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간 우산 Jul 30. 2023

밥 먹을 때

웨스트나일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말에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내가 밥을 먹다가 느닺없이 한 대 얻어맞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나는 평생 부모한테도 맞지 않고 살았었는데, 늘그막에 그것도 밥 먹다 말고 딸네미한테 한 대 얻어맞고 말았으니...


처음엔, 식구들이 오손도손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집 사람이 나?를 노려보더니, 가만있으라는 것이다. 움직이지도 말고... 그러더니, 딸네미 손이 내 얼굴을 후려쳤다. 맞고 나니, 식구들 입에서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소리가, '피다!' (엉? 피가? 그럼 내 피 아녀?) 그러니까 맞은 얼굴 부위에 피가 번졌단 말인데... 급히 화장실에 뛰어들어가서 거울을 보니 아닌 게 아니라 맞은 곳에 피가 묻어 있었다. (이 짜슥이....) 이게 다 그놈 때문이다.

 

그놈은 결국 그렇게 가고 말았다. 왜 그 녀석은? 욕심이 좀 과했다. 웬간히 빨고는 얼른 몸을 피했어야지, 주책없이 마구 먹어대다가 결국엔 그렇게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으니.... 갑자기 '끄릉' 생각이 났다. 

예전에 가게에 신앙심이 아주 좋은 직원이 하나 있었다. 네팔인인 그는 이름이 끄룽이었다. 끄룽은 높은 지역이란 뜻이란다. 또는 지대가 높은 곳에 사는 부족 이름으로도 쓰인단다. 혹시 한국말의 구릉이란 단어와 언어학상으로 연관성이 있지 않나 싶다. 왜냐면, 네팔에는 한국 사람과 혈통이 같은 몽골리안도 다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외관상으로는 한국인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그 끄룽은 때로는 나에게 불교 신자라고도 했다가 또 어떤 땐 힌두교 신자라고도 하면서 암튼 나에게 자기의 깊은 신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다가...

 

가게에 쇠파리 한 마리가 요란스럽게 날아다니기에, 파리채를 쥐어주며 잡으라고 했더니만, 잡지는 않고, 에어컨이 쌩쌩 돌아가는 와중에, 가게 문을 활짝 열고는 '훠이 훠이~' 하며 기어코 그 쇠파리를 내쫓았다. 그러니까, 죽여야 할 놈을 죽이지 않고 살려서 도망치게 해 준 것이다.



그런 끄룽이 나랑 같이 식탁에 앉아 있었더라면, 그는 나를 때리지 않고 또다시 기어코 그 녀석을 살려서 도망치게 했을 것이다. 살생은 절대 안 된다는 그의 신념은 대단했다. 우리 집 안에 화분이 있어, 날파리 같은 것이 흙에서 나와 날아 돌아다니는데 무슨 수가 없을꼬? 그랬더니, 집안에서 화초 키우기는 물론이고, 네팔에는 큰 농장도 있고, 농사에 자칭 조예가 깊다고 자랑하는 끄룽은 나를 인도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으로 데리고 가서는, '님'이라고 하는 기름병이며 몇 가지 약품을 사게 했다. 그 기름과 약품이 해충을 없애준다며 그렇게 침이 마르도록 기어코 나를 설득해서 그 약품을 사용해 보았다. 한데, 그 해충 처방은 살충제가 아니라, 곤충이 싫어하는 냄새로 접근을 못하게, 그래서 집 안에 모기나 날파리가 없도록 한다는 이야기인데, 실제로 사용해 보니 만족할만한 효과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죽이지는 않고 단지 못 들어오게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스태튼 아일랜드에는 여름철만 되면, '웨스트나일 바이러스' 모기 때문에 난리가 난다. 모기에 물렸다가 잘못 그 병에 걸리면 사망에까지 이르게 되는 아주 무서운 병이란다. 뉴욕시에서 유독 스태튼 아일랜드에서만 그렇게 '웨스트나일 바이러스'가 기승을 벌이는 것은 여기저기에 습지와 연못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습지나 연못이 사시사철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안겨주어서 경치를 보는 면에서 좋기는 한데, 반면에 모기로 인해 받는 피해는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놈의 모기가 내가 문을 열고 닫을 때, 슬그머니 날 따라 들어와서는 내 얼굴에 빨대를 꽂고 피를 빨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나마 집 사람 눈에 띄어서, 그리고 딸네미가 잽싸게 싸대기를 날리고 그것도 정확히 갈기는 바람에 얼굴에 피가 번지기는 했지만, 다행히 잡는데 성공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만일 대통령이나, 임금님이었다면? 그래도 내 얼굴을 갈겼을까? 쓸데없는 상상도 해본다.


암튼 여름만 되면, 그놈의 모기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집안에 모기를 없애보려고 별의별 도구를, 심지어는 모기박멸 전기제품까지도 사놓고 여기저기서 밤새 돌리지만, 별반 효과가 없다. 결국 싸대기를 맞는 한이 있어도 때려잡는 게 확실하고 정확한 것이다. 그래서 전자 파리채도 여럿 샀다. 게 중에 어떤 것은 '따다닥' 소리를 내며 모기나 날파리를 태워버리는 ('끄룽이 보았다간, 놀라 기절하겠지만)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배터리를 갈아 끼워도 작동이 잘 안 되는 불량품도 있다.


 

그동안 사실, 난 모기로 인한 괴로 핌은 비교적 적었다. 반면에 집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항상 혼자만 모기에 많이 물려서 쩔쩔매곤 했었다. 그러니까, 사람에 따라서 모기에게 좋은 Target이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대신, 방패막이가 되어주어 뜯겨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녀석이 내 얼굴에 붙어서 피를 빨고 있었음에도 식구들이 발견하기 전까지는 난 전혀 느끼지도 못하고 있었느니, 나도 낯짝이 두껍긴 꽤나 두꺼운가 보다.


< 끝 >

이전 01화 미드타운의 어느 유명 인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