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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 우산 Jun 05. 2023

군함에 오르며

뉴욕의 Fleet Week에

그냥 무심하게 지냈을 때에는, 뉴욕 시내에서도 군인들이 가끔은 보일 때가 있긴 있었던 것도 같았다. 내가 한국서 살 때는, 서울 시내에서는 군인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사실은 뉴욕시에선 한 때만 잠깐 보이다가, 평상시에는 군인 보기란 쉽지 않다. 한국에선 나도 군에 있었을 때 군복 차림으로 출퇴근하였으니, 서울에만도 거주 군인이 꽤 많은 것이다. 요즘은 남쪽으로 대부분 이전하였으나, 예전에는 국방부를 비롯해서, 육해공군과 해병대의 본부, 수경사, 게다가 육사, 공사가 모두 서울에 있었으니, 군복 차림은 쉽게 눈에 띄었다. 그러나, 



군을 잘 모르는 일반 시민들, 특히 해외에서 온 관광객의 눈에, 시내에 많은 군인들이 눈에 뜨이게 되면, 마치 전쟁이 코 앞에 닥친 듯한, 살벌한 분위기를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군 복무 중, 당시 6.25 전쟁 후 처음으로 남북간 대화를 해보자는 분위기가 생기며 이후락 대통령 비서실장이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했었고, 답례로 몇몇 북측 인사가 서울을 방문했었던 그런 시기가 있었다. 위에서 특별 지시가 떨어지기를, 출퇴근 시, 군복을 입지 말고, 시내에 돌아다닐 때에도 군복을 입지 말라는 것이다. 처음으로 일반 복장 차림으로 출퇴근 군용 버스를 타보니, 마치 어느 회사에 다니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래서 군기가 빠지고, 갑자기 새로운 분위기에 휩싸이는 바람에 선배 장교 2명한테 붙잡혀 퇴근길에 함께 술집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뉴욕에 온 후로는 그런 군복 입은 군인들을 자주 볼 수 없었는데, 갑자기 군인들이 많이 보이는 때가 간혹 있긴 있다. 유튜브를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미국에는 큰 항구 도시마다 '함대의 주간'이란 것이 있고, 뉴욕의 경우에도 군함들이 뉴욕항에 퍼레이드를 벌이며 입항을 한다. 그리고는 배에 타고 있던, 해군 수병들, 해병대원들, 그리고 해안 경비선을 몰고 온 해안경비대원들이 뉴욕 시내에 쏟아져 나온다. 온 김에 그들은 여러 가지 행사들을 많이 벌이는데, 모두 시민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벌이는 그런 행사들로 꾸며져 있다. 예를 들면,


군악대 또는 군 위문대가 타임스퀘어에 무대를 마련하고 연주를 하거나, 물탱크 안에 들어가 있는 잠수부들이 유리벽을 통해 시민들과 빙고 게임을 하고, 길거리 테이블 위에는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각종 최신 무기도 보여주며 만지게 하거나, 심지어는 군함을 개방하여 일반 시민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난생처음으로 군함에 한번 올라보았다. 입구에서는 신분을 조사하며 시민권자에 한해서만 입장시켰다. 나는 유튜브 동영상을 찍을 요량으로 갔는데, 혹시라도 김벌등의 장비를 가져가면 제지를 당할까 봐 안 가지고 갔다가, 나중에 후회를 했다. 할 수없이 셀폰을 손으로만 찍었으니 화면이 많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항공모함에 오르며 내가 상상했었던 것보다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선,



내가 상상했었던 것 보담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크지는 않았다. 아마도 딱 비행기만 띄울 최소한의 크기로 만들어야 기동성이라든가 효율성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배 안에는 자동차가 다니게끔 경사진 길이 있었다. 그리고 상륙함, 장갑차, 트럭 그리고 지프차들이 많이 실려있었다. 경우에 따라 해병대원들이 상륙하여 작전을 벌이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항공모함의 갑판 위에도 올라보았다. 갑판이 철판으로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도 한 바닥을 밟아보니 약간은 푹신푹신하고 겉은 까칠까칠한 쇠가루 같은 것이 붙어있는 듯하다. 갑판 위에서 안내하는 군인에게 물어보았다. '이 바닥은 금속으로 만들었냐?, 시멘트로 만들었냐?'라고... 대답은 시멘트란다. 나중에 페리를 타면서 알았다. 페리의 바닥과 같은 그런 재질을 사용한 것이다. 게다가... 


