 못 찾아서 잠시 차를 정차시키고 길을 찾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차에서 내리길래 기지개나 켜며 바깥 구경하려고 나가나 싶었다. 그런데... 헉! 


주섬주섬하더니, 가로수에 대고 소변을 보는 것 아닌가. 말리려고 차에서 내렸다간, 지나가는 행인한테 나도 도매금으로 함께 넘어갈까 봐 창피해서, 차 안에서 숨죽이고 있다가, 드디어 일을 다 마치고 돌아온 그 친구한테, '야! 너 미쳤냐? 그래도 명색이 여기 뉴욕 시내인데... 아직 해가 멀건히 떠 있구먼. 넌, 서울서도 그러고 다니냐?'라고 쏴 붙여줬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고, 한국에선 고위 공직 생활도 했다는데...) 



옛날 우리 어렸을 적엔, 그런 광경을 많이 보았었다. 사실 우리도 한 때, 젊었을 땐, 친구들과 술 마시고 한 곳에다 대고 여러 명이 함께 하기도 했었다. 물론 뉴욕 시내에서도 그런 광경을 전혀 못 본 것은 아니다. 어쩌다가 홈레스가 그런 짓을 하는 것을 보면,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암튼 이해가 안 갔다. 

뉴욕 시내에서 험악하게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있다. 뉴욕은 관광객이 많은 도시인데, 해외 관광객은 Taxi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겠지만, 미국 내의 다른 주에서는 자동차를 직접 몰고 여행을 오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빨간 신호등도 무시한 채 지나가버리거나, 보행자를 무시한 채, 마구 달린다든지, 또는 위험하게 새치기하며 끼어드는 그런 차량을 보면, 대개는 다른 주에서 온 차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펜실베이니아 번호판을 달고 있는 차량이 특히 많다. 왜 다른 주에서 온 차들은 그렇게 법규를 무시하고 뉴욕 시내에서 차를 마구 몰고 다니는 것일까? 

 

심리학자들은 그런 경우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심리적인 차원에서 봐야 하지 아닐까 생각된다. 앞에서 이야기 한 그 친구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즉, 낯선 곳에 가게 되면 왠지 모르게 법규를 지키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그런 심리 작용 때문이 아닐까?

 

나 자신도 여행을 하다 보면, 그곳에서는 대단한 관광지라고 해서, 일단 머리를 끄떡이긴 해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조금은 우습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한국에선 서울에, 그리고 또 지금은 뉴욕에 살고 있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나만 그럴까? 그런 심리적인 현상 때문에 그 친구도, 그리고 다른 주에서 온 차들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닐는지? 그러면서 특히 펜실베이니아 차들이 많은 이유도 설명이 될 듯하다. 뉴욕에서 멀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펜실베이니아 사람들의 역사적인 자존심이, 뉴욕을 우습게 보아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세상이 시끄러워지는 것도, 역시 같은 이유일 것 같다. 즉, 사는 지역이 달라서, 사용하는 언어가, 종교가, 그리고 인종이 다르다고 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와 다른 것에 대해서는 선입관을 갖고, 상대방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 갈등의 시발점이 아닐까? 


나는 스태튼아일랜드에 살면서 맨해튼으로 출퇴근하다 보니, 늘 중간에 있는 브루클린을 거쳐 지나가게 된다. 어쩌면 나도 브루클린에 대해서 선입관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멘트로 지어진, 삭막한 브루클린을 지나 베라자노 브리지에 당도하면, 눈앞에 펼쳐지는 푸른 섬이 나타나는데 그제서 푸근하고, 마음이 놓이지 않을 수가 없다. 

 

브루클린 하면, 왠지 가난한 흑인들이 많이 살고, 험악한 동네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가고 싶지 않은 지역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뉴욕시의 5개 보로 중에서 돈을 제일 많이 벌고 있다는 스태튼아일랜드는 그 돈을 가난한 브루클린 등과 나누어 갖기가 싫어서 뉴욕시로부터 독립하자는 안이 자주 오르곤 한다. 



