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불러주는 여인
내가 가게를 하고 있는 맨해튼 미드타운에 한 유명 인사가 있다. 맨해튼에서 미국 사람이 멀리서 나를 알아보고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네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데, 누군가가 멀리서 나를 알아보고는 반갑다며 먼저 소리치면서 인사를 해 온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그 유명 인사인 것이다. 몇몇 사람 외에는 내 이름을 알지 못한다. 간혹 어떤 이는 내 가게 이름이 나의 이름에서 따온 줄로 알고 가게 이름에 Mr. 자를 붙여서 불러주기도 한다. 그런데 가게 이름은 한국 명이 아니고, 영국식 이름인데, 그 이름의 역사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른다. 왜냐하면 이 가게의 역사가 나랑 비슷한 나이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에 우리 가게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 왔던,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흑인 할머니의 입을 통해서 우리 가게 역사의 일부를 전해 들었을 뿐이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뉴욕에 경제 붐이 일면서 세워진 가게란다. 손님 중에는 3 대에 걸쳐 우리 가게를 이용해 주는 고객도 있다. 암튼 역사가 그렇게 오래되다 보니, 그 사이 주인도 여럿 바뀌었다. 이태리인, 유대인 그렇게 전해져 내려오다가 한인 소유로 넘어왔다. 암튼 역사가 있는 이름이기에 나는 그 DBA(Doing Business As)인 가게 이름을 못 버리고 아직까지도 사용하고 있는데, 암튼, 그 유명 인사도 우리 가게 이름에 Mr. 자를 붙여서 내 이름을 불러준다. 한데,
나는 한동안 그녀가 소식이 없었기에, 혹시 코로나에 걸려서 죽지는 않았는가 궁금해하던 차였기에, 반갑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바람에 그만, 반갑게? 인사를 해버리고야 말았다. (나도 참 주책이지, 그렇다고 반갑게 맞이해 줄 것 까지야...) 그리고, 그래도 그렇지, '난 당신이 죽었는 줄 알았잖아'라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어서... '나는 당신이 안 보여서, 혹시 텍사스로 다시 돌아간 줄 알았다'라고 했더니만, 깔깔거리고 재밌다며 웃는다. 왜 내가 그녀가 텍사스에서 온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냐면, 그것은 그녀의 발음 때문이었다. 나의 그 텍사스 발언에 나오는 반응을 보니, 남부가 확실하긴 한데, 텍사스 출신은 아닌 것 같다. 돌이켜보건대, 그녀와의 첫 만남부터 그야말로 극적이었다.
내가 가게 안쪽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가게의 앞쪽, 그러니까 카운터 쪽에 있는 집사람과 어느 여자 손님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여자 손님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집사람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무슨 사달이 났어도 크게 난 것이 분명했다. 만사를 젖혀두고 후다닥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런데, (나 원 세상에... 살다 살다...)
정말로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이런 것은, 미국에서도 처음이지만, 한국에서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런 광경이었다. 어느 중년 흑인 여자가 엉덩이를 까고 가게 문을 뒤로한 채, 가게의 안쪽을 향해서 카펫 위에서 오줌을 누고 있는 것 아닌가?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는, 화장실 찾기다. 원래 화장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빽빽이 들어선 건물이며, 그리고 즐비한 소매업체들에 화장실이 없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화장실은 다 있다. 하지만, 뉴욕의 살벌하고, 위험한 환경과 또 한편, 툭하면, 소송 만사의 풍토가, 그리고 공공 화장실에서 벌어지는 강도 등 범죄로 인해, 뉴욕시에서는 공공 화장실을 전면 폐쇄했었고, (최근 들어서 공원과 번화한 지하철을 중심으로 조금씩 화장실을 다시 열고는 있다) 각 건물들과 소매점들도 모두 화장실을 절대로 아무한테나 공개 안 하는 그런 풍토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 가게의 단골이고 또 믿을만한 사람에 한해서만 화장실 사용을 허락하는 관계로 일 년에 한 번이나 있을까 말까 하는 그런 상황이다. 게다가, 그녀의 정체는....
