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뭇국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몇 개월이 지났다. 가끔 어린 시절을 떠올리다 보면 그때 네 식구 가운데 유일하게 나만 생존하고 있음을 상기하면서 묘한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삶이란 기대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고, 인간은 그저 시간 위에서 부유하는 존재일 뿐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또 어쩔 수 없이 그냥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의미를 찾을 수도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게 인생임을 조금씩 배워 나간다.
지난 몇 개월, 그러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겪은 가장 큰 변화는 살이 쪘다는 것이다. 사는 건 이전과 다름이 없는데, 늘 하던 대로 행동하고 먹는 대로 먹고 지내는데, 어느 순간 올라간 체중계의 눈금에 여간 당황하지 않았다. 뭐지? 왜 이렇게 살이 쪘지? 원인을 따지다가 문득 아버지의 부재를 떠올렸다. 더 이상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모시고 다니느라 기운을 빼앗기거나, 매일 이런저런 문제로 걱정하고 고민할 일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정말 그 이유 때문일까?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솔직히 편해진 건 사실이니까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한편으로 아버지 살아 계실 때 얼마나 잘했고 또 얼마나 시달렸다고 살까지 찌나 싶어 죄스러운 마음마저 든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평생 입이 짧은 편이었고, 그 와중에 국이나 찌개가 없으면 아예 밥을 뜨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참 희한한 식성이었다. 해서 엄마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아버지 식사 때가 되면 반드시 국이나 찌개를 끓여 밥상 위에 올려야 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밥을 국이나 찌개에 말아 식사했다. 정 여의치 않을 경우 물에라도 말아야만 할 정도로 맨밥을 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떤 국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생선찌개와 고깃국을 특히 좋아했다. 생선은 술을 제외하고 가장 좋아한 음식이었으니 그렇다 쳐도, 고깃국은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삼겹살집, 갈빗집에서조차 몇 점 들지 않을 만큼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국속의 고기를 일일이 전부 덜어내고 식사를 시작했음에도, 아버지는 어떤 날이면 일부러 고깃국을 찾곤 했다.
고깃국 가운데서도 단연 최애 음식은 소고기뭇국이었다. 소고기뭇국이 밥상 위에 올라오면 아버지는 숟가락으로 무를 일일이 조각낸 다음 밥 한 공기를 통째로 말아 거뜬히 바닥까지 비우곤 했다. 그야말로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나 역시 소고기뭇국을 좋아했다. 다진 마늘과 파가 둥둥 떠다니는 시원하면서 맑은 국물의 달달하고 슴슴한 맛은 물론이거니와, 쫄깃하면서 촉촉한 고기와 한껏 익어 뭉근하면서 부드러운 무의 맛도 언제나 그만이었다. 밥을 잔뜩 말아 조미 김 한 장을 올리고 아무렇게나 떠서 먹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 명절이나 아버지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이 되어 소고기뭇국을 먹을 때면 나는 또 다른 사소한 기대로 마음이 꼼지락거리곤 했다. 밥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하기 직전, 아버지는 자신의 소고기뭇국에 들어가 있는 고기를 모두 건져 나에게 내밀었다. 아버지를 닮아 입이 짧았던 형은 젖은 고기를 싫어했고, 나는 무엇이든 있는 대로 잘 먹는 뚱뚱한 아이였다. 큰아버지 댁에서 제사를 지낸 뒤 식사를 할 땐 멀리 떨어져 앉은 나를 일부러 불러 고기가 담긴 밥그릇 뚜껑을 건네곤 했는데, 그게 뭐라고 받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다른 사람보다 고기를 더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어쩌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도 몰랐다.
곧 그 순간이 올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막상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허망한 마음과 밀려오는 슬픔을 참지 못했다. 코로나 탓에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흡인성 폐렴으로 2주 전 요양병원으로 모시면서 사경을 헤매는 아버지께 어떤 설명도 드리지 못한 상태였다.
그 마음으로 장례를 치른다는 게 막막했다. 그럼에도 코로나 탓에 하루 늦게 시작하는 장례를 위해 이것저것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고 집중도 안 되고 딱히 세세히 따질 것도 없어 무엇이든 중간 것을, 또는 장례지도사가 하라는 대로 선택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정신이 들면서 결정한 것이 딱 하나 있었다. “국은 뭘로 할까요? 대부분 육개장으로 하시긴 하는데, 우리는 소고기뭇국도 있거든요.”
장례를 치르는 내내 조문객들로부터 소고기뭇국에 대한 인사를 많이 들었다. 육개장이 아니고 맑은 국이라서 좋았다고. 소고기뭇국이 참 시원하고 맛있었노라고. 나는 더 이상 고기를 먹지 않는 까닭에 음식을 결정한 뒤로 더는 생각지 않다가,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아버지가 소고기뭇국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아버지가 국그릇에서 고기를 건져 내 그릇에 넣어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내가 기분이 좋았던 건 다른 사람보다 국고기를 더 먹을 수 있어서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나를 생각한다는 사실을, 그 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추억했다.
아버지가 떠나고, 그러니까 네 식구 가운데 유일하게 나만 남은 첫 명절을 보냈다. 오랜만에 기숙사에서 돌아온 고기 좋아하는 딸에게 먹일 겸 소고기뭇국을 끓였다. 식구끼리 단출하고 조용히 지낼 줄 알았는데 처제들이 온 덕분에 모처럼 집안이 북적였다. 소고기뭇국을 한 그릇씩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 묘했다. 혼자만 남았다는 얕은 감상과, 가족이 함께 어울리고 있는 현실감이 맥락 없이 뒤엉켰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의 뜻을 알 것만 같았다.
소고기뭇국은 만들기 쉬운 음식이다. 참기름 한 숟가락 두른 냄비에 먼저 국거리고기를 볶다가 적당한 크기로 썬 무를 넣고 섞어준다. 이어서 물을 붓고 끓이는데, 물 조절이 최대 관건이다. 고기 200g, 무 1/4개에 물은 2리터 조금 안 되게 붓는 것이 적당하다. 감칠맛을 올리기 위해 액젓 한 숟가락 정도를 넣고 함께 끓인다. 펄펄 끓기 시작하면 중불에 두고 20-30여 분 충분히 끓인다. 간은 약간의 소금과 간장 반 숟가락 정도로 맞춘다. 다진 마늘 한 숟가락으로 잡내도 잡고 청량감도 올린다. 파는 기호에 따라 송송 썰어 넣는다.
뜨끈한 뭇국에 후춧가루를 뿌린 뒤 시원한 깍두기와 조미 김을 곁들여 먹으면 더욱 좋겠다. 나도 가끔 뭇국이 생각날 때면 고기 없이 끓여 먹곤 하는데, 식구들의 반응은 그리 썩 좋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