봄이 돌아오고 벚꽃이 만발할 즈음, 뉴욕에도 벚꽃이 화려하게 피는 곳이 몇 곳 있다. 그중의 한 곳이라는 브루클린의 식물원에는 별로 갈 생각이 없었다. 아마 마음속으론, (브루클린에 뭐 그리 대단한 장소가 있겠어?)하는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튜브 ⁹영상을, 맨날 똑같은 곳만 찍기도 그래서, 이번에는 색다른 곳에 가서 촬영해 볼 요량으로, 브루클린 식물원이라는 곳을 처음으로 찾았다. 그런데...  


벚꽃으로 유명한 센트럴 파크나, 루스벨트 아일랜드는 수시로 아무 때나 그것도 공짜로 들어갈 수가 있는데, 반면에 브루클린 식물원은 그게 아니었다. 공원이 아니라, 식물원이라서 그럴 것이다. 티켓도 사야 하고 미리 사전에 방문 스케줄을 잡아야 한단다. 티켓은 18불(시니어와 아이들은 12불)이다. 들어가는 문이 3군데가 있는데, 어느 문으로 입장을 할 것인가도 미리 정해야 한단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리고, 그래서 통제를 하는지, 짐작이 갔다.


 

센트럴 파크에도 정원 일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데, 그렇게 눈에 많이 띄지는 않는다. 그런데, 브루클린 식물원에는 정원 가꾸는 사람이 정말로 많다. 보아하니, 직원이 아니라, 자원 봉사자 같아 보였다. 그리고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Table과 지도 선생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앞의 두 곳은 벚꽃이 이곳저곳에 자연스레 넓게 분포되어 있는데 반해, 이 식물원에는 한곳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벚꽃이 만발할 때는 정말 얼마나 화려한지 모른다. 머리 위로는 핑크 빛의 꽃송이들이 계속 펼쳐지는 광경을 바라보며, 푹신 거리는 파란 잔디 위를 걷다 보니, 왕궁에 사는 임금님도 부럽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브루클린을 우습게 보아온 것에 대해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거기까지였으면 더도 없이 좋았다. 그런데... 

식물원이 넓어서 여러 지하철 노선이 이곳저곳으로 지나가고 따라서 인근에는 정거장도 여러 곳에 있는데, 식물원을 거닐며 왔던 곳을 다시 되돌아가지 않으려고, 돌아갈 때는 올 때의 전철과는 다른 노선의 전철과 정거장을 이용하기로 했다. 대충 어느 방향에 정거장이 있으리라는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아는 길도 물어가라'라고 하지 않던가? 식물원을 나오며, 마침 문 앞에 흑인 여자 경찰이 있길래, 전절역으로 가는 길을 쓸데없이?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것이다. '이쪽으로 돌아서 이렇게 갈 수도 있고, 또는 저 쪽으로 돌아서 저렇게 갈 수도 있고...' 하며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주는 그곳에는 브루클린 박물관 건물이 보였다. (그런데 그곳은 내가 사전에 조사할 땐 분명 전철역이 없었는데...? ) 물론 요즘엔 전철 정거장을 건물 내부로 통하게 신설하는 경우가 있기는 있다. (그래도 경찰관이 일러주는데, 설마 하니 틀리게야 가르쳐 주겠어? 어쩌면 전철 지도에는 아직 안 나온, 새 정거장을 신설한 거 아닐까?...) 하면서 발걸음도 가볍게 옮겼다. 그런데... 


 

(엉?) 거기엔 아무리 둘러보아도 전철역 표시판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것이다. (어랍쇼!) 이리저리 찾다가 결국 박물관을 지키고 있는 Security 한테 다가가서 다시 물어보았다. 그가 가르쳐주는 길은,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서, 온 것만큼 더 가야 하는, 그러니까, 내가 처음에 나름 짐작했던 바로 그 방향이 맞는 것이다. (도대체 뭐지?) 


괘씸한 생각이 들어서, 그 흑인 여자 경찰관한테 가서 따져볼까 하는 생각도 들며, 그 박물관 건물을 흘낏 쳐다보니, 그 건물에는 큰 글씨로 'BLM'이라고 쓰인 커다란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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