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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주 Nov 06. 2023

나만 없어, 남친.

결혼병


나 너 좋아, 싫어? 싫음 말고.

이 쿨하다 못해 추워 디질것같은 드라마 대사 같기도 한,
요즘 아이돌 노래가사 같기도 한 말은 말이다.
내가 읊었다.
소주병과 맥주병들을 앞에 줄 세우고,
한쪽 팔을 옆 의자에 걸터둔채 비스듬히 앉은 거만한 자세로 한 마디 더 했더란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이성을 대하란 말이야. “
앞에는 침울한 표정의 몇 년째 여자친구가 없는 아는 오빠가,
옆에는 짝사랑하는 상대가 있지만 고백을 못하고 있는 친구 j가 있었다.
아주 연애코치 납셨다.
아니, 납셨었다.


그러나 이로부터 몇 년 후 이 둘은 각자의 동반자를 만나 현재 가정을 꾸렸고

나는 그 둘의 결혼식에서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진짜 울었음)

그렇게 연애고수(!)의 길을 걸으며 3n이 되었고,

가끔은 결혼병에 걸린 환자처럼 말을 한다.

 j가 우리 집에 놀러 와 강아지들을 보며 말했다.


”아 강아지 너무 귀여워~ 나만 없어 강아지~“

”나만 없어 남편. “

”...... “

j가 조용히 티비를 켠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상견례자리에서도,

결혼식까지도 늦은 남편에 대한 사연이 한 프로그램에 나오고 있다.

나는 조용히 말한다.

”j야, 나 상견례는 해보고 싶어. “

”.. 하면 되지! “

”결혼도 한 번은 꼭 해보고 싶다.. “

”... 하.. 한 번만 꼭 하면 되지!! “

”그래? 가능할까? “

”그럼! “

”있는 자의 여유니? “

친절한 말투의 시비에 j는 많이 힘들어 보인다.  



서른두짤이 되자 연애도 20대 때만큼 쉽지 않다.

코로나 시국이 닥치자 각종 모임과 자연스러운 만남은 힘들어졌다.

더군다나 여전히 로맨스는 꿈꾸는데 머리는 커져

머릿속엔 결혼할 상대인지 아닌 지 계산기를 때리고 있으니 연애 시작자체가 어렵다.

요즘은 결혼이 끝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더욱더 신중하게 상대를 보게 된다.

소올직히 말하자면, 나는 ‘신중형 금사빠’이다.

관심은 가지만 장거리라 안돼.

(남자는 된다고 한 적 없음)

호감은 가지만 흡연자라 안돼.

(남자는 내가 좋다고 한 적 없음)

뭐 이런 식이다.

혼자 앞서 나가는 것도 잘한다.

썸 타는 순간, 상상 속 손주들 재롱 다 봤다 이거다.

몇 명의 자식들과 손주들을 봤다 지웠는지, 아 대를 많이도 이었다.

이래서 멋모르고 서로 좋을 때 결혼하라는 옛 어른들 말씀이 있었던 것인가.

우연히 ‘나라면 나와 결혼할까’라는 책의 표지를 보았다.

제목만 보고도 어딘가 깊숙이 찔렸다.

사실 저 말은 엄마가 나에게 자주 했던 말 아니었던가.

”네가 요리를 하냐, 청소를 하냐, 아니면 돈을 잘 버냐?

큰 개 한 마리 딸려있는 여자를 누가 데려간대? “


실제로 그랬다.

자연스러운 만남도, 인위적인 만남도 힘들지만 이성은 만나고 싶은 때,

내 마음을 알고리즘도 알았는지 한 결혼정보업체 광고가 스마트폰 화면에 떴다.

내 가입비 알아보기’ 버튼을 누르고 인적사항을 입력하자

마치 cctv화면으로 날 지켜보기라도 한 듯 전화가 왔다.

그렇게 유명한 d사와 상담이 시작되었다.

미와 솔 사이의 파 톤을 유지한 상담원은 친절하게 나의 직업, 학벌, 자산 등을 물어보았다.

나는 마치 취조당하듯 진술했다.

서른하나, 무명배우, 전문대졸업 등의 지금도 조금 적기 부끄러운 스펙에 대해 알게 된 상담원은 이어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여자회원분은 나이랑 학벌이 가장 중요해요~

전문대 졸업하셨다니, 제가 승인을 받을 수 있는지 본사에 확인해 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

돈 주고 가입하는 결정사조차 ‘보류’라니, 가입의사도 없었지만 충격에 침대로 뛰어들었다.

하기야, 객관적인 조건으로 만남을 성사시키는 바닥인데 껍데기가 중요하지 않겠나.

싶으면서도 그놈의 매일 부여잡는 이불을 또 쥐어짜며 그냥 없으면 없는 대로 생긴 대로 살걸 싶었다.

(아, 몇 분 후 상담원은 본사에 승인을 받았다는 아주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  






그날 밤, 맥주 한 캔을 까고 노트와 펜을 꺼냈다.

그리곤 적었다.

‘왜 결혼이 하고 싶나’

답은 금방 나왔다.

‘인생의 동반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동반자가 중요한가, 동반자를 만나는 시기가 중요한가.

나이에 이끌려 결혼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내 오랜 지론 아니었던가.

왜 이렇게 나이에, 시간에, 초조하게 구는 것인가.

변명거리는 꽤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고,

신혼을 몇 년 즐기고 아이를 낳으려면 이제 결혼 준비를 시작해야 하지 않나 등등 말이다.

그런데 더 솔직해져 보자.

내 주변 하나 둘 결혼하는, 그에 더해 임밍아웃까지 하는 지인들이 있어서 아닌가.

‘늦었다’라는 게 싫어서, ‘급하게’ 찾아 헤매는 게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다시 펜을 놓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신다.

짧고 굵었던 ‘결혼병’에서 드디어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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