홈레스다. 그러니, 홈레스를 화장실에 들여보내게 했다가는 나중에 무슨 사태로 발전할지 장담할 수 없다. 해서 화장실 사용을 허락을 안 했더니, 가게 안에서 그런 짓을 벌인 것이다. 암튼 비명소리를 듣고 다급하게 뛰쳐나간 나는, 나를 향해 오줌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그녀와 정면으로 딱 마주쳤으니 나도 놀라고, 그녀도 놀랐다. 안에서 남자가 뛰쳐나오리라고는 생각을 못한 모양이다. 소변을 볼 때는 누구나 중간에 멈추기란, 어려운 법이다. 결국은 그녀가 일을 다 볼 때까지 우린 기다려줄 수밖에 없었다. 집사람은 아우성치고,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내가 무골호인이요 아주 사람이 좋은 줄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 사건 이후로는 그녀가 가게 안에 들어오면, 집사람은 아우성치고, 그녀는 나만 찾는다. 하는 수 없이 그녀가 올 때마다 내가 상대해주어야만 했다. 싸워서 뭣 하겠나? 그냥 그녀의 넋두리나 들어주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녀가 떠들어도 난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남부 사투리이기가 심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그동안 주로 접해온 흑인들은 주로 백인 사회에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 그래서 백인 억양으로 말하는 사람들만 접해와서 그런지도 모른다. 때론 내 앞에서 울면서 떠드는 그녀의 넋두리를 잘 알아들었다면, 어쩌면 소설의 한 이야깃거리로도 사용할 수가 있을 텐데.... 그녀의 이야기를 대충 들어보면, Mary는 전에는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도, 못 배운 사람도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코로나의 희생자 중의 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전에 없이 나타난 현상 중의 하나는 여자들도 홈레스 대열에 끼기 시작한 것이고, 게 중에는 젊은 여자도 있고, 그리고 백인 여자도 생기기 시작했다.
암튼 그녀가 사고를 친 그날, 일단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나 혼자 해결할 상황이 아니다. 경찰이 왔다. 경찰에게 보다 현장감 있게 설명한답시고, 난 그녀가 앉아서 일 보던 그 장소에 앉아서 오줌 누는 시늉을 했더니만? 경찰이 대번에 알아차렸다. "아하! 'Mary'구나!" ( 'Mary'라고?) 내 흉내에 그녀의 이름이 금방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때 나는 그녀의 이름이 'Mary'라는 것과, 경찰은 이미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가게의 CCTV에 찍혀있으니, 보여주겠노라'라고 해도, 볼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다. 여자가 오줌 누는 장면을 보고 싶지도 않았겠지만, 경찰 얘기로는, 그녀에 관한 해서는 도무지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만 몰랐지, 경찰도 아주 골치 아파하는 그런 유명 인물?이었다. 왜 처치 곤란한고 하면...
길에서 대변을 본다든지, 은행 ATM이 있는 곳을 무단 점거하고 있어서, 은행 고객이 신고를 한다든지, 우리 옆의 빵집이나 델리 가게에서 무상 취식을 한다든지, 물건을 훔친다든지 (우리 가게서도 때론 느닺없이 옷을 들고 튀기도 한다) 하면 의당 경찰이 출동을 안 할 수 없는 것이다. 잡아서 조사하다 보면, 결국은 병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는데, 그러면 병원에서는 잘 먹고 잘 쉬다가 퇴원하면 또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하루는...
출근해서 보니, 가게의 앞 유리가 깨어져있었다. 강력 유리라서 구멍이 뚫리거나 박살이 나지는 않았지만, 위아래로 전체가 금이 가서 교체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 CCTV를 돌려보니, Mary였다. 새벽 3시쯤인가, 문을 열려다 잠겨있으니 발로 차는 모습이 보인다. 강력 유리는 웬만큼 세게 치지 않으면 깨지지 않는다. 총을 쏘거나 쇠망치로 세게 내리쳐야만 깨진다. 한데, Mary는 얼마나 힘이 센지 발로 차서 유리문을 깨버린 것이다. 보험 처리는 될지언정, 그다음에는 보험료가 올라가거나, 아니면 보험회사로부터 퇴출당한다. 다른 보험회사로 옮기면 당연히 보험료는 더 올라갈 것이고... 할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내 주머니 돈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Mary한테 청구할 수도 없는 처지이고, 결국 유리 업체를 불러서 그 큰 유리 전체를 교체했다. 그런데...