큰 배라면 여객선만 타보았던 나로서는, 군함은 정말 낯선 광경이었다. 그러니까 항공모함의 분위기는, 예전에 보았던 영화, 'Water World'가 생각나게 했다. 기후 변화로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지구는 바다에 잠기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낡은 큰 배에서 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그 영화에 나오는 살벌하고 큰 공간이 있는 그런 모습이 떠오를 정도로 분위기가 아주 흡사하다. 어쩌면 항공모함에서 영감을 얻어서 그런 영화를 찍었을까? 항공모함을 타며, 떠오르는 또 다른 기억으로는...


공군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탔었던 군용기를 떠오르게 한다. 당시 성남 비행장(서울 공항)에 근무하고 있을 당시, 군용기를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해서 토요일에 퇴근을 하면서 퇴근 버스에 안 타고 부대에 남아있다가 동기생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는데, 분위기가 사뭇 이렇게 살벌했다. 마치 장교 훈련받을 때 탔었던 군용 트럭의 긴 나무 의자가 있는 뒷좌석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비행기는 수송기였다. 낙하산 부대가 낙하 훈련 할 때 줄 맞춰 앉아있다가 일렬로 낙하하는 그런 수송기였다. 항공모함을 타보니 꼭 그런 썰렁한 분위기다. 게다가,



그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니 어디서 그렇게 찬바람이 세게 불어오는지, 여기저기 뚫린 구멍으로 바람은 마구 들어오고, 마치 고물 트럭이 험한 길을 달릴 때 나는 소리보다 더 큰 소음이 끊이질 않는다. 다시는 탈 비행기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한 번은 더 타야 한다. 서울의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그런데, 


내가 왜 그런 비행기를 탔냐면, 다 작전(군 작전이 아니라 개인 작전)때문? 아니, 친구 꾐? 에 넘어가서였다. 대구에는 미인이 많단다. 게다가 성격도 활달하고, 화통? 하단다. 당시 임자 없는 총각으로서는 아주 매혹적인 소리 아닐 수 없다. 대구 비행장에도 동기생들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처럼 카톡이 되는 시절도 아니었으니, 연락도 못한 채, 독자적인 작전을 벌여야 했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에 공짜 비행기에 오른 것이다. 대구에는 효성여대가 있다는데. 거기에야말로 미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랑 함께 궁리를 했는데, 도대체 그때 함께 갔던 친구가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미인을 만나러 간다는 마음에 들떠서, 친구에 대한 기억은 잘 안 나는 모양이다. 결국은 효성여대 근처까지는 접근을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기획 단계서부터 문제가 있음을 현지에 가서야 깨달았다. 왜냐하면, 토요일 오후에 학교에 남아 있을 여학생들이 누가 있겠는가? 그리고 설령 있다고 한들, 촉박한 시간 내에 어떻게 제대로 된 작전을 펼칠 수가 있겠는가? 설상가상으로 비행기 떠나는 시간이 촉박하다. 그 비행기 놓쳤다간, 내 돈 내고, 기차 타고 가야 한다. 효성 여대생 코빼기도 못 보았는데, 고지를 바로 눈앞에 둔 채, 눈물을 머금고 철수를 해야 하는 처지다. 할 수 없이 비싼 돈 내가며 택시로 달려서 막 출발하려는 비행기에는 간신히 올랐는데, 심경이 참담해서 그럴까? 대구 갈 때는 꿈에 부풀어 가느라, 찬바람과 소음 정도는 참을만했는데, 귀경길의 소음은 정말 힘들 정도로 유난히 더 시끄럽고, 찬바람은 거세다. 그 작전의 실패는 훗날 나에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니, 나는 여태 깍쟁이 서울 출신을 모시고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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