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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주 Nov 05. 2023

너라는 어항에 나 홀로 남아.

잠수이별


백번을 돌이켜봐도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우리는 아침에 카톡인사를 했고,

계속해서 틈틈이 연락했다.

그는 내가 보고 싶다고 했고,

나는 정말로 그가 보고 싶었다.

토요일 저녁이던 그날,

나는 일을 하고 있었고 그는 자꾸만 잠이 온다고 했다.

그렇게 잠든 그는 카톡텀이 길어지더니 결국,

 사. 라. 졌. 다.




졸리다더니 어디가 아픈 거였을까?
자다가 핸드폰을 떨어뜨려 핸드폰이 고장 난 것은 아닐까?
혹시 누군가 상을 당해 경황이 없는 걸까?




며칠째 전화도 카톡도 되지 않는 그를 향한 나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나는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를 보호했다.

사실은 내가 다치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마음 한 구석 싸한 느낌이 나를 부추겼다.

'현실을 직시하고 상황파악하라'라고.


그의 직장에 전화하여 그가 상중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sns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아 핸드폰이 고장 나거나 아픈 것도 아님을,

사실은 셋 중 하나라도 제발 그에게 일어났길 바라는 일이

나의 형편없는 상상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궁금했다.

헤어지자는 말도 없이 사라진 이유가.

'이별을 고하면 내가 매달릴 것 같았나?'

'토요일저녁에 다른 여자를 만난 걸까?'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도 아까울 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

그가 사라진 진위를 확인하고 나서

이젠 그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 또 상상을 펼치고 있었다.


내 상상 속에서 그는 자유롭게 헤엄쳤고 나는 위험한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내가 뭘 잘못했나 보다..'

'사람 질리게 하는 게 있나 보다...'

’우리..사귀었던 건 맞지..?‘

미성숙한 이별의 끝은 이런 것이다.

상대에게 상처를 넘어 자책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듯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짧게 만났지만 우리 둘째 언니네 식구와 함께 식사를 한 적 이 있던 그.

함께 만났던 그 동네에서 다른 여자와 데이트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언니의 제보.

폭염 때문이었을까 살짝 어지러웠다.

나는 아직 괜찮은 척하고 있는, 괜찮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는 이미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니 배신감이 상당했다.

그를 많이, 참 많이 욕했다.

안 그래도 귓밥 많던데 귀 많이 가려웠을 거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보겠다.

20대 풋사랑부터 30대인 지금까지의 이별까지

나조차 모든 이별에 정중했다고 가슴에 손 얹고 말할 수 없다.

그러니 이제 그만 그를 욕하겠다.

세상에 별별이별 다 있는데 잠수 환승 이별쯤이야 픽 웃어 넘겨주지.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건 말이다,

끝맺음을 좋게 하지 않은 이별은 즐거웠던 추억마저 더러운 찌꺼기마냥 만들어,

아무 데나 휙 던져버리게 만든다.

그러고도 남은 응어리는 뭉쳐서 어디서도 풀지 못한 채, 마음 한 구석 손이 잘 안 닿을 곳에 남기게 된다.

이런 응어리가 더는 생기지 않기를, 그리고 나는 이런 상처를 남기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그라는 어항에서 나오며 흘린 물기가 금방 마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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