길에서 보니, 어떤 동네 사람은 Mary를 불러 세우더니, 지갑을 열고 돈을 준다. 나도 Mary한테 돈을 주고도 싶었지만, 그랬다간, 돈 받겠다며 우리 가게에 더 자주 들리까 봐 그럴 수도 없다. 가게에 들어온 손님 중에는 그녀를 보고는 기겁을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인물은 인물인 것이
목소리 하나는 그야말로 장군감이다. 가게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이고, 게다가 홈레스들 사이에서도 리더십이 있다. 신출내기 홈레스들을 데리고 다니며, 이 가게는 어떻고, 저 가게는 어떻고 하며 교육도 시킨다. 암튼 그런 그녀가 길에서 내가 멀리 서라도 보이기만 하면, 차만 타고 지나 만가도 반갑다고 소리를 질러가며 인사를 하면서, 하루는 이런 얘기까지 꺼내는 것 아닌가?
'너 한국 사람이지?'라고 묻는 것이다. (난, 내가 한국인이라고 한 번도 그녀에게 얘기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았지?) Mary가 하는 말이 '당신, 열심히 일하는 것 보니, 한국 사람인 것 같더라'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미 소문은 다 나 버린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동양 사람은 바로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즉, 한국사람은 누구나 열심히 일한다는 소문을 그녀도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그녀를 보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궁금하고 또 한편 그 불쌍한 여자가 어떻게 지내는지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비가 오는 날에는. 그런데...
가게 밖에서 그녀의 특유한 걸걸한 소리가 둘린다. 혹시??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밖에서 우리 가게로 막 들어오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를 알아보고는 반갑다며 인사를 건네는 바람에 그녀는 발길을 돌렸다. 이번엔 정말 오랜만에 나타났다. 전에는 하루에 한 번씩 방문을 했댔는데, 다시 등판하신 이후론, 하루에 꼬박꼬박 두 번씩 들린다. 그리곤, 되려 우리더러 '괜찮냐? 잘 지내고 있냐? 잘 지내라...' 하며 건네는 인사말은 누가 누구에게 건네야 할 인사말인지...? 그나저나 이번엔 정말로 오랜만에 나와서 그런지, 연방 얼굴에는 싱글벙글 함박웃음이 하나 가득하다. 자유가, 그리고 활개 치며 자기 맘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저렇게도 좋은 가보다.
아침에 출근하는데, 그녀를 또 만났다. 자전거 위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 뉴욕시 거리에서 운영되는 공유 프로그램의 CITI BIKE, 자전거 위에 올라타 열심히 발을 돌리고 있었다. 세워 놓은 자전거이니 물론 앞으로의 회전은 불가능할 것이고 뒤로 돌리며, 좋다고 하다가 나를 보고는 또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넨다. 나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때 나는 동네 사람과 길거리에서 잡담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자전거 타기를 마치고는 우리에게 접근을 해온다. 옆에 있던 동네 사람은 한 발작 짐짓 물러난다. 그녀가 나에게 오늘따라 특별 주문을 해온다. 나더러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한번 웃어보란다. 그래서, 나는 그녀 앞에서 마치 연극배우처럼 활짝 웃어 주었다. 그녀는 걸걸한 목소리로 껄껄거린다.
무더운 여름의 바캉스 시즌이 돌아왔다. 그녀가 또 며칠 새 안 보인다. 은행 앞이나, 델리 가게 앞에도 안 보이고, 우리 가게에도 인사하러 안 온다? 더위를 피해서 또 피서를 갔나? 시원한 병원으로? 그녀도 휴가?를 떠났는데, 나만 덩그러니 무더운 맨해튼 길거리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