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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 우산 May 31. 2023

이 나이에?

글을 쓴다는 것

정기 건강 검진을 받기 위해 가끔 병원에 가면, 계속 주기적으로 나에게 내미는 서류가 있다. 잘 읽어보고 답변하라고 한다. '섹스는 얼마마다 한 번씩 하는지?' '섹스 상대자는 몇 명인지?' 그리고 '혹시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는지?' 등등... 어떻게 보면, 별 해괴망측? 한 것을 디밀며 자꾸 쓰라고 강요한다. 젊잖은 체면에, 그런 것에 관련된 지극히 프라이버시한 것을 계속 논하자고 하니, 그래서...

 

결국 내가 참다못해, 간호사에게 물어보았다. '왜 이런 것 자꾸 쓰라고 해요?' '누가 혹시 의학 논문 준비하느라 그 기초 자료로 사용하려고 하나요?'라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요, 정신적인 건강 함도 체크를 하기 위해서...'라는 답변을 들었다. 난, 사실 우울해할 그럴 겨를(섹스 문제는 아니고...)이 없다고 하면서, 내가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를 얘기를 해주었다. 누구는 나더러 '도대체 왜 그러고 사냐?'라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늘그막에 유튜브 동영상 제작한다며 왜 그런 고생을 사서 하냐?' 또는 '그렇게 끝도 없이 글을 계속 쓰고 싶냐?'라고 하며 전혀 이해를 못 하는 사람도 있다. 병원 간호사에게 '나는 왜 우울증에 걸릴 틈이 없냐면요...'라면서 유튜브 동영상 제작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바쁜 간호사를 붙들고 긴 얘기를 할 수는 없어서 글쓰기에 대해서는 미처 얘기를 못 했다. 한데, 나에게는 유튜브 영상 제작보다는 글쓰기가 더 중요하고, 또 나 자신에게 끼치는 영향도 더 크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것을 꼭 누구를 위해서 쓰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나를 위해서 쓴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현실은 항상 어묵하고 한계가 있다. 꼭 나에게만 그럴까? 높고 낮은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에게나, 현실은, 세상은 힘들고 넘기 어려운 많은 벽이 많다. 나를 가두고 힘들게 하는 상황이라도, 나의 상상력과 생각은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다. 세상이 결코 만만치 않아도, 내 머릿속에서만큼은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쉽게 뛰어넘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살다 보면, 섭섭한 일이나 화가 나는 일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가급적 그런 부정적인 생각은 떨쳐버리고, 긍정적이고 밝고, 환하게 웃게 만드는, 그런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 나 자신도 부정적인 것과는 멀어지게 되지 않겠는가? 긍정적이고 재밌는 글이 나오려면, 우선 내 생각, 내 삶 자체가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이 또한 글쓰기로 인해 만들어지는 좋은 점 아니겠는가? 

 

사노라면, 이해가 안 되는 상황도 생긴다. 그때 당시는 전혀 이해가 안 되었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 글을 쓰다 보면, 그 당시 상황이, 그 사람이 이해되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 풀리면서, 나 자신의 마음도 변화가 생긴다. 역시 바람직한 변화 아니겠는가? 심하면 트라우마까지도 생길 수 있는 사건도, 눈 녹듯이 풀릴 수 있다. 더 나아가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에 대해서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까지도 들 수 있게 되는 상황으로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손으로 쓴다고 해서 그냥 써지는 것이 아니다. 우선 머릿속에서부터 그 글이 생성되어야 한다. 해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머릿속으로 먼저 글을 써 본다. 걷거나, 차를 운전하거나, 내 몸이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이, 머릿속으로는 계속 글을 쓴다. 자다가 잠을 깰 때도 자리에 누운 채로, 글을 떠 올려본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나에게 묻는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것일까? 내 생각이 과연 옳은 것일까?...) 그러다 보면,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멍~ 하니 있을 시간이 없다. 잠시라도 짬이 날 때마다 내 생각을 다시 훑어보며 재고해 본다. 글을 계속 수정해 가며 고쳐 써본다. 즉, 정체된 내가 아니라, 한 발짝씩이라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내가 되는 것이다.

