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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Feb 20. 2021

기억이 났어 #008

미워하더라도 괜찮으니 안전하게라도


예쁨 받고 자란 딸은 아니다.


너무 울었다

엄마 아빠를 힘들게 했다

고집이 셌다

부모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유별났다


아주 외울 정도로 매일같이 들었다. 스스로 주눅 들었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내가 미움을 받고 컸다고 애써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눈치를 조금 보는, 눈치 없고 주변 신경 잘 안 쓰는 사람으로 생존해 냈을 뿐. 고집스럽지 않게. 유별나지 않게. 부모님 힘들지 않게. 울지 않으려 애를 썼던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자식들은 부모에게 필사적이다. 부모는 몰라도 자녀는 부모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나를 감추고 깨부수고 혹은 엇나가면서 나를 지키는 것과 부모가 내 존재를 못마땅해하는 것 사이에서 힘들고 괴로워한다. 그래서일까. 요즘 부쩍 수면 위로 떠오른 아동학대 사건이, 실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복 입고 엄동설한에 현관문 밖으로 쫓겨나 기약 없이 밤을 보내보고

내가 아무리 뭔가를 잘해도 그것 잘해서 무엇하냐는 말을 들어보고

하고 싶은 걸 이야기하면 니 주제에. 혹은 판검사나 하라는 말을 들어보고

작은 실수에도 사정없이 두들겨 맞아본 아이들은


그 크나큰 시련을 하찮게 취급해버린다. 기억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그냥 다들 그런 건가? 하고 괜찮은 척 살아간다. 부모에게 다시 웃어 보이기 위해.


그렇게 어린 시절, 자신을 지탱하던 우주가 산산조각 나고, 온전히 자신으로 살아보는 방법을 배우기도 전에 마음에 상처 입은 아이들이 수없이 많은 곳에서 다시 부모가 되었다.


 세상에서 부모 하나만을 의지하며 크고 있는 작은 생명을 그렇게 하는 부모를 처벌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아이를 어찌한 부모의 사정이 어떻든 이제라도 아이들에게 그리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사회적 약속이 생기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자식을 키우는데 매뉴얼은 없지만 최소한 인간으로서 아이들에게 그래서는 안된다는 국가적인 제약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순간이 많았다. 신고를 해본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지나치다는 말을 듣고 적당히 하란 말도 들어봤다. 자기 자식을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며 가만 안 둔다는 협박 전화도 받아봤다. 자식을 위해서였을까? 그 순간에도 난 그들은 자식을 생각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자식을 키워봤든 아니든 작은 생명체를 우리는 반드시 만난다. 존재를 거부하거나 방임하거나 때렸거나. 그것은 분명, 숨길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이다. 자식을 미워하는 부모의 마음. 그게 어떤 이유든 자식이 못마땅한 부모의 마음을,


자식은 반드시 안다.


점점 더 국가적인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출산율이 문제가 아니라는 항간의 지적도 이제는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있는 아이들부터, 우리가, 잘 지켜주자. 부모가 부모 될 자격이 없으면 주변의 수많은 어른들이 부모가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괜찮아. 최소한 나는 안전해.라는 마음으로 씩씩하게 살아낼 수 있도록.


Fin



나를 무한히 지켜주고 떠난 우리 엄마와 내가 무한히 지켜내야 할 나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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