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ossam Sep 07. 2015

[고마운 닭강정]

성장통  #part5



바쁜 일 사이 짬을 내어
여행이란 걸 해보자 억지로 욕심을 냈더랬다

이 녀석을 두고 가는 여행에 익숙해져 가는 걸까
그래야 하는 거라 애써 변명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섰다

곱게 웃으며  인사는커녕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버럭거리다 출발한

덥고 습했던 날,
그래도 나는 버리고 얻는 것에 감사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삐그덕 거리며 시작한 여행
날씨도 상황도 마음을 어지럽힐 때쯤
이 녀석 전화가 왔다
아침부터 배가 아파 학교를 못 가겠다고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는 말보다
왜 하필 엄마가 없을 때 그러느냐는 말이
먼저 나와버렸다

그저 꾀병이길 엄살이길
야단치면 일어나 학교에 가길
엄마란 사람이 이렇게 이기적일 수가 있을까

당장 달려갈 수 없음에 안타까운 마음은
접어둔 채
아프다는 아이와 투닥거리다 못해
괜찮아지면 꼭 가야 한다고
맘에 없는 소리만  계속해댔다

전화를 끊고 담임쌤께 연락을 드리고 나니
오만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아파온다
어떻게 만든 휴가인데 맘 편할 날이 없다고
나도 모르게 팔자타령까지 하다가
갑자기 진짜 많이 아프면 어쩌나

좌불안석 걱정하다가
쉬면  괜찮아지겠지 위로하며

연락 오기만 기다렸다

이왕 맘먹고 내려 온 거 구경은 하고 가야지
맘처럼 궂은 날씨에도 바삐 다니면서도

밥 먹을 때도 녀석이 밟히고

좋은 경치에도 녀석이 밟히고

무언가 여유로움을 느끼려 할 때마다

내가 엄마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저녁 늦게 녀석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하루 종일 자느라고 연락 못했다며

내일은 학교에 가겠다고 했다


엄마 없는 날이니 친구네 가서 자기로
부탁까지 해놓고 왔는데
아픈 아이 남의 집에 보낼 수가 없어
결국 아이 혼자 밤을 보내게 했다

* 아픈 아이 생각에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순천만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다음날 일정 당겨 올라오면서
학교에서 다녀오면 먹일
죽도 사고
다 나으면 먹일 김치찜도 사고
얼른 가서 안아줘야지
한달음에 달려왔는데

집에 오니

부엌 화장실 안방 녀석방 베란다까지
폭탄을 맞은 듯 엉망진창이었다

일단 아이가 오기 전 하나씩 정리를 하다 보니
또 참지 못하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그래도 아팠던 아이에게

큰 소리는 내기 싫어
카톡으로 잔소리 반 걱정 반 할 말을 전달한 후

중요한 일이 생겨 간식만 챙겨놓고 다시 나오는데

미안한 마음은 표현도 못하고
그렇게 나와 버린 못난 자신 때문에 눈물이 쏟아졌다

심장이 아리다
결국 마음의 병은 꼭 몸으로 돌아오는 법
먹은 저녁도 체하고 기력은 바닥이 났다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이 아무 일도 아닌 것을
겪는 그 순간에는 왜 그렇게 놓지 못하는 것일까

미안하다는 문자 한 통 다시 넣고
하던 일을 마무리하는데
전화가 온다
"엄마 닭강정 사오면 안돼?"
"배 아프다면서?"
"이제 괜찮아졌어~"
"알았어~ 좀 늦었는데 기다릴 거야?"
"응~"

집으로 돌아오는 한 손에는
녀석에게 줄 닭강정이 들려있다

아프다는 말보다 백만 배쯤 행복한 말이다

여행에서의 무거운 발걸음도

어느새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다시 만난 녀석은

아무 말없이 닭강정을 건네주니

언제 아팠냐는 듯 맛나게도 먹는다

'아프지 마~'
눈으로 말하고는 조용히 들어와
한숨으로 하루를 접는다


안도의 한숨인지

고단함의 한숨인지

무엇이면 어떠랴

그래도 집이라 좋구나
네가 있어 좋구나




, 그림, 사진: kossam 



이전 04화 [혼자라서 미안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