 

하나의 글이 다 작성되면, 그 글에 대해서 나는 뒤도 안 돌아본다. 그럴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브런치나 SNS에 (SNS에 올린 것은 수정할 수는 있지만) 그리고 신문사에 보낸 글은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다음에는 무엇을 쓸 것인가(그리고 유튜브의 영상은 무엇을 찍고 어떻게 편집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 이렇듯 계속 이어지는 긴장이, 병원의 간호사가 염려하는 그런 것이 나에게는 닥칠 틈이 없다. 아니 오히려 나는 다음에 뭔가 쓰거나 찍을 기대감에 혼자 즐겁다. 나도 모르게 설렘 속에서, 즉 희망 속에서 잠을 자고 희망 속에서 깨게 된다. 글은 결국 그렇게 나 자신을 위해서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다. 그중의 하나는 어쩌면 '용기' 일 것이다. 글을 쓰는데, '웬 용기?'냐고 반문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내게 용기가 있다면, 더 넓은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내가 쓰고 싶어 하는 글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에 관해 쓴다면, 생생한 현장감을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혹시 개인 신상에 관한 이야기라서 누구에게는 불이익을 주게 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거나, 혹은 누구에게는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되거나, 심지어는 분란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일 것이다. 마음 약해서 내 머릿속의 글이 담장을 넘어 더 넓은 곳으로 나가지 못한다. 글쓰기의 또 다른 면도 있다.

 

글쓰기만으로는 안 되는 것도 있다. 예전에는 주로 신앙에 관한 글을 많이 썼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씨앗을 뿌리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말이나 글보다는 삶 자체가 더 설득력이 있고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의 다툼이 자주 생기기 때문에, 신문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가급적 자제를 하고 있다. 그런 글은 나 혼자 내 머릿속으로 썼다 지웠다 하면서 나에게는 계속 물어본다. (쓰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안 쓰는 것이 더 나을까?)

 

글을 쓰면서 나에게 생기는 변화는, 내가 말을 재미있게 잘한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나는 원래 말재주가 없는 사람이다. 우리 할머님이나 아버님은 참으로 말씀하시길 좋아하셨고 또 잘하셨다. 그것에 비해 나는 어려서부터 말 주변머리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젊었을 적에 Date 할 때도,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진작에 내가 말을 재밌게 잘했더라면, 나의 연애사가 더욱더 화려? 했었런지도 모른다. 어디 연애뿐이었겠는가?

 

지금의 나는 내가 그동안 살면서 수없이 내린 판단의 결과인데, 내가 진작에 글을 써오며, 주위의 상황을 더 잘 판단했더라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아직도 늦지는 않았으니, 남은 삶이라도 잘 살기 위해서는 천국 가기 전까지 나는 계속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정말로 말을 그렇게 술술 잘한다면?, 이는 아마도 내가 글을 쓸 때, 상대방을 앞에 놓고 이야기하듯 천천히 써 내려가면서 생긴 것 같다. 그것도 빠른 속도가 아니라, 마치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듯이 차근차근 쓴다. 왜 카톡 보내듯 쓰냐 하면,

 

나는 주로 글을 셀폰을 붙들고 쓴다. 셀폰에 한 손가락으로 천천히 'ㄱ ㄴ...' 하나씩 또박또박 찍어가다 보면, 내 손가락이 내 머리를 앞지르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머릿속으로는 한 문장을 그것도 여러 번 되뇌고 고쳐가며 쓰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나도 이상한 것이 하나 있다.


 

계속 쓰다 보면, 어지간히 뻔한 내 주변 상황으로서는, 더 이상 쓸 거리가 없게 될 것 같은데, 마치 샘물에서 한 바가지 물을 퍼내면 또다시 금방 샘물이 차게 되는 것처럼, 써야 할 거리가 끝도 없이 생긴다. 그만큼 내 삶이 Variety 하고 Dynamic 해서일까? 만일 그렇다면 이 또한 감사하고 좋은 것 아니겠는가?

얼마 전 뉴욕에 있는 고교 동창회에서 주관하는 등산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등반을 마치고, 한 후배로부터 새로운 제안이 하나 나왔다. 등산할 때마다, 모여서 등산만 할 것이 아니라, '시'나 '수필' 같은 것을, 본인 것이든, 시인이나 작가의 것이든, 준비해 와서 발표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었다. 참으로 참신하고 바람직한 제안이다. 모여서 떠들고 먹고 마시다 만 헤어질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 속에서 평소에 자기가 생각해 온 것을, 또는 은혜롭고 좋은 이야깃거리가 있으면 함께 나누고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제안이라서, 나도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바이다. 단지, 내가 또 등반을 자주 갈 수 있을는지, 그런 시간을 얼마나 자주 낼 수 있을는지는 차치하고라도... 암튼 세상은 이렇듯, 날로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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