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두 돌쯤 됐을 때였나요. 으앵으앵이랑 엄머머마를 동시에 하던 때이니 두세 살쯤 됐었나 봐요. 그날은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단 둘이 바람이 꽤나 부는 호수공원에 산책을 나갔던 날이었습니다.
강이 보이는 너른 광장 비슷한 곳에 도착했을 때, 강가 난간에 유모차를 세워두고 아이를 안고 주변을 돌았더랬어요. 그 유모차에 가방을 둔 게 실수였죠.
그날 바람은 참으로 야속했습니다. 불과 30 발자국 떨어지지 않았는데 그 사이 바람은 유모차를 강으로 날려버렸거든요. 아이를 안은 채 뒤를 돌아봤을 때 유모차는 난간에 걸려있고 그 위에 올려두었던 가방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네, 강물에 두둥실 떠있더라고요. 핸드폰, 지갑.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그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난간이 강의 표면과 맞닿아 있었다면 바로 들어갔을 거예요. 하지만 난간은 높았어요. 두둥실 떠있는 가방을 건져 올리기에는 제가 서있는 곳이 너무 높았습니다. 그렇다고 다이빙하듯 뛰어내릴 수는 없잖아요?
급하게 호수공원 관리사무소를 찾았어요. 아이를 혼자 둘 수는 없으니 13킬로 두 살배기 아이를 안고 여기저기 뛰었죠. 하지만 관리사무소는 보이지 않았어요. 그 사이 제 가방은 정처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고요.
온몸이 당황으로 범벅이 되어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 돌아왔어요. 막대기라도 주워야겠다는 심정으로요. 그런데 그때 길이 보이긴 하더라고요. 풀숲을 약간 돌아서 내려가서 종아리 정도까지 담그면 가방을 건질 수 있겠다는 길 말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아이를 혼자 줘야 한다는 거였어요. 아이는 엄마의 당황을 이미 눈치채고 함께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내려놓고 말했어요.
"엄마 괜찮아. 엄마 괜찮아.
잠깐 저 물속에 좀 들어갈 건데 엄마 괜찮아."
두 살짜리가 뭘 알아듣겠어요. 엄마가 이상한 대로 내려가니까 그냥 앙앙 울죠. 다행히도 주변에 있던 여대생 두 명이 달려오더라고요. 아이는 저희가 잘 데리고 있을게요! 라면서요.
지금 생각하면 그 학생들에게 사례라도 했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못해줬네요. 그 순간 강물로 들어가는 엄마를 향해 우는 아이를 달래주는 그 학생들은 정말 천사나 다름없었거든요.
그날 물건들은 무사히 건졌고 집에도 무사히 돌아가긴 했습니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 일이 생생해요. 온몸을 타고 오르는 당황스러움의 뜨거운 기운과 그 기운을 무시하는 매정한 호숫가의 바람. 그리고 내 입이 반복적으로 내뱉은 한 마디. 엄마는 괜찮아. 엄마는 괜찮아.
사실 괜찮겠어요? 남편이 사준 리미티드 카드지갑은 물에 팅팅 불었지, 핸드폰은 완전 침수돼서 어찌 될는지도 모르지, 아이는 울지, 내 종아리는 물속에 들어가 있지, 물은 차갑지.
하지만 제 입은 연신 말하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괜찮아.
그날 이후, 생각해 보니 자주 들었던 말이었어요. 엄마는 괜찮아. 너는 너만 신경 써. 너만 걱정해. 난 괜찮으니까.
아. 그 말을 하던 울 엄마도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인생을 수십 년을 살아도 뒤늦게 깨닫는 말들이 있더라고요.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런 것들 말이죠.
요즘도 자주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응 엄마 밥 다 먹었어. 괜찮아. 안 추워, 너 입어. 비 좀 맞아도 엄마 튼튼해. 괜찮아. 안 힘드니까 조금 더 업어줄게. 괜찮아. 엄마는 괜찮아.
엄마로서 말하는 괜찮아는 100% 괜찮아는 아니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행하고 힘들기만 한 괜찮아는 또 아니고요. 희한하죠.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되뇌임. 내일도 전 얼마나 또 괜찮을까 싶네요.
자그마한 그것들의 웃음을 보면, 어떤 괜찮아도 200